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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에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박 전 이사장은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암살자들’이라는 표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경호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창작의 자유에도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고 비판했다.
박 전 이사장은 6일 채널A와의 통화에서 영화 제목에 대해 “‘들’이면 경호실 아니면 아버지를 뜻한다고 사람들이 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 속 설정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암살에 관여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문세광과 박 전 대통령이 공범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이 과정에서 육 여사가 피격돼 사망했다. 영화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실제 인물과 가상의 인물, 허구적 상황을 결합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번 논란은 영화가 사건 당시 문세광 외에 다른 총격이나 배후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장면을 담으면서 시작됐다. 영화에는 당시 현장에서 발생한 총성을 근거로 다른 인물의 개입 가능성을 추적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관객과 정치권에서는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반면 영화의 제작진은 실제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삼았지만 영화에서 제시되는 가설이나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작품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을 어디까지 구분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이어지는 이유다.
박 전 이사장은 이런 영화적 설정 자체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창작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는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은 “국민장을 치렀는데, 사형을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창작의 자유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거예요. 관객들은 어린 아이들도 볼 건데,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실제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영화를 통해 당시 사건을 접할 경우 영화 속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육영수 여사는 1974년 피격 사건으로 사망한 뒤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박 전 이사장은 당시 국민들이 장례 과정에서 보였던 애도와 슬픔을 언급하며 영화 논란이 유족뿐 아니라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으로서 우리도 고통스럽고, 그때 200만 명이 그냥 광화문 그쪽을 꽉 메워가지고 통곡하시고, 그런 분들 가슴에 다 대못 박는 얘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영화가 단순한 허구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 인물의 사망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전 이사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당시 가족들이 육영수 여사의 사망 소식을 접했던 상황도 언급했다. 그는 사건 당시 자신이 20세였으며,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언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어머니의 사망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박 전 이사장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직접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기보다 먼저 상황을 알릴 방법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지금 도쿄공항으로 가서 언니가 충격을 받지 않게 잘 이야기하라. 편지를 읽어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측에서도 박 전 대통령이 받을 충격을 우려해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며 소식을 전달했다고 박 전 이사장은 설명했다.
박 전 이사장이 영화 논란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영화에 대한 비판은 정치권과 유족 측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 EG 회장도 영화 논란과 관련해 아버지를 배후로 보는 해석에 불쾌감을 나타낸 바 있다.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은 지난 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관해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4년 8월 17일자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편지에는 육영수 여사 피격 직후 박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심경을 적은 내용이 담겼다.

유 의원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고 유족이 현재까지 살아 있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면 창작의 자유만큼 책임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영화의 역사적 사실관계와 창작의 범위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이어졌다.
교육계에서도 논란이 확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6일 영화와 관련해 실제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확인된 사실과 검증되지 않은 의혹,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를 흐릴 경우 청소년에게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영화를 관람할 경우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를 구분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영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 109명은 이날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측에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을 철회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영화가 해외 관객에게 실제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 제작진과 배우를 둘러싼 논쟁도 별도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보수 성향 단체가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을 대상으로 비판과 집회를 이어가면서 배우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졌다.
박 전 이사장은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배우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작품을 연기한 사람들일 뿐이라며 영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제작사와 작품을 만든 관계자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은 “정말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분들은 연기자일 뿐이시잖아요. 작품을 만든 제작사가 어딘지, 누군지, 그런 맥을 좀 잘 짚으셔서 괜히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입장과 배우 개인을 향한 공격은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법적 절차로도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영화 제작진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고발 사건은 경찰에 배당돼 수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6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 접수된 고발장을 종로경찰서에 배당했으며 고발인 조사 등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박 전 이사장은 유족으로서 작품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배우 개인을 향한 비난은 자제해달라는 입장을 함께 밝혔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실제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 표현의 자유와 창작자의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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