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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흉기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편의점에 신고를 요청한 50대 여성의 말에 경찰이 최고 대응 단계를 발령하고 출동했다. 확인해 보니 흉기는 없었다. 부부가 술을 마시다 구두주걱으로 서로 때린 폭행 사건이었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가 폭행 혐의로 50대 남성 A 씨와 50대 여성 B 씨를 형사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부부인 A 씨와 B 씨는 지난 4일 오후 9시쯤 안산시 단원구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말다툼을 벌였다. 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두 사람은 집에 있던 구두주걱으로 서로를 때린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먼저 손을 댄 쪽은 B 씨였다. B 씨는 A 씨를 때린 뒤 A 씨가 자신을 때리려 하자 집을 뛰쳐나갔다. 인근 편의점으로 달려간 B 씨는 직원에게 "남편이 칼로 죽이려 하니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편의점 직원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신고 내용에 흉기와 살해 위협이 담기자 경찰은 최고 대응 단계인 '코드제로'(CODE 0)를 발령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경찰은 A 씨가 흉기를 들었던 정황을 찾지 못했다.
코드제로는 납치·감금·살인·강도 같은 강력범죄가 의심되거나 신고자의 생명과 신체에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발령하는 경찰의 최고 긴급 대응 단계다. 코드제로가 발령되면 112 신고 접수 단계에서 바로 출동 지령이 내려지고, 관할 지구대와 파출소뿐 아니라 형사 등 가용 인력이 최단 시간 안에 현장으로 출동한다.
경찰의 112 신고 대응 체계는 원래 코드1부터 코드3까지 3단계였다. 경찰은 2016년 4월 긴급한 사건에 인력을 우선 투입하겠다며 이를 코드0부터 코드4까지 5단계로 세분화했다. 기존 코드1(긴급)을 코드0과 코드1로 나누면서 코드제로가 새로 생겼다.
코드제로는 여성이 강제로 차에 태워지는 상황이나 비명을 지른 뒤 전화가 끊긴 상황처럼 강력범죄가 진행 중인 것으로 의심될 때 발령된다. 그 아래 단계인 코드1은 낯선 사람이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등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이 임박했거나 진행 중일 때 적용된다. 코드1도 최단 시간 출동이 원칙이다.
코드2는 생명과 신체에 대한 잠재적 위험이 있거나 범죄 예방이 필요한 경우다. 귀가해 보니 집이 털려 있는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코드2 사건은 코드0과 코드1 사건 대응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출동한다. 코드3은 당장 현장 조치는 필요 없지만 수사나 전문 상담이 필요한 경우다. 코드4는 생명·신체 위험과 관계없는 민원이나 상담으로, 경찰이 출동하지 않고 해당 기관으로 안내한다.

이번 사건처럼 신고 내용이 실제와 다르면 한정된 출동 인력이 엉뚱한 곳에 묶일 수 있다. 같은 시간대에 진짜 위급한 신고가 들어오면 대응이 늦어질 수 있어 경찰은 112 신고를 신중하게 해 달라고 거듭 당부하고 있다.
현행법은 112 신고를 거짓으로 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2024년 7월 시행된 112신고처리법은 상황을 거짓으로 꾸며 신고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경범죄 처벌법은 있지 않은 범죄나 재해 사실을 공무원에게 거짓으로 신고하면 6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했다. 허위 신고로 경찰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했다고 인정되면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다.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다만 법원은 신고자가 거짓인 줄 알면서 신고했는지를 따진다. 흉기에 찔렸다고 112에 신고해 경찰관 7명이 출동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여성에게 의정부지법이 최근 무죄를 선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여성이 신고 내용이 거짓임을 알면서 경찰관들을 속였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경찰 조사에서 모두 "술에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서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 벌어진 폭행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이 적용되는 가정폭력범죄에 해당한다. 가정폭력처벌법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사건을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가정보호사건은 형사처벌 대신 가정법원이 보호처분을 내리는 절차다. 법원은 행위자에게 피해자 접근 제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제한, 사회봉사·수강명령, 보호관찰, 상담 위탁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다.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가정폭력의 재발을 막는다는 취지다. 경찰은 조만간 A 씨와 B 씨 사건을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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