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 안드로이드 앱 돌리는 899달러 ‘아톰’ 공개…전화·문자는 쓸 수 없다

유리창 너머 에펠탑이 보이는 전시장에서 검은 기기를 바라보는 관람객들 — 내용 이해를 돕는 AI 이미지

하드웨어 지갑 제조사 레저(Ledger)가 스마트폰을 닮은 보안 기기 ‘레저 아톰(Ledger Atom)’을 공개했다. 레저는 10월 15일(현지시각) 파리에서 열린 Op3n 2026 행사에서 아톰을 선보이고 예약을 열었다. 안드로이드 앱을 돌리면서 암호화폐 거래 같은 민감한 작업은 별도 운영체제에서 처리하는 구조다. 공개 시점은 판매 대행업체를 통해 유통된 지갑에 악성 부품이 심겨 있던 사건의 후폭풍이 이어지는 때다.

가격은 보도마다 849달러와 899달러로 갈린다. 배송은 2027년 여름으로 안내됐다.

한 화면에 두 개의 운영체제…아톰의 구조

레저는 아톰을 하드웨어 지갑이 아닌 ‘서명 기기(signer)’로 소개했다. 디크립트(Decrypt)에 따르면 이 기기는 안드로이드 기반 터치스크린 장치다. 데이터 전용 eSIM과 레저의 보안 칩(Secure Element)을 갖췄다. 서명이나 AI 에이전트 요청 승인 같은 민감한 작업을 할 때는 레저 OS가 구동하는 ‘시큐어 모드’로 전환된다.

최고기술책임자 Charles Guillemet의 설명은 언체인드(Unchained)가 전했다. 메인 프로세서에서는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 기반의 일반 운영체제가 돌아간다. 레저 OS는 이와 별도로 보안 칩에서 구동된다. 레저 OS가 제어하는 FPGA(용도에 맞게 회로를 재구성하는 반도체)가 사용자가 승인할 사항이 생길 때마다 화면을 시큐어 모드로 넘긴다. Guillemet은 “최악의 공격 상당수는 사용자가 보는 화면을 속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화면이 가장 중요한 부품”이라고 썼다.

디크립트가 전한 사양은 6.77인치 OLED 디스플레이, 후면 카메라, 4,000mAh 배터리, 퀄컴 드래곤윙 칩이다. 카메라와 마이크 전원을 물리적으로 끊는 ‘프라이버시 스위치’도 들어간다. 화면과 터치 입력은 안드로이드와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다는 것이 레저의 설명이다.

매장 진열대 앞에서 검은색 소형 기기를 양손으로 들어 살펴보는 모습 — AI로 생성한 자료 이미지

849달러냐 899달러냐…가격과 일정의 이면

언체인드에 따르면 레저는 Op3n 2026에서 849달러에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파운더스 에디션 예약에는 전액 환불 가능한 100달러 보증금이 필요하다. 레저 보도자료는 출시 이후 주문분을 899달러로 책정했다. 블룸버그 보도를 옮긴 스트레이츠타임스가 899달러라고 쓴 이유다. 반면 행사 당시에는 두 회사가 가격과 배송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

배송 시점도 보도마다 약간 다르다. 레저 보도자료와 제품 페이지는 2027년 여름이라고 적었다. 최고경영자 파스칼 고티에의 글은 2027년 2분기를 언급했다. 배송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인증 등 제품 인증 절차에 달려 있다. 레저는 구매자가 아직 개발 중인 기기를 예약하는 것이며 사양과 가격이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솔라나 모바일은 레저를 첫 번째 하드웨어 확장 파트너로 지명했다. 시커 앱이 모든 아톰에 기본 설치된다. 시커는 솔라나 모바일의 지갑과 1,500개 넘는 탈중앙화 앱이 올라온 dApp 스토어를 묶은 앱이다. 지금까지 이 스토어는 솔라나 모바일의 자체 시커 폰에서만 쓸 수 있었다.

솔라나 모바일은 시커가 거래액 130억 달러 이상, 거래 건수 1억 5,400만 건 이상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시커와 이전 모델 사가를 합쳐 20만 대 넘게 팔았다고도 했다. 이 소프트웨어 스택을 채택한 제조사는 솔라나 모바일 생태계의 토큰 SKR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레저의 최고인간주체성책임자 이언 로저스는 “처음부터 시커 앱이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기존 시커 폰 지원은 계속된다.

폰 대체재가 아니라 ‘별도 카테고리’

고티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폰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별도의 카테고리”라고 말했다. 민감한 활동용으로 이미 폰을 따로 쓰는 개인과 기업이 타깃이다. 그는 연간 약 2억 대가 팔리는 보안 폰 시장이 기존 하드웨어 지갑 사업보다 훨씬 크다고 봤다.

아톰은 전화와 문자를 쓸 수 없다. 언체인드가 확인한 제품 페이지에 따르면 4G·5G 데이터는 쓰지만 일반 통화나 SMS, 긴급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다. 프로토스는 더 버지를 인용해 eSIM이 데이터 기능으로 제한된다고 전했다. 앱을 내려받을 수 있어 인터넷 기반 메시지와 통화는 가능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기능은 지갑 서명에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는 코인을 보내고 받을 수 있고 크라켄 같은 외부 플랫폼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오픈클로를 통한 AI 에이전트 관리도 지원된다. 메시지는 원하는 메신저로 보내기 전에 암호화할 수 있다. 레저는 암호문을 볼 수 없고 수신자는 시큐어 모드의 다른 아톰에서만 복호화한다고 설명했다. 코인텔레그래프는 레저가 AI 에이전트 승인, 암호화 메시지, 양자내성암호도 지원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고티에는 파트너로 UAE 기업 Cyber50을 런치 파트너로 꼽았다. 크라켄 모회사 Payward와의 통합도 검토 중이다. 신원 인증 분야에서는 Persona를 첫 파트너로 지명했다. 레저는 토큰화(주식 같은 자산을 블록체인 위의 토큰으로 표현하는 것) 확대와 AI 에이전트 시대의 신원 증명 수요도 겨냥한다. 고티에는 “AI 시대에 온라인의 ‘나’가 진짜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느냐”고 말했다.

해킹 사태 한복판의 신제품 발표

레저는 앞서 판매 대행업체를 거친 지갑에서 자금이 빠져나갔다는 신고가 이어지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건은 10월 9일에 처음 공개됐다. 레저가 10월 15일 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격자는 정품 기기를 사들여 비밀번호를 가로채는 스파이웨어 부품을 심었다. 이후 동남아 판매 대행업체를 통해 다시 유통시켰다. 레저는 자사 시스템과 기기는 뚫리지 않았다고 밝혔고 피해 사용자 수와 총손실은 확인하지 않았다.

피해 규모 추정은 매체마다 다르다. 스트레이츠타임스는 갤럭시 디지털 연구를 인용해 수백 개 주소에서 9,000만 달러(약 1,200억 원, 1달러 1,340원 기준)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8,700만 달러 상당의 자금 유출 의심 사건이라는 집계도 있다. 프로토스는 8,600만 달러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레저의 보안팀 동종은 동남아 판매 대행업체 CryptoBilis를 통해 팔린 지갑에서 복구 문구를 설정 단계에서 가로채 LTE로 내보내는 부품을 발견했다. 프로토스는 레저가 이번 공격을 ‘고도로 조직화된 범죄 집단’의 소행으로 규정했다고 전했다. 이 집단은 수백만 달러를 들여 스파이웨어를 심었고 시드(복구 문구) 수집 서버와 자금 세탁 인프라를 자체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레저는 동남아 6개국과 홍콩의 판매 대행업체에 제품을 매대에서 빼 달라고 요청했다. 프로토스는 레저가 공식 리셀러 23곳에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유럽 유통체인 미디어마르크트도 레저 지갑을 매장에서 뺐다. 반면 프로토스는 레저가 독일 공식 리셀러 쪽 기기에서 ‘변조 흔적’을 찾지 못했고 유럽에서 부품과 관련된 자금 손실 보고도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레저는 앞으로 공식 리셀러가 기기를 진열하지 않고 구매 시점에 고객에게 직접 전달하게 하는 새 규정도 도입했다. 반품 기기를 재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되풀이했다.

‘타이밍’ 비판과 남은 질문

아톰에는 변조 방지 기능이 강화됐다. 보안 칩을 둘러싼 외함이 열렸는지, 화면이 떼어졌는지 감지하는 새 방식이 들어간다. 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이 보호 기능은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작동한다. 이번에 발견된 스파이웨어 부품은 명시적으로 막겠다는 것이 레저의 설명이다. 아톰은 포장 단계부터 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설계되며 레저 공식 사이트에서만 판매된다. 이는 레저 보도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개발 시점을 묻는 질문에 레저 대변인은 개별 사건에 대응한 작업이 아니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개발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언체인드는 아톰 관련 발표에 사건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 반응은 곱지 않다. 프로토스에 따르면 X(옛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번 발표를 ‘역대급 최악의 타이밍’이라고 비판했다. 레저가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프로토스는 작은 기존 지갑과 달리 사실상 두 번째 휴대폰을 들고 다닐 사용자가 얼마나 될지 두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고티에는 최근 사건에 대해 “완벽한 보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의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며 “가볍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올해 암호화폐 해킹이 급증했으며 AI 발전으로 범죄자가 코드 결함을 찾기 쉬워졌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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