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아버지 숨지게 한 대학생 손녀… 징역 20년 구형에도 5년 선고된 이유

함께 살던 친할아버지를 흉기로 공격해 숨지게 한 20대 대학생 손녀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검찰은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존속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존속살해 대신 존속상해치사 인정… 징역 5년 선고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20대 대학생 A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가 피해자를 숨지게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살해하려는 고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함께 살던 친할아버지를 흉기로 공격해 숨지게 한 20대 대학생 손녀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검찰은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존속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자료 이미지로,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A 씨는 지난 5월 서울 소재 자택에서 함께 생활하던 친할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로 공격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재판부는 당시 A 씨가 할아버지와의 갈등을 피하려 했지만 상황이 계속되자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다. 범행 당시 정황과 피해자의 부상 경위 등을 종합하면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로 공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범행 이후 A 씨의 행동도 살인 고의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A 씨는 직접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의 안내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흉기를 숨기지 않았던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흉기를 휘둘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리적 의심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AI 질문·영상 시청 기록도 검토… 계획범죄 증거 부족

검찰은 A 씨가 범행 전부터 할아버지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으며, 사전에 범행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 중 하나는 A 씨가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에 남긴 질문이었다. A 씨는 범행 전 다른 사람을 향한 폭력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방법 등을 AI에 물어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AI에 남긴 질문이 두 차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했다. AI가 제시한 답변 역시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안내하는 내용이어서 살해 의도를 입증하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 씨가 시청한 영상 15건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각 영상의 실제 시청 시간이 확인되지 않았고, 영상 내용 역시 복수심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알고리즘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영상을 살인 범행과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A 씨가 작성한 개인 메모도 재판 과정에서 검토됐다. 메모에는 할아버지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지만, "복수하는 건 내가 잘되는 것밖에 없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재판부는 해당 문구가 갈등을 극복하고 자신의 미래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A 씨가 자신의 방에 흉기를 보관했던 점도 사전 계획의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가 평소 조부모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 방에서 주로 생활했고, 식사도 혼자 해결했던 사정을 고려해 흉기를 방에 보관했다는 사실만으로 살해를 준비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가족 간 갈등·유족의 처벌 불원 참작… 법정 최저형 선고

재판부는 A 씨가 할아버지와 겪어 온 갈등 사정도 살폈다.

A 씨는 대학 진학 이후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 간 다툼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폭언과 폭력을 경험했고, 갈등이 누적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이러한 상황을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별도의 거주지를 마련하지 못했고,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주거비를 아끼며 조부모와 생활했던 사정도 확인됐다.

다만 살해 의도가 인정되지 않는 것과 별개로, 흉기를 사용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일시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인될 수 없는 반사회적 행위"라며 "피해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상해를 통해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A 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범행의 사실관계를 인정하며 반성하는 점, 피해자의 유족이자 피고인의 가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A 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A 씨는 최후진술에서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를 지어서 죄송하다. 죽을 때까지 속죄하고 또 속죄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존속상해치사죄의 법정형 하한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참고] 존속살해와 존속상해치사… 형법상 처벌 기준은

현행 형법은 직계존속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일반 범죄보다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형법 제250조 제2항에 따르면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반면 형법 제259조 제2항의 존속상해치사죄는 직계존속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두 범죄를 가르는 핵심 기준은 '살해의 고의' 유무다. 존속살해죄는 행위 당시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입증돼야 성립하지만, 존속상해치사죄는 살해 의도가 없었더라도 상해를 가할 의도로 한 행위로 인해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했을 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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