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흉기난동] 더 큰 참사 막았다…여자친구랑 밥 먹으러 왔다가 범인 제압한 시민 “팔 붙잡고...”

인천 남동구의 한 대형 복합상업시설에서 대낮에 흉기난동이 벌어진 가운데, 경찰이 도착하기 전 범인에게 직접 맞선 시민들의 사연이 알려졌다. 여자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들렀다가 현장을 목격한 30대 남성은 의자 하나를 들고 범인에게 달려들었고, 다른 시민들과 힘을 합쳐 흉기를 빼앗았다.

13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대형 상업시설에서 50대 남성이 흉기 난동을 벌여 이용객 8명이 다쳤다. 사진은 건물 2층 식당가 폐쇄회로(CC)TV에 담긴 피의자 모습과 이송되는 피해자 모습 / 연합뉴스

13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40분께 인천 남동구 구월동 홈플러스 인천구월점이 입점한 씨앤씨(C&C) 빌딩에서 59세 남성 A씨가 흉기를 휘둘러 이용객 8명이 다쳤다. 신고는 오후 1시 49분께 119에 접수됐다. 부상자 가운데 20대 여성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의자 들고 뛰어든 31세 청년

범인 제압에 나선 주인공은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나현준 씨(31)다. 나 씨는 이날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나 씨는 여자친구와 식사를 하려고 건물 2층 식당가를 찾았다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광경과 마주쳤다. 눈앞의 장면이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양손에 흉기를 쥔 남성이 시민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서는 한 음식점 관계자가 먼저 의자를 들고 범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 씨는 "한 음식점 사장님이 혼자 의자를 들고 범인을 막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뒤로 도망가고 있었다"며 "여자친구가 걱정하며 말렸지만 도와야겠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생각도 안 나 의자를 들고 같이 뛰어가 맞섰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져 경찰이 있을 리도 없고,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게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인천 흉기난동 현장 조사하는 경찰 / 뉴스1

에스컬레이터 앞 사투…10분 만에 흉기 빼앗았다

나씨와 음식점 관계자들은 의자를 방패 삼아 범인과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을 막아냈다. A씨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과 4층으로 옮겨 가자 이들도 뒤를 쫓았고, 이 과정에서 의자를 든 다른 시민들이 합류했다.

나씨는 "정신이 없어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시민 3~4명이 함께 제압에 나섰다"며 "3층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의자로 몸을 누르고 팔을 붙잡아 흉기를 빼앗았다"고 설명했다. 처음 난동을 목격한 순간부터 범인을 경찰에 넘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건물의 다른 상인도 시민들이 의자로 맞서던 장면을 기억했다. 이 상인은 "2층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남성들이 의자로 방어하고 있더라"며 "피의자가 층을 이동하면서 흉기 난동을 벌여 '칼 들고 있다. 도망치라'고 알렸다"고 말했다. 일부 보도에서는 상가 점주 2명이 A씨를 제지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인천 구월동 상가 건물 식당가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 뉴스1

나 씨 역시 이 과정에서 다리를 다쳤다. 그는 "흉기에 베이지는 않았지만 제압하는 과정에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는 등 정신이 없어 어디에서 상처를 입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상황이 정리된 지금에서야 긴장이 풀려 몸이 많이 떨리고 통증이 몰려온다"고 했다.

그는 다친 시민들을 걱정하며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길 바랐는데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막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면서도 "그래도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나 씨와 다른 시민들의 빠른 제압이 없었다면 더 큰 참사로 번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양손에 흉기 묶고 층마다 공격…부상자 8명

목격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A씨는 흉기를 양손 손목에 묶은 채 에스컬레이터로 지하부터 여러 층을 오르내리며 공격을 이어갔다. 건물 관리실 직원은 "칼을 손에 묶고 다니면서 지하부터 층을 훑고 올라가면서 범행했다"고 했다. 건물 1층 상인은 "흉기는 약 15cm 이상 돼 보일 정도로 상당히 길었고 주로 찌르는 식으로 공격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A씨는 범행 약 1시간 전부터 건물 안을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상인은 "해당 남성이 1층에서 '화장실 좀 쓰자'며 돌아다녔는데, 마침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던 탓에 2층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피해는 늦은 점심을 먹던 2층 식당가에 집중됐다. 이곳 분식점 운영자는 "오후 1시40분쯤 (손님들이 음식을 받아서 식사하는 쪽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가 했다"고 회상했다. 사건 직후 식당가에는 출입 통제선이 쳐졌고, 바닥 곳곳에 혈흔이 남아 있었다.

인천소방본부가 파악한 부상자는 20대 여성 2명, 30대 남성 1명, 40대 남녀 4명, 50대 여성 1명이다. 심정지 상태로 이송된 20대 여성을 제외한 7명은 가슴 열상, 어깨와 등·갈비뼈 부위 좌상, 손목 타박상 등을 입었다. 소방당국은 오후 2시 12분께 건물 1층에 임시 응급의료소를 꾸려 응급처치와 병원 이송을 진행했다.

홈플러스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사건이 발생한 곳은 건물 2층 식당가이며, 홈플러스 인천구월점은 같은 건물 지하에 임대 매장으로 입점해 있을 뿐 이번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인천 구월동 상가 건물 / 연합뉴스

전자발찌 찬 살인미수 전과자…지난달에도 흉기 소지로 수사

A씨는 과거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복역했으며, 이번 범행 당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 9월 인천 계양구의 한 피부과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중 흉기를 지니고 있다가 적발돼 경찰 수사를 받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인천 남동경찰서로 압송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이상동기 범죄로 보고 정확한 범행 동기와 흉기를 갖게 된 경위, 피해자들과의 관계 유무 등을 조사하고 있다.

박찬대 인천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들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참변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적었다. 이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퍼지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며 "공식 발표를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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