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 63억 달러 4시간 만에 털렸다…발단은 6월 직원이 받은 변조 설치 파일

금화가 쏟아진 대형 금고와 컴퓨터 앞에 선 후드 쓴 인물 — AI 자료 이미지

바이낸스가 10월 29일(현지시각) 약 4시간 동안 약 63억 4,000만 달러(약 8조 5,000억 원, 1달러 1,348원 기준) 규모의 디지털 자산을 털렸다. 비트코인·XRP·이더리움 등 여러 코인이 빠져나갔다. 미국 금융 전문매체 아메리칸 뱅커(American Banker)는 칼럼에서 사건을 암호화폐 시장 역사상 최대 강도 사건이자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난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낸스는 고객 보상 방침을 밝히고 출금을 단계적으로 재개했다. 보안 업계는 공격이 어떻게 설계됐는지와 거래소 지갑 구조에 어떤 허점이 있었는지를 따지고 있다. 비탈릭 부테린은 거래소와 수탁기관에 2년간 ‘벙커 모드’를 권고했다.

4시간 동안 10개 블록체인에서 자금이 빠져나갔다

아메리칸 뱅커에 따르면 유출은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대규모 이체가 발생하자 바이낸스 내부 시스템에 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공격자가 쓰던 경로를 완전히 차단하기까지는 몇 시간이 더 걸렸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블록체인 보안업체 서틱(CertiK)의 조너선 리스(Jonathan Riss) 분석가는 코인텔레그래프에 63억 달러가 10개 블록체인에 걸쳐 영향을 받은 자산의 누적 가치라고 설명했다. 이더리움에서는 새 입금이 들어올 때마다 공격자가 핫월렛(인터넷에 연결된 지갑)을 반복해서 비웠다. 리스 분석가는 공격자가 유효한 서명을 확보하면 한 시점의 지갑 잔고가 아니라 서명 시스템이 시간이 지나며 허용하는 이체 범위가 피해 규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바이낸스의 리처드 텅(Richard Teng) 공동 최고경영자는 10월 30일 이번 공격이 거래소 자체 핫월렛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고객 자산 대부분은 오프라인 콜드스토리지(인터넷과 분리된 보관 방식)에 있었고 출금 요청이 있을 때만 핫월렛으로 옮겼다는 설명이다.

아메리칸 뱅커 칼럼은 규모를 은행 강도 사건과 견줬다.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아들을 이라크 중앙은행에 보내 10억 달러 인출을 지시한 사건이 역대 최대 은행 강도로 꼽혔다는 것이다. 1972년 유나이티드 캘리포니아 뱅크 지점에서는 7명이 3,000만 달러를 털었다. 바이낸스 사건은 이 수치를 크게 웃돈다.

코드 화면이 켜진 모니터 앞에서 노트북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 — 이해를 돕는 AI 자료 이미지

6월부터 짜인 각본…가짜 회사에 가짜 최고경영자까지

공격은 4시간짜리 사건이 아니었다. 바이낸스는 6월 한 직원이 AI 코딩 도구를 설치하다 변조된 홈브류(Homebrew) 설치 파일을 내려받으면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보안팀이 이를 포착해 기기를 교체하고 관련 인증정보를 바꿨다. 하지만 공격자는 이미 지갑 인프라 담당 직원들의 정보를 확보한 뒤였다.

9월에는 다른 엔지니어가 표적이 됐다. 아메리칸 뱅커에 따르면 공격자는 구인 사이트를 통해 접근해 가짜 회사와 가짜 최고경영자, 가짜 인사 담당자를 내세웠다. 인사 담당자가 소셜미디어 계정까지 공유했고 최고경영자가 직접 면접을 봤다. 이어 역량 평가를 가장한 과제 파일을 내려받게 했는데 이 파일이 흔적을 감추는 악성코드였다.

바이낸스에 따르면 10월 20일 공격자는 9월에 감염시킨 엔지니어의 컴퓨터와 내부 AI 도구를 이용해 지갑 인프라 엔지니어 2명의 기기를 장악했다. 이후 배포 권한 토큰을 발견했고 이 토큰이 10월 29일 공격에 쓰였다. 바이낸스 대변인은 공격 캠페인은 6월에 시작됐지만 지갑 운영에 닿을 접근권은 10월 20일에야 확보했다고 코인텔레그래프에 밝혔다.

비영리 보안단체 SEAL은 목요일 보고서에서 북한 연계 해커가 9월 가짜 채용 절차로 엔지니어 기기를 장악한 시점부터 공격까지를 약 8주로 추정했다. 이는 9~10월 침투 구간 기준이며 바이낸스가 밝힌 6월 시작 시점과는 다른 범위다. SEAL은 침투 후 장기간 들키지 않고 시스템을 돌아다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 연계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의 가짜 채용 캠페인과 관련된 위장 회사도 올해 최소 4곳 확인했다.

SEAL은 다른 대형 해킹에서도 비슷한 다단계 침투 패턴을 찾았다. 3억 8,800만 달러가 털린 비트겟 해킹 전에는 약 6주, 2억 9,300만 달러 규모 켈프DAO 공격으로 이어진 레이어제로 취약점 전에는 6주 동안 접근권을 쥐고 있었다고 추정했다. 2,400만 달러 규모 AFX 공격 전에는 약 3주였다. 미 연방수사국은 토요일 보고서에서 이번 공격을 트레이더트레이터 소행으로 지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은 이를 부인했다.

핫월렛에 얼마나 뒀나…풀리지 않은 질문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지갑 잔고와 안전장치에 관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바이낸스는 화요일 초기 보고서에서 공격자가 내부 지갑 서명 서비스에 접근해 정상 출금 절차 밖으로 자금을 옮겼다고 밝혔다. 추가 공격을 막기 위해 일부 기술 세부 사항은 비공개로 남겼다. 경쟁사인 코인베이스·게이트·업비트는 사고 이후 콜드스토리지 보관 비율을 공개했다.

리스 분석가는 외부에서 거래소끼리 비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부 서명 구조에 관한 공개 정보가 어디서든 제한적이고 지급준비금 증명은 자산이 어디 있는지만 보여줄 뿐 출금이 어떻게 승인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다. 서명을 요청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정한 이체 한도는 그 애플리케이션이 뚫리면 우회될 수 있다. 서명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거는 한도는 여전히 이체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파이어블록스의 이단 오프랫 공동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는 거래소가 보통 며칠 치 예상 출금액을 핫월렛에 두며 운용 자산의 한 자릿수 초반 비율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는 콜드월렛과 핫월렛 사이에 수동 승인이 필요한 중간 지갑을 둔다. 텔레그램 기반 지갑 월트의 알렉스 토볼 최고기술책임자는 바이낸스 규모의 거래소가 핫월렛에 수십억 달러를 두는 것 자체가 특이하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콜드스토리지에서 핫월렛으로 자금을 보충할 때는 별도의 재무 결정과 수동 승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비트고의 유진 하르 최고제품책임자는 바이낸스의 내부 안전장치를 추측하지 않겠다며 보관 구조 문제는 바이낸스가 가장 잘 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명 전 단계에서 거래 한도, 승인된 출금 주소, 추가 승인 절차를 적용하면 시스템이 뚫려도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테린의 경고와 바이낸스의 보상 약속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은 11월 4일 인도 매체 머니컨트롤과의 인터뷰에서 거래소와 수탁기관에 앞으로 2년을 ‘벙커 모드’로 보내라고 권고했다. 시장 점유율 경쟁보다 고객 자산의 안전을 앞세우라는 뜻이다. 크립토 브리핑이 전했다.

부테린은 이런 공격이 잦아지고 커지면 규제당국이 거래소에 더 엄격한 보안 기준과 수탁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재 대상 주체와 연관된 손실에 대한 책임 문제도 거론했다. 북한 연계 의혹이 불거진 만큼 거래소가 자금을 잃는 것뿐 아니라 그 자금이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로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 고객 보호책도 나왔다. 아메리칸 뱅커는 바이낸스가 탈취 자금의 절반가량을 동결했으며 나머지는 사실상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바이낸스는 자체 준비금으로 고객에게 보상하고 있다. 크립토 브리핑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회사 자금으로 탈취 자산의 최대 98%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금은 11월 초까지 단계적으로 재개됐다.

크립토 브리핑은 이번 사건이 스마트컨트랙트(블록체인 위에서 자동 실행되는 프로그램) 코드 결함이 아니라 중앙화된 지갑 서명 인프라와 이를 운영하는 사람을 노렸다고 짚었다. 아메리칸 뱅커 칼럼은 가상자산이 전통 금융에 더 깊이 편입될수록 이런 공격 방어가 기본 요건이 된다고 주장했다. 은행과 감독당국이 의심거래보고서 작성 이상의 대책을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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