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 전혀 안 했는데 폐가 완전히 망가져서...” 역삼동 방화 피해자 아내 울분

특허법인 사무실의 유일한 출입구에 불을 질러 직원들을 다치게 한 70대 방화 피의자에게 경찰이 현존건조물방화치상 혐의를 적용한 가운데, 피해자들이 살인미수 혐의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의자는 사람을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겁을 주려 했다고 진술했지만, 피해자 측은 출구를 막은 채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지른 행위 자체가 살해 의도를 보여준다고 반발했다.

지난 25일 SBS 보도에 따르면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은 직원들이 빠져나갈 유일한 출입구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과거에도 피의자가 사무실을 찾아와 휘발유를 뿌리고 위협한 일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번 범행에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장 감식 위해 건물 진입하는 경찰·소방 등 관계자들 / 뉴스1

피의자 “죽이려는 건 아니고 겁주려고 했다”

연쇄 방화 혐의를 받는 70대 이모 씨는 범행 이틀 뒤 경찰 조사에서 사람을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 씨는 “죽이려는 건 아니고 겁주려고 그랬다”며 “사기 치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자신이 불을 지른 목적은 살해가 아니라 상대방을 겁주고 문제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현재 이 씨에게 현존건조물방화치상 혐의를 적용한 상태다.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피의자의 살해 고의성 등을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조만간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범행 동기와 심리 상태 등을 조사한 뒤 살인미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피해자 측은 피의자의 진술만으로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허법인 관계자는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살인미수 혐의가 아니면 우리가 사람이 아니란 얘기냐”고 반문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문제 삼는 대목은 불을 지른 장소와 범행 방식이다. 불길에 휩싸인 곳이 직원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였다는 것이다. 피해자 측은 출구에 불이 나면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행위를 단순한 위협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법정 향하는 역삼동 연쇄방화 피의자 / 뉴스1

“유일한 출구에 불 질러”…피해자 가족의 호소

피해 변리사의 아내도 남편이 입은 심각한 피해를 언급하며 살인미수 혐의 적용을 요구했다. 그는 피의자가 과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위협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동일한 일로 몇 년 전에도 그렇게 협박했는데, 그게 살인미수가 아니면 무엇을 살인미수라고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피해 변리사는 화재 이후 기계 호흡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내는 남편의 폐를 비롯해 다른 장기들까지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밝혔다.

그는 남편이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폐 손상 상태를 보고받은 뒤 받은 충격을 전했다. 화상 전문병원에서도 독성 물질이 폐에 두껍게 쌓인 상태를 보기 드물다고 했다는 것이 아내의 설명이다.

화재 피해는 단순히 불에 타는 부위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연기에는 다양한 연소 생성물과 유독 물질이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흡입하면 기도와 폐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피해자 가족이 호소한 폐 손상 역시 화재 당시 흡입한 연기와 독성 물질에 따른 피해와 관련해 치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불길이 출입구를 막으면서 대피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허법인 관계자는 피의자가 시너나 휘발유를 가져와 뿌렸다며, 사람들이 도망치기 어려운 상황을 염두에 둔 범행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4년 전에도 휘발유 뿌리고 위협했다는 주장

피해자 측은 이번 사건을 판단할 때 과거 위협 행위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직원들에 따르면 이 씨는 약 4년 전에도 사무실을 찾아와 휘발유를 뿌리고 위협한 일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과거에도 유사한 행동이 있었던 만큼 이번 범행을 우발적인 위협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측 관계자는 이번 범행에 사용된 인화성 물질과 출입구에 불을 지른 방식 등을 근거로 이 씨가 건물 안의 사람들이 대피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위협 전력과 이번 범행의 구체적인 경위가 살해 고의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도 출입구에 불을 질러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한 행위에 주목했다. 그는 단순히 겁을 주려는 목적이었다면 시너를 뿌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방식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유일한 출구에 불을 질러 대피할 수 없게 한 행위는 사람들에게 죽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다만 살인미수 혐의 적용 여부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은 범행 당시의 행위와 준비 과정, 사용한 물질과 방법, 피의자의 진술, 피해자와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을 토대로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피해자 측의 주장과 피의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경찰이 어떤 증거를 확보하고 고의성을 어떻게 판단할지가 쟁점이다.

역삼동 화마의 흔적 / 뉴스1

경찰, 프로파일러 투입해 살해 고의성 조사

경찰은 이 씨의 범행 동기와 살해 고의성 등을 확인하기 위해 프로파일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피의자의 진술뿐 아니라 범행을 계획한 경위와 행동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할지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적용된 현존건조물방화치상 혐의는 사람이 주거하거나 사용하는 건물에 불을 질러 사람을 다치게 한 행위와 관련된 혐의다. 여기에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하려면 사람을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불을 질렀다는 사실과 피해 규모뿐 아니라 범행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직원들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을 겪었다며 살인미수 혐의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피의자는 사람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한 상태다. 경찰은 양측의 주장과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살해 고의성을 조사한 뒤 혐의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역삼동 건물 두 곳에 연이어 방화…19명 다쳐

SBS 보도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0월 20일 오전 11시 52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특허법인 사무실 출입구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당시 폐쇄회로(CC)TV에는 이 씨가 양손에 인화성 물질이 담긴 통을 들고 나타난 뒤 사무실 관계자와 잠시 대화하고, 바닥에 물질을 쏟아부은 다음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장면이 담겼다.

불길은 순식간에 출입구를 뒤덮었다. 해당 층에서만 3명이 중상을 입는 등 8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씨는 불을 지른 뒤 비상계단 출입문을 통해 현장을 벗어났으며, 약 200m 떨어진 다른 특허법인 사무실에서도 방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번째 건물에서도 1명이 심정지 상태에 빠지는 등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두 건물에서 다친 사람은 모두 19명으로 집계됐다.

두 사무실 모두 불이 난 곳은 유일한 출입구였던 것으로 보도됐다. 경찰은 이 씨를 현존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구속해 수사하고 있으며, 살인미수 혐의 추가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SBS는 이 씨가 2022년에도 같은 특허법인 관계자에게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위협한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관계는 범행의 계획성과 살해 고의성을 판단할 때 검토될 수 있는 요소다. 다만 과거 전력이나 부상자 수만으로 이번 범행에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범행 당시의 구체적인 행동과 진술, 현장 영상 등을 토대로 혐의 적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유튜브 'SBS 뉴스'

방화치상과 살인미수, 형법상 무엇이 다른가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 된 현존건조물방화치상죄와 살인미수죄는 보호하는 법익과 입증해야 하는 요건이 다르다. 방화치상은 사람이 현존하는 건물에 불을 질러 사람을 다치게 한 행위에 초점을 맞춘 범죄다. 살인미수는 사람을 살해하려는 고의로 실행에 착수했지만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 성립할 수 있다.

형법 제164조는 사람이 주거하거나 현존하는 건조물 등에 불을 지른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이 범죄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현존건조물방화치상죄가 적용될 수 있으며,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는 별도의 방화치사 규정이 적용된다. 건물에 불을 지른 행위 자체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인명 피해도 무겁게 다루는 것이다.

살인죄는 형법 제250조에 따라 사람을 살해한 경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제254조는 살인죄의 미수범도 처벌한다고 명시한다. 살인미수는 피해자가 실제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살해 의도가 인정되고 살인의 실행에 착수했다면 성립할 수 있다. 미수범의 형은 형법상 미수범 감경 규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두 혐의를 가르는 핵심은 사람을 다치게 했는지 여부만이 아니라 살해 고의가 있었는지다. 사람이 있는 건물에 불을 질러 다치게 했다면 방화치상죄가 문제 될 수 있다. 여기에 사람을 죽일 의도가 있었다는 점까지 인정된다면 살인미수죄 적용도 검토될 수 있다. 반대로 인명 피해가 매우 컸다는 이유만으로 살해 고의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살해 고의는 피의자가 직접 “죽이겠다”고 말했는지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범행 전후의 발언과 행동, 범행을 준비한 과정, 사용한 수단,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장소의 구조, 당시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살해 의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행위로 사람이 사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했다고 판단되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여지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유일한 출입구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는 점, 두 건물에서 잇따라 방화했다는 점,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점 등이 수사 대상이다. 피해자 측은 이런 정황이 살해 의도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씨는 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겁을 주려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진술과 현장 영상, 범행 준비 및 이동 경로 등 객관적인 자료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또한 방화치상죄와 살인미수죄는 반드시 하나만 적용되는 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나의 행위가 여러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별개의 행위로 평가되는지 등에 따라 법률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구체적인 죄명과 적용 관계는 수사 결과와 검찰의 기소 내용, 재판에서 인정되는 사실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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