'화수분' 일군 김태룡 전 두산 단장 "책장 한 장 넘길 때"

"선수들 커가는 모습에 보람"…리오스 영입·왕조 연 세대교체 회고

잠실구장과 함께 마무리…"엘리트 코스 정재훈 새 단장, 전혀 걱정 안해"

두산 베어스 김태룡 전 단장
[두산 베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동한 기자 = '화수분 야구'를 지향하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전성기를 함께한 김태룡(67) 전 단장이 "다시 책장 한 장을 넘길 때"라며 은퇴 소회를 밝혔다.

구단에 몸담은 36년 동안 그가 중시한 것은 변화가 필요할 때 새로운 책장을 넘기는 일이었다. 세대교체로 두산 왕조의 기틀을 다질 때도, 새로운 잠실 시대를 앞두고 후임에게 자리를 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김 전 단장은 19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너무 행복한 단장 생활을 했다. 적절한 시기에 정재훈 팀장에게 물려주고 가게 돼 마음이 좋다"며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있었고, 반대로 '왕조'라고 불릴 위치에도 있었다. 이제는 책장 한 장 넘길 때 아닌가"라고 돌아봤다.

1990년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에 입사한 그는 매니저와 운영팀장 등을 거쳐 2011년 8월 단장에 올랐다.

16시즌 동안 단장으로 일하며 한국시리즈 우승 세 차례와 2015∼2021년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뒷받침했다.

두산은 이날 정재훈 운영팀장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고, 김 전 단장은 자문을 맡기로 했다.

잘했어
(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16일 저녁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과 삼성의 경기 7회말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수비실책으로 2루주자 두산 김현수가 홈으로 들어온 후 동료들이 축하해 주고 있다. mtkht@yna.co.kr

◇ 팀에 뿌리내린 '화수분' 철학…잊지 못할 리오스 영입

김 전 단장의 철학은 단연 '화수분 야구'다.

화수분 야구는 유망주를 꾸준히 육성해 주축 선수의 공백을 메우고 경쟁력을 이어가는 두산의 팀 색깔이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리는 피닉스 교육리그가 화수분 야구의 발판이었다. 이 리그는 일본프로야구 구단 등과 경기를 치르며 유망주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가을 교육리그로, 두산은 2006년부터 참가해왔다.

당시 김 전 단장은 현지 야구인들과 교류하며 선수단 구성과 육성의 방향을 배웠고, 미야자키 교육리그를 직접 답사해 선수들의 참가를 추진했다.

이 교육리그를 통해 성장한 선수들이 프로 입단 20년 안팎의 베테랑이 된 지금도 각 소속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는 김현수(kt wiz)와 박건우(NC 다이노스), 허경민(kt wiz), 정수빈(두산) 등이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입단해 교육리그와 2군을 거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돼 돈도 많이 벌고 팀 성적도 내는 데 보람을 느꼈다"며 "김현수도 FA가 되고, 미국까지 가고 대선수가 됐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고 했다.

구단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김 전 단장은 2005년 KIA 타이거즈에서 외국인 투수 다니엘 리오스를 데려온 트레이드를 꼽았다.

당시 두산은 투수 전병두를 내주고 리오스와 내야수 김주호를 받았다. 김 전 단장은 KIA에서 뛰던 리오스를 유심히 지켜보다 트레이드 제의에 응했다고 돌아봤다.

리오스는 이적 첫해 두산에서만 9승 2패를 거두며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다. 2007년에는 22승 5패, 평균자책점 2.07로 다승과 평균자책점, 승률 부문을 석권하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14년 기다린 환호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라이온즈-두산베어스 경기. 2대 13으로 14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두산 선수들이 마운드에서 환호하고 있다. 2015.10.31 mon@yna.co.kr

◇ "책장을 한 장 넘깁시다"…과감한 세대교체로 연 두산 왕조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2015년 역시 김 전 단장으로선 잊을 수 없는 해다.

우승으로 이어진 세대교체가 그 출발점이었다.

그는 최준석과 김동주, 손시헌, 이종욱 등 기존 주축 선수들에게 매달리기보다 다음 세대로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과감한 결단은 그가 프로야구 '최장수 단장'이 되도록 이끌었다.

2013시즌 뒤 중심 타자 최준석은 롯데 자이언츠로, '허슬두'의 상징인 손시헌과 이종욱은 NC 다이노스로 떠났다. 두산은 이듬해 '두목곰' 김동주와도 결별했다.

김재호와 오재원, 허경민 등 젊은 선수들이 새롭게 중심을 잡은 두산은 김태형 전 감독과 함께 왕조를 열었다.

두산은 2015∼2021년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세 차례(2015·2016·2019년) 우승했고, 이 기간 정규시즌에서도 세 차례(2016·2018·2019년) 정상에 올랐다.

김 전 단장은 "당시 김승영 사장에게 이 멤버로 우승하기 위해 목을 매지 말자고 건의했다. 책장을 넘기자고 했다"며 "그때가 터닝 포인트였다"고 돌아봤다.

왼쪽부터 정재훈 신임 단장, 김태룡 전 단장, 함태수 홍보팀장
[두산 베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엘리트 코스' 밟은 후임에 신뢰…잠실구장과 함께 은퇴

김 전 단장에게 이번 단장 교체 역시 새로운 책장을 넘기는 과정이다.

새로운 잠실 시대를 앞둔 두산에서 뒷물결에 자리를 내주는 '장강의 앞물결'이 되기로 했다.

정 신임 단장은 2006년 두산에 입단해 3년간 선수 생활을 했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2011년 11월 두산 프런트에 합류해 전력분석과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1군 매니저를 거쳐 2024년 4월부터 운영팀장을 맡았다.

선수와 프런트를 두루 경험하며 단장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후임을 김 전 단장은 깊이 신뢰한다. 그는 "단장이 되기까지 그 과정을 다 거쳤다"며 "전혀 걱정 안 한다"고 강조했다.

베어스의 한 시대를 함께한 김 전 단장의 퇴장 시점은, 한국 야구의 성지인 잠실구장의 마지막과 겹친다.

"잠실야구장하고 같이 은퇴하는 거다"라고 의미를 부여한 김 전 단장은 "야구장하고 같이 늙었다. 이 야구장이 집에 있는 것보다 더 편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야구장을 떠나지는 않는다. 이제 구단 사무실 단장 자리가 아닌, 관중석이 그의 자리일 뿐이다.

"저도 이제 관중석으로 가서 팬들과 함께 응원해야죠."

잠실구장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1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KBO리그 롯데와 두산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2026.10.12 jieunlee@yna.co.kr

move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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