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어민 강제북송 혐의' 정의용·서훈, 항소심서 더 무거운 처벌 나왔다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의 선고유예보다 형이 무거워졌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혐의로 기소된 정의용(왼쪽)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서울고법 형사15-3부(성언주 원익선 이희준 고법판사)는 21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노 전 실장이 직권남용 범행을 공모하거나 북송 결정에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봤다. 재판부는 "북한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라며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해석되는 점 등 관련 법리를 종합하면 원심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북한 주민들을 대한민국 국적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북송 결정과 집행 과정도 위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북송 결정과 집행이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직권행사의 법령상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고, 직무집행의 필요성과 상당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무비서관실과 외교부 보고서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이틀 만에 북송을 결정하고 사흘 만에 집행을 완료한 점에 비춰 적어도 미필적으로 직권남용의 고의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양형 이유에서는 피고인들의 책임을 무겁게 봤다. 재판부는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 김 전 장관에 대해 "업무 특성상 국가안보와 남북관계, 대한민국 국민 기본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의무 준수의 필요성이 어느 공무원보다 높음에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관계 공무원의 의견에도 나포 이틀 만에 북송을 결정하고 불과 5일 만에 집행했다"며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주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법한 결정과 지시에 동원된 하급 공무원들이 정신적 충격을 겪고 법적·도덕적 책임에 직면하게 됐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 주민들까지 강제북송의 공포에 떨게 했다"며 "피고인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불리한 사정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혐의로 기소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앞서 공소청은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 각각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노 전 실장에게는 징역 4년을, 김 전 장관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선고에 앞서 재판부에 무죄 선고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흉악 범죄자들을 국내로 들이지 않고 북송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결정이었으며 이를 사후에 사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이 사건은 2019년 11월 2일 동해상에서 북한 어민 2명이 나포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함께 배에 탄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뒤 남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지목됐다. 어민들은 합동조사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나포 이틀 만인 11월 4일 노 전 실장 주재로 청와대 대책회의를 열어 진행 중이던 합동조사를 끝내고 북송을 결정했다.

정부는 이들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질러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송환 이유로 들었다. 어민들은 11월 7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 당국에 넘겨졌다. 정부 수립 이후 북한 주민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첫 사례였다. 통일부는 2022년 7월 어민들이 판문점에서 북송을 거부하며 몸부림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검찰은 2023년 2월 정 전 실장 등 4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탈북 어민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도록 해 관계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어민들이 대한민국 법령과 적법절차에 따라 국내에 머물며 재판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방해한 혐의도 적용됐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2025년 2월 19일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노 전 실장과 김 전 장관에게는 각각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범죄가 경미한 경우 형의 선고를 미루는 판결이다.

1심 재판부는 귀순 의사를 밝힌 어민들을 강제로 돌려보내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법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행사를 방해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남북 분단 이후 이런 사안에 적용할 법률 지침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담당자만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라며 형 선고를 유예했다. 어민들이 저지른 범죄의 흉악성도 함께 고려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 김 전 장관은 항소심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건의 실체와 당시의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판단으로 승복할 수 없다"며 "즉각 대법원에 상고해 진실을 밝히고 법적 정당성을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치적 논란 속에서 시작된 무리한 수사와 기소의 문제점을 외면한 채 전임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형사책임을 가중했다"며 "대법원에서는 오직 법과 증거에 따라 사건의 진실과 당시 정부의 정책적 결정이 지닌 정당성이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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