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악의 지하철' 1위... 오죽하면 탑승객 입에서 이런 말까지

휴대전화 지하철 앱에 ‘5분 후 도착'이 떴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갔다. 승강장 전광판은 여전히 '전역 출발'이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그대로다. 겨우 올라탄 열차가 두 정거장을 가더니 또 선다. 열차 간격을 조정한다는 안내방송만 무심하게 흘러나온다. 승객들은 말없이 휴대전화 시계만 들여다본다. 경의중앙선 이용객이라면 한 번쯤 겪어 봤을 장면이다.

서울 수도권 지하철 경의·중앙선 이촌역에서 전기 공급 문제로 열차가 멈춰서 코레일 관계자들이 복구하고 있다. / 뉴스1 자료사진

경의중앙선은 수도권 전철 가운데 원성이 가장 높은 노선으로 꼽힌다. 별명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의재앙선', '경의환장선'은 기본이다. 노선 이름 글자를 하나씩 반대말로 바꾼 '멸시가장자리악'이라는 별칭까지 대학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다. 경의는 멸시로, 중앙은 가장자리로, 선은 악으로 뒤집은 말장난이다. 오지도 않고, 와도 멈추고,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불만이 이름 하나에 다 담긴 셈이다.

불만의 역사도 길다. 서강대역 열차 안내 화면을 찍은 사진 한 장이 2019년 6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적이 있다. 바로 다음 열차는 공덕역에 있었다. 그다음 열차는 9개 역 전인 왕십리역에 있었다. 또 그다음 열차는 15개 역 전인 양원역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표상 배차 간격이 약 30분이나 된다. "배차 간격이 기차다"라는 댓글이 달린 이유다. 다른 네티즌은 "시간표대로 오는 적이 없더라고요"라고 하소연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라며 승강장 대기의 고충을 털어놓은 댓글도 있었다. "용문행 타는 사람의 서러움을 아나"라는 하소연도 나왔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합쳐지기 전엔 차라리 시간이라도 잘 지켰다는 푸념도 이어졌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럴까. 답을 찾으려면 노선의 출생부터 따져 봐야 한다. 경의중앙선은 처음부터 지하철로 태어나지 않았다. 원래는 서로 다른 두 철도였다. 경의선은 서울에서 개성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로 이어지던 철길이다. 중앙선은 서울에서 출발해 경북 안동 방면으로 뻗은 내륙 간선철도다. 둘 다 사람과 화물을 먼 곳까지 실어 나르던 기찻길이었다.

수도권이 커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파주, 고양, 구리, 남양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 새 지하철을 놓기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다. 정부와 철도당국은 이미 깔려 있는 철길에 전동차를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빠르고 싸게 수요를 받아 내려는 선택이었다.

중앙선 구간은 2005년 12월 청량리~덕소 구간부터 수도권 전철로 바뀌었다. 이후 팔당, 국수, 용문까지 차례로 전철이 닿았다. 경의선 구간은 2009년 7월 서울~문산 구간이 전철로 개통했다. 두 노선 사이 공덕~용산 구간은 한동안 비어 있었다. 파주에서 왕십리로 출근하려면 중간에 갈아타야 했다. 공덕~용산 구간이 2014년 12월 27일 열리면서 두 노선은 하나로 이어졌다. 지금의 경의중앙선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어 붙인 결과 노선은 엄청나게 길어졌다. 파주 문산에서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경기 양평 용문과 지평까지 간다. 노선 연장은 134.1㎞, 역은 50개가 넘는다. 갈아타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문제는 ’지연‘에 지나치게 약하다는 점이다. 문산이나 일산 쪽에서 생긴 1~2분 지연은 공덕, 용산, 청량리를 지나며 점점 불어난다. 뒤로 갈수록 지연 폭이 커지는 구조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중앙선 구간에서 쌓인 지연은 경의선 구간으로 고스란히 넘어간다. 한 곳이 막히면 노선 전체가 흔들린다.

더 큰 문제는 선로를 혼자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전동차만 다닌다. 앞차와 간격만 맞추면 열차를 촘촘하게 넣을 수 있다. 경의중앙선은 다르다. 특히 중앙선 구간에선 KTX-이음, ITX-청춘, 무궁화호, 화물열차가 같은 선로를 나눠 쓴다. 등급이 높은 열차가 지나가면 전동차는 대피선에 들어가 길을 비켜 줘야 한다. 승객 입장에선 멀쩡히 달리던 열차가 이유도 모른 채 서는 셈이다. 다른 열차가 지나갈 시간까지 비워 둬야 하니 전동차 배차를 줄이기도 어렵다. 앞뒤 열차 사이 안전거리도 지켜야 한다. 시간표에 열차를 더 끼워 넣을 여유가 처음부터 거의 없는 구조다. 철도 운영에선 통상 등급이 높은 열차가 먼저 지나간다. 출퇴근 승객을 가득 태운 전동차가 장거리 열차에 길을 내주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경의중앙선 신촌역 인근에서 사다리차 전도사고가 발생해 가좌역~신촌역 구간이 양방향 통제된 가운데 서울역행 경의중앙선 열차에 탑승한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려 선로를 따라 대피하고 있다. 2025년 6월 13일자 뉴스1 사진(독자 제공).

청량리~망우 구간이 특히 문제다. 이 구간의 하루 선로 용량은 2024년 말 기준 163회다. 실제 운행 횟수는 157회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상 꽉 찬 상태다. 상봉역 부근에선 서울 방면으로 가는 ITX-청춘이 경의중앙선 선로를 가로질러야 한다. 열차 한 대가 늦으면 뒤따르는 열차가 줄줄이 발이 묶인다. 열차를 더 넣고 싶어도 넣을 틈이 없다.

이 좁은 길로 다니는 고속열차는 오히려 늘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중앙선 KTX-이음 운행 횟수를 하루 6회에서 주중 16회, 주말 18회로 늘렸다. 강릉선 KTX-이음도 하루 4회 증편했다. 코레일은 당시 청량리~망우 구간의 선로 용량 포화를 줄이려고 강릉선 열차와 중앙선 열차 두 대를 이어 붙여 운행한다고 밝혔다. 선로가 얼마나 빠듯한지 코레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배차 간격도 수도권 전철이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코레일은 2022년 1월 3일 첫차부터 경의중앙선 운행 시각을 손봤다. 퇴근 시간대 일산에서 끝나던 열차를 문산까지 연장했다. 그러자 오후 6시 무렵 홍대입구, 공덕,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운정역으로 가는 열차의 배차 간격이 최대 28분에서 12분으로 줄었다. 출퇴근 시간대 급행열차를 가좌역에 추가로 세우기도 했다. 오전 8시 무렵 가좌역의 용산 방면 배차 간격은 최대 18분에서 9분으로 단축됐다. 뒤집어 말하면 개편 전엔 퇴근길에 30분 가까이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는 얘기다.

개편 뒤에도 불편은 여전하다. 다음 열차까지 20분 넘게 남았다는 안내를 보는 일은 지금도 드물지 않다. 겨우 기다려 탄 열차가 중간에 멈춰 서면 약속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간다. 퇴근 시간대 승강장엔 긴 줄이 늘어선다. 앞차를 놓치면 다음 열차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겨울철엔 열차가 문을 연 채 역에서 대기하는 바람에 찬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그래서 단골 이용객들은 실시간 열차 위치 앱부터 켠다. 시간표는 참고용일 뿐이다. 약속이 있으면 아예 한두 대 앞 열차를 타는 게 습관이 됐다는 이용객도 적지 않다. 늦을 걸 대비해 일찍 나서는 것이다. 그만큼 하루가 짧아진다.

코레일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코레일은 2023년 수도권 전철 지연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승객이 많은 도심 구간과 승객이 적은 외곽 구간을 끊어 운행 빈도를 달리하자는 방안이 이 자리에서 나왔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운행구간을 쪼개면 갈아타야 하는 승객의 불만이 더 커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열차 방향을 바꾸는 회차 시설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의 여파로 차질을 빚었던 KTX 열차와 경의중앙선 열차 운행이 재개된 30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현장을 열차가 통과하고 있다. 2026년 5월 30일자 뉴스1 사진.

전문가들 사이에선 무작정 열차를 늘리기보다 정시 운행부터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성호 전 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는 지난 7월 한 언론 기고에서 병목 구간의 선로 용량을 늘리고 일반열차와 광역전철의 간섭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교수는 출퇴근 시간대 증편보다 정시성을 우선하고 실시간 운행 정보를 더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장 확실한 해법은 선로를 늘리는 것이다. 청량리~망우 구간에 선로를 두 개 더 놓는 복복선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노선 주변이 이미 빽빽하게 개발돼 땅 위로 선로를 깔 여유가 거의 없다. 지하로 파면 천문학적인 비용과 긴 공사 기간이 따라온다.

중앙선 구간이 기대를 거는 것은 GTX-B 노선이다. GTX-B는 인천 송도에서 서울 용산과 청량리를 거쳐 경기 남양주 마석까지 잇는다. 용산~상봉 구간은 2023년 말 착공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는 인천대입구~용산 구간은 2024년 7월 실시설계 승인을 받았다. 전 구간 개통 목표 시점은 2030년이다. 일부 열차 수요를 GTX-B가 나눠 맡으면 중앙선 선로 부담이 다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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