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법인이 사기 쳤다”던 70대 방화범…운동기구 디자인 국내외 모두 '등록 완료'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건물 두 곳에 잇따라 불을 지른 70대 A씨가 문제를 제기한 특허법인과 관련해, A씨 명의의 운동기구 디자인이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브라질 등 해외에서도 등록된 사실이 확인됐다.

등록공보에는 A씨가 디자인 창작자이자 권리자로 기재돼 있었으며, 특허법인들은 출원 절차를 대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A씨가 해외 상표 등록증 발급 문제를 둘러싸고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고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운동기구 디자인 2건, 국내 등록공보에 A씨 이름

21일 확인된 특허청 등록디자인공보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근력운동기구’, 2020년 ‘운동기구’라는 명칭으로 디자인 2건을 등록했다. 두 공보 모두 디자인을 만든 사람을 뜻하는 ‘창작자’와 디자인권을 가진 ‘디자인권자’ 항목에 A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19년 등록된 근력운동기구 디자인은 같은 해 4월 17일 출원돼 8월 23일 등록됐다. 출원 대리는 신명빌딩 3층에 입주했던 특허법인 B사의 변리사가 맡았다. 도면에는 양쪽 받침대가 원통형 봉을 지탱하는 형태의 기구가 담겼다. 사용자가 봉 위에 올라서 양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거나 몸을 회전하는 모습도 제시됐다.

등록공보는 이 기구를 원통형 봉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선 상태로 좌우 360도 회전하면서 신체의 작은 근육을 자극해 근력을 향상하는 운동기구라고 설명했다.

2020년 등록된 운동기구 디자인은 같은 해 2월 12일 출원돼 12월 4일 등록됐다. 해당 출원은 또 다른 화재 피해 건물인 한양빌딩 4층에 입주한 특허법인 C사가 대리했다. 두 디자인 모두 등록 절차를 거쳐 권리가 A씨 명의로 설정된 것이다.

현장 감식 위해 건물 진입하는 경찰·소방 등 관계자들 / 뉴스1

미국·브라질에서도 등록…EU·일본·캐나다 보호 기록

A씨의 운동기구 디자인은 국내에서만 등록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 특허상표청의 등록공보에는 근력운동기구 디자인이 2021년 7월 20일, 운동기구 디자인이 2022년 2월 8일 각각 등록된 것으로 나와 있다. 브라질 산업재산권청 공보에도 두 디자인이 각각 2020년 1월 14일과 8월 25일 등록된 기록이 남아 있다.

해외 공보에 기재된 출원인과 창작자 정보, 국내 출원번호 등을 대조한 결과 해외 등록 디자인은 국내에 등록된 두 디자인과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국제디자인 등록 기록에는 두 디자인 모두 유럽연합(EU)과 일본, 캐나다에서 보호를 인정받은 이력도 있다.

디자인 등록은 제품의 모양이나 외형처럼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디자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제품의 작동 원리나 제조 방법 등 기술적 발명을 보호하는 특허와는 구별된다. 상품명이나 로고 등 상품의 출처를 구별하는 표지를 보호하는 상표와도 다르다.

따라서 디자인권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제품이 실제로 생산·판매됐거나 수익을 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디자인 등록과 실제 제품의 제작·판매는 별개라며, 특허나 디자인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확인된 국내외 등록 기록은 A씨가 주장한 피해 내용과 별개로, 적어도 두 운동기구 디자인의 권리가 A씨 명의로 등록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허법인은 출원 대리인으로 기재돼 있었으며, 등록공보상 권리자는 A씨였다.

압송되는 역삼동 방화 용의자 / 뉴스1

2022년에도 사무실 찾아가 위협…징역 2년 6개월 선고

A씨와 두 특허법인 사이의 갈등은 이번 방화 사건 이전에도 형사사건으로 이어진 적이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12월 두 업체 사무실을 찾아가 직원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와 가위로 위협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이듬해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특수협박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이번에도 두 특허법인이 자신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해외 상표 등록을 의뢰한 뒤 등록증 발급 문제를 놓고 불만이 쌓인 것이 범행의 배경인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해외 상표 등록을 의뢰한 뒤 온라인으로 등록증이 발급된다는 안내를 받았으나, 종이 등록증을 요구하며 변리사가 자신의 상표를 훔쳤다고 의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자택에 종이 등록증을 걸어놓을 정도로 이에 집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상표 등록증의 발급 방식과 상표권의 권리 관계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상표권은 법정 절차에 따라 등록 여부와 권리자가 결정되며, 등록증이 종이 문서인지 전자 형태인지가 그 자체로 권리 소유자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A씨가 주장한 내용과 실제 상표 등록 및 대리 업무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수사를 통해 확인할 부분이다.

압송되는 역삼동 방화 용의자 손에 들린 것 / 뉴스1

건물 두 곳에 잇따라 불 질러…경찰, 구속영장 신청 방침

A씨는 지난 20일 오전 11시 54분께 신명빌딩 3층에 불을 지른 데 이어 낮 12시 1분께 한양빌딩 4층에도 불을 낸 혐의를 받는다. 두 건물에는 A씨가 불만을 품은 특허법인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화재로 1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행 뒤 현장을 벗어났다가 같은 날 오후 동묘앞역 인근에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경찰서로 압송되던 중 범행 동기를 묻는 취재진에게 “특허 법무법인에서 사기 쳐서”라고 답했고, 피해자들을 향해서는 “앞으로 사기 치지 말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범행 사실을 대체로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에게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은 특허법인에 대한 A씨의 불만이 실제 등록 기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과거 위협 사건 이후 갈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발생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역삼동 연쇄 방화 현장 감식하는 경찰·소방 등 관계자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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