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현장서 자기 구해준 소방관 찾아서 "저 결혼해요" 신고한 여성

"내일이 2차 수술이에요. 병원에서 엄마가 저를 구조한 소방대원 성함과 연락처를 안다고 해서 이렇게 편지를 써요."

꾹꾹 눌러쓴 손글씨 편지는 “To. 소방대원 아저씨”로 시작한다. 화상 치료를 받던 열일곱 살 여고생이 병상에서 쓴 편지다. 종이 맨 아래에는 “From. 김예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편지를 쓴 여고생이 12년 만에 '소방대원 아저씨'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결혼 소식을 들고서였다.

경기북부119특수대응단에 따르면 28세가 된 김예빈씨가 11일 오전 경기 의정부시 금오동 경기북부119특수대응단을 찾아 채종영(39) 소방위를 만났다. 김씨 곁에는 예비 남편 전우종(34)씨가 함께했다. 채 소방위는 2014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에서 김씨를 구조한 소방관이다.

이 자리는 김씨의 오랜 바람에서 비롯됐다. 대학에 진학하고 약사가 돼 결혼까지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날의 구조 덕분이라는 마음을 김씨는 늘 품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전씨가 소방 당국에 연락해 채 소방위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12년 전의 구조자와 구조대원이 다시 마주했다.

화재 현장에서 구조됐던 고등학생이 12년이 흘러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구해준 소방관을 찾아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 SBS 뉴스 영상 캡처

고교 1학년이던 김씨는 체험학습을 앞두고 약을 사러 고양종합터미널 지하로 내려갔다. 2014년 5월26일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연기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이 화재로 9명이 숨졌다.

현장에 투입된 채 소방위가 쓰러진 김씨를 발견했을 때 김씨는 곧바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옷과 머리카락이 에스컬레이터에 끼어 있었다. 채 소방위는 도끼로 철판과 기계를 부순 끝에 김씨를 구해냈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가 공개한 당시 영상에는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찬 지하로 내려가는 채 소방위의 모습이 담겼다.

김씨가 편지에 적은 구조 장소는 '홈플러스 입구 에스컬레이터 부근'이었다. 편지 첫머리에서 김씨는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고양시 종합터미널 화재사건 때 홈플러스 입구 에스컬레이터 부근에서 구조된 17세 여학생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씨는 화상전문병원을 거쳐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다리 화상이 심했다. 여섯 차례 수술을 받았다. 긴 재활이 뒤따랐다.

2차 수술을 하루 앞두고 김씨는 펜을 들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구조대원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 온 날이었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가 공개한 편지 속 열일곱 살은 씩씩했다. "다행히 얼굴은 거의 안 다쳤고, 다리에만 심한 화상을 입어서 빠르게 회복 중이랍니다"라고 적었다.

"사실 쓰러질 때만 해도 이렇게 죽는구나 싶기만 했는데 일어나 보니 크게 다친 곳도 없이 살아 있는 게 기적 같아요. 아저씨가 빨리 와주신 덕분이에요."

자신을 구한 소방관의 처지를 걱정하는 마음도 편지에 담겼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소방공무원들 근무환경이 많이 열악하다고 하던데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일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존경해요. 우리나라도 어서 선진국처럼 근무환경이나 장비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할 텐데…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요즘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게 뭔지 느끼며 살아요.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랄게요."

사고와 긴 회복의 시간은 김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김씨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 전에는 자기 성공만 생각하던 학생이었다고 돌아봤다. 치료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약사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대학 시절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다. 약사가 된 뒤에는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이날 김씨는 12년 전 병상에서 쓴 편지를 채 소방위 앞에서 직접 읽었다. 열일곱 살이 꾹꾹 눌러쓴 문장이 스물여덟 살 약사의 목소리로 다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김씨는 채 소방위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양 선물을 준비했다. 채 소방위는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원앙 그림을 건넸다. 퇴근 뒤 며칠 밤을 새워 직접 그린 그림이다. 곧 부부가 될 두 사람을 위해 고른 그림이었다.

채 소방위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건 누구라도 당연히 했을 일이라며 오히려 잘 지낸다고 연락해준 김씨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화재 현장에서 구조됐던 고등학생이 12년이 흘러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구해준 소방관을 찾아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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