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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울린 총성은 일제의 침략에 맞선 한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KB국민은행이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7주년을 맞아 거사를 준비하던 과정과 동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역사 영상을 공개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6일 독립운동 기념사업 '대한이 살았다' 캠페인의 하나로 '안중근, 그날의 길-하얼빈 편'을 선보였다. 단순히 의거 당일의 사건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으로 이동해 동지들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는 내용이다.
약 12분 분량으로 제작된 영상에는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방송인 서경석이 참여했다. 서 교수는 중국 하얼빈 일대를 직접 방문해 당시 안중근 의사가 거쳐 간 장소를 살펴봤다. 서경석과 함께하는 대화 장면에서는 역사적 상황과 주요 인물들의 역할을 설명한다.
영상은 안중근 의거를 개인의 결단만으로 이뤄진 사건이 아니라 여러 독립운동가가 협력해 준비한 거사로 다룬다. 특히 우덕순과 유동하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들의 활동도 소개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실행 장소를 정하는 과정이 주요 내용으로 구성됐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만점자로도 알려진 서경석은 이번 영상에서 당시 사건의 흐름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어 영상과 영어 자막 영상이 각각 마련돼 해외에서도 내용을 접할 수 있다. KB국민은행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별도의 이용료 없이 시청할 수 있다.
하얼빈 의거를 이해하려면 당시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싼 국제 정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고,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한국 침략 정책을 추진한 핵심 인물이었다.
1909년 당시 하얼빈은 철도가 연결되는 교통 요충지이자 러시아와 일본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이토는 러시아 측 인사와 만주 지역의 철도 및 양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하얼빈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안중근은 이 소식을 접하고 의거를 계획했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연보에 따르면 안중근 일행은 1909년 10월 2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이튿날 하얼빈에 도착했다. 이들은 현지 신문과 여러 정보를 통해 이토의 이동 일정을 확인했다. 이후 하얼빈역과 열차가 지나가는 채가구역을 거사 장소로 검토하며 역할을 나눴다.
우덕순은 안중근과 함께 의거를 준비한 주요 동지였다.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유동하는 통역과 정보 전달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토가 하얼빈에 도착하는 일정을 확인하고 전보로 알리는 등 거사 준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결국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우덕순 등은 채가구역에서 기회를 살피는 방식으로 계획이 진행됐다.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께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에게 총을 발사했다. 현장에서 러시아 측에 체포되기 전에는 러시아어로 대한 만세를 뜻하는 '코레아 우라'를 외쳤다.
그가 현장에서 체포된 뒤에도 의거의 영향은 이어졌다. 하얼빈 의거는 일본의 침략 정책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항일 의지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 잡았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에서 하얼빈 의거만큼 중요한 부분이 체포 이후의 행적이다. 그는 일본 측에 넘겨진 뒤 중국 뤼순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자신이 개인적인 원한으로 이토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대한의 독립을 위해 행동한 군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같은 해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의거 이후 약 5개월 만이었다. 당시 안중근은 30세의 젊은 나이였으며, 정부는 1962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안중근이 남긴 사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동양평화론'이다. 그는 한국의 독립을 넘어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침략과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제국주의 경쟁이 격화하던 국제 질서 속에서 국가 간 협력과 공동 번영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다만 동양평화론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집필을 시작했지만 사형 집행으로 일부 내용만 남겼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글에는 전쟁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의식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구상이 담겨 있다.
그가 감옥에서 남긴 붓글씨도 중요한 역사 자료다. 일부 유묵에는 왼손 넷째 손가락의 일부가 잘린 손도장이 찍혀 있다. 이는 1909년 동지들과 함께 독립을 다짐하며 손가락을 자른 단지동맹의 흔적이다. 이러한 유묵은 안중근의 사상과 항일 의지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번 하얼빈 편에 이어 오는 11월 뤼순 편을 공개할 예정이다. 후속 영상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체포된 이후 재판을 받고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까지의 과정이 다뤄진다.

이번 영상은 KB국민은행이 오랫동안 진행해 온 독립운동 기념사업과 연결된다. '대한이 살았다' 캠페인의 출발점은 3·1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이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옥중 노랫말을 바탕으로 음원과 영상을 제작하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2020년에는 음악감독 정재일과 래퍼 매드클라운, 가수 루나 등이 참여한 기념 콘텐츠를 공개했다. 영상에 대한 공유나 '좋아요' 참여를 기부금으로 연결하는 방식도 활용했다. 고객이 역사 콘텐츠를 접하면서 독립운동 기념사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 금융 지원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KB국민은행은 2020년 11월 해당 캠페인을 통해 마련한 기부금 4억원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다. 당시 기부금에는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의 생활 안정 및 장학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도 포함됐다.
이후 캠페인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영상으로 전달하는 형태로 확대됐다. 간송 전형필, 강우규, 이회영, 정세권 등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을 다룬 콘텐츠가 제작됐다. 서경덕 교수와 협력해 국내외 시청자에게 한국 독립운동사를 소개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금융회사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활동은 일반적인 금융상품 홍보와 성격이 다르다. 은행이 보유한 디지털 채널을 사회공헌에 활용하고, 일회성 행사가 아닌 영상 자료를 통해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번 안중근 영상도 이러한 흐름에서 제작됐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콘텐츠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희생정신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후속편인 뤼순 편은 다음 달 공개될 예정이다.
하얼빈 편은 KB국민은행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 영상과 영어 자막 버전이 각각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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