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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천안] 김진혁 기자= 천안시티FC 주장 고태원은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축구선수로 유명하다. 착실한 독서로 다져진 그의 말솜씨는 인터뷰 내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귀를 기울이게 했다. 30대 중반, 황혼기를 눈앞에 둔 고태원은 친분은 없지만, 평소 동경한 한 선배의 은퇴를 보고 ‘축구선수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봤다.
고태원은 지난겨울 천안 합류했다. 인천광역시 출생인 그는 호남대학교 진학한 20대부터 호남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 졸업 후 전남드래곤즈 입단하면서 지난 2025시즌까지 무려 10년 동안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구단과 대화 후 정든 친정과 이별을 결정한 고태원은 자신을 가장 먼저 찾아준 천안으로 향하면서 프로 11년 차 만에 두 번째 유니폼을 입게 됐다. 오자마자 박진섭 감독의 신뢰를 얻으며 주장직까지 ‘통보’받았다. 지난 9월 고태원은 '풋볼리스트'를 만나 지금까지 천안에서의 여정과 축구 인생을 풀었다.
▲ ‘인간’ 고태원을 돌아볼 계기가 된 ‘시즌 초 장기 부상’
시즌 초반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었다. 고태원은 개막 3경기 만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다. 여느 장기 부상이 그렇듯 처음부터 큰 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이 불상사를 일으켰다. 1달, 2달, 3달 그렇게 5달 동안 고태원은 자취를 감췄다. 30대 중반인 그에게 절망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앞만 보고 달려온 축구선수의 삶을 멈춰두고 ‘인간’ 고태원의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처음은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크게 문제되는 부상은 아니었다. 10년 이상 된 베테랑이지만, 모든 선수들 마찬가지다. 하루빨리 복귀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절제하고 정해진 시기에 맞춰 안전하게 재활했어야 했는데 10년 차인 나도 컨트롤하기 굉장히 힘들었다. 서두르다 보니까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나왔다. 계속 반복이었다. 그러던 중 감독님께서 (부상에 대해) 너무 스트레스받고 있으니 차라리 팀 밖으로 나가서 편하게 완전히 재활을 마치고 복귀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밖에서 치료에 전념하고 재활 잘하고 돌아왔다.”
“밖에 있을 때 집에서 육아도 하고 얘들 어린이집도 보내고 하면서 운동하고 치료받고 가족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게 길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저희는 운동을 하니 하루하루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다시 충전하는 다이나믹한 삶을 산다. 근데 그런 에너지를 소비 못 하다 보니까 스스로 많이 무기력해지더라. 그때 옆에서 아내나 아이들이 저한테 많이 힘이 되는 이야기들을 해준 덕에 그 시간을 슬기롭게 잘 보냈던 것 같다.”
당시 힘든 감정을 돌아본 고태원은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결론까지 냈다. 고태원의 우울감은 그의 블로그 글귀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부상 기간 중 작성한 고태원의 글에는 ‘마음의 병’이라는 표현도 들어있었다. ‘루틴화’ 된 삶을 살던 고태원은 오히려 여유가 생기자 그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울증’인지도 몰랐던 마음의 병을 명확히 밝혀내 준 사람은 다름이 아닌 아내였다. 본인한테 만큼은 MBTI 중 대문자 ‘T’ 성향이라고 아내를 소개한 고태원은 마음의 병 사건 외에도 아내에게 냉정한 조언을 자주 얻는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우울증’ 비슷하게 스스로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아프신 분들이 많다. 그분들만큼 심하게 겪은 건 아니지만, 지나고 나니까 알게 됐다. 당시에는 나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하루의 루틴이 있었는데 부상을 당하면서 그 루틴 자체가 없어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축구도 보기 싫고, 무기력함을 떠나 아예 사람이 피폐해지더라. 처음에는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가 보다’라며 넘겼는데 운동장에 복귀하고 그때를 생각하니 우울증이었다.”
“아내와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엄마들은 ‘산후우울증’이라는 걸 겪기도 하지 않나. 아내도 평소에는 모르는데 다 지나고 나서 우울증이었단 걸 느낀다고 하더라. 와이프와 이야기하면서 우울증이라는 걸 인지했다. 아내는 MBTI 검사를 하면 평소 ‘F’가 나온다. 그런데 저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부분만큼은 굉장히 ‘T’다. 또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냉정하게 평가를 한다. 오히려 저한테 자극제다. 와이프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노력하기도 한다. 그 비중이 굉장히 크다(웃음). 조언이 아니라 ‘채찍질’이다. 와이프가 채찍을 많이 준다.”
“부상 기간 때 조언도 많이 해줬다. 그래도 먹을 것도 많이 챙겨주고 제 수면 패턴을 고려해 육아에 많이 참여를 안 시키려고 해줬다. 왜냐하면 회복에 방해가 될까봐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써줬다. ‘운동도 지금까지 열심히 잘했으니까 조금 천천히 쉬어 가라는 말이지 않겠냐’라며 많이 위로해줬다.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 책 읽는 남자, 고태원이 생각한 독서의 장점?
고태원은 평소 책을 자주 읽는다. 그가 쓰는 블로그도 대부분 책을 읽고 인상적인 구절을 떠올리며 쓴 내용이다. 축구선수들 중 유독 독서와 친숙한 몇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서 고태원에게 독서가 축구선수에게 주는 장점을 물었다. 그런데 물어보자마자 바보같은 질문이란 걸 깨달았다. 고태원은 독서에는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축구선수든 아니든 독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권장했다.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똑똑해지기 위해서다.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프로 선수가 하루에 운동을 2~3시간 정도 한다. 그 외 시간도 운동을 위해서 쓰는 시간들이 많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 영어학원을 다닌다든지 어디 강의를 듣는다든지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제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취미가 독서다. 제가 알지 못하는 지식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써놓은 게 다 책이다.”
“독서를 함으로서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도 늘고, 생각하는 것도 깊어지고.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 더 좋은 정보들을 줄 수 있다. 내 인간관계까지 더 긍정적으로 변한다. 책이 주는 이로움이 굉장히 많다. ‘운동선수는 책을 읽어야 돼’, ‘공부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돼’가 아니라 책은 그냥 다 읽어야 한다.”
최근 읽은 책으로부터 얻은 ‘배움’도 있느냐고 물었다. 굉장히 공감가는 답변이 나왔다. “요즘에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이 기억난다. 사람은 뭐든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라는 미래 상상은 많이 한다. 하지만 ‘뭐가 절대로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잘 안 한다. 돌아보니 사람이 갖는 두려움은 변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많이 하지 않나. 남들이 다 사니까 사고 다 파니까 무서워서 팔고. 옛날부터 반복돼 온 사람의 심리다. 저도 생각해 보니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라며 “그래서 주식을 잘 안 한다. 생각은 하는데 잘 안 된다. 그냥 묻어 놓고 잘 안 보는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 선배 지동원의 은퇴를 보고
1993년생 고태원은 33세 베테랑이다. 스포츠 과학의 발전으로 선수 생명이 분명 늘어났지만, 고태원은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라고 생각했다. 현역 이후의 삶을 조심스럽게 준비 중인 고태원은 ‘지도자의 꿈’도 꾸고 있다. ‘좋은 지도자란 무엇인가’가 최대 고민인 고태원은 날이 갈수록 본인을 가르치고 있고 코칭스태프에 대한 존경심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34살? 35살? 30대 중반이면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고 생각한다. 저보다 더 일찍 은퇴한 선수들고 있고 진짜 대단한 분들은 40대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존경심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한 날보다 할 날이 더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 지도자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한다. 솔직히 고민되는 게 누구를 가르칠 때 그 친구들한테 내가 좋은 지도자가 돼야 할 텐데, 그 ‘좋은 지도자’라는 범주가 굉장히 넓다.”
“누구는 그냥 착한 지도자, 욕 안 하고 쓴소리 안 하는 사람이다. 누구는 경기를 뛰게 해주는 지도자, 누구는 기본기를 잘 가르치는 지도자. 다 다르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전부 다 잘해야 좋은 지도자다. 냉정하게 내가 지도자를 하면 다 잘할 수 있느냐. 솔직히 의문이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배로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축구가 좋아서 노력했지만, 지도자로서도 그런 열정보다 더한 노력을 하면 좋은 지도자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지가 겁난다.”
“제가 넘어야할 산이다. 그래서 코치님, 감독님께 질문을 많이 하고 매번 존경스럽다고 말씀드린다. 저희 훈련 하나 시키는 것만 봐도 어떻게 만들어진 훈련인지 대충 알게 된다. 고참이라 경험이 있으니 훈련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 미팅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런 노고를 생각하면 리스펙해야 한다. 저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태원이 생각하는 ‘축구선수 고태원’의 모습은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고태원은 지난 9월 은퇴를 선언한 선배 지동원을 보고 든 생각을 전했다. 유럽에서도 활약한 국가대표 공격수 지동원은 박주호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한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은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풀었다. 고태원은 평소 친분은 없지만, 선배 지동원의 결심으로부터 많은 점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스스로 내려놓기라는 게 쉽지 않다. 이번에 지동원 선배가 은퇴하셨다. 선배님 말이 굉장히 맞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친분은 없지만, 유튜브 인터뷰를 봤다. ‘나는 아직 축구가 좋은데 내가 축구가 싫어서 은퇴를 하는 게 아니다. 프로 무대에서 내가 지금 버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선택한 거다’라는 말이 저는 굉장히 슬프고 냉정한 것 같다. 받아들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 저한테도 분명 그런 시간이 올 것이다. 남들이 보기 전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진 나도 모르겠다. 제 몸이 언제까지 허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출 수 있게끔 노력 중이다. 하루하루 굉장히 소중하고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고태원은 헌신하는 축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전했다.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축구선수라.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보다 더 대단한 선수들도 많다. 전남과 천안에 있으면서 그 팀에 굉장히 많은 헌신을 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 소속했던 팀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헌신했고 희생했던 축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및 천안시티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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