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까지 내고 모텔행..보이스피싱에 속아 반성문 45장 쓴 30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모텔에 홀로 머물며 사흘 동안 반성문을 쓰고 수천만원까지 송금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구조됐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셀프 감금된 모텔. / 경기북부경찰청 제공

경기북부경찰청에 따르면 광역예방순찰대는 지난 22일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에 고립돼 있던 30대 남성 A 씨를 구조했다. 경찰은 A 씨가 추가로 대출받으려던 4200만원의 지급 절차도 중단시켜 더 큰 피해를 막았다.

사건은 지난 20일 경기 지역 직장에 근무하는 A 씨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전화를 건 남성은 자신을 공소청 검사라고 소개하며 A 씨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고 이 때문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주장했다.

범죄 조직은 A 씨에게 사건 내용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어 구치소에 들어가는 대신 약식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겠다며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로 이동하라고 요구했다. 자신이 범죄에 연루됐다고 믿은 A 씨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연차를 내고 모텔로 향했다.

모텔에 고립된 채 반성문 45장…대출받은 3100만원까지 송금

조직은 A 씨가 외부와 연락하지 못하도록 통신 수단부터 장악했다. 추가로 휴대전화를 구매하도록 한 뒤 원격제어 기능이 있는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게 했고 이를 이용해 통화까지 통제했다.

A 씨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금융감독원에 확인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A 씨가 금융감독원 관계자로 믿고 통화한 상대는 실제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112에서 걸려 온 것으로 믿었던 전화 역시 조직이 꾸민 가짜 연락이었다.

모텔에 들어간 A 씨에게 조직이 시킨 일은 반성문 작성이었다. A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A4용지 약 45장에 해당하는 분량의 반성문을 사흘 동안 작성했다. 식사하거나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반성문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조직원들은 작성한 내용을 수시로 전송받아 확인했다.

조직은 A 씨가 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까지 진행했다. 범죄에 연루됐다는 불안감을 심어준 뒤 오히려 피해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인 것처럼 꾸민 셈이다.

금전 요구도 이어졌다. 조직원들은 계좌 추적을 위한 조사에 필요하다며 A 씨에게 대출을 받으라고 지시했고, A 씨는 실제로 3100만원을 빌려 조직에 송금했다. 이후에도 추가 대출을 요구받아 4200만원의 대출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이 가짜다” 믿었던 피해자…무전 소리까지 들려주며 설득

A 씨의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피해를 막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경찰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으로부터 악성 앱 설치가 의심되고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피해 우려가 큰 사람들의 연락처를 전달받았는데 A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A 씨는 경찰관의 연락을 받고도 전화를 끊으려 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미리 알려준 '휴대전화 번호로 연락하는 경찰은 가짜'라는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짜 검사와 가짜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속은 A 씨는 정작 자신을 구하려는 실제 경찰관의 신분을 믿지 못했다.

경찰관들은 포기하지 않고 A 씨에게 반복해서 연락했다. 수사기관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정상적인 절차를 설명하고 가까운 경찰서를 직접 방문해 확인할 것을 권유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무전 소리를 들려주며 실제 경찰관임을 믿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설득을 이어가던 경찰은 A 씨가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에서 4200만원의 추가 대출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곧바로 서울경찰청에 공조를 요청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금융회사에도 연락해 대출 승인 절차를 중단하도록 요청했다.

경찰이 모텔에 도착해 A 씨를 구조했을 당시 그는 약 50시간 동안 외부와 사실상 단절된 상태였다. 경찰은 이미 송금된 3100만원에 대해서도 계좌 지급정지를 시도했지만 돈은 모두 인출된 뒤였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의 지속적인 협박과 심리적 통제로 피해자가 실제 경찰관조차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경찰관들의 설득과 신속한 대응으로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전화 등 의심스러운 상황에 놓이면 상대방의 지시에 따르지 말고 즉시 112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모텔로 가라고 하면 100% 보이스피싱”…경찰청도 주의 당부

경찰 셀프감금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문 / 경찰청 제공

경찰청은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해 수사 협조를 명목으로 모텔 등 숙박업소에 혼자 머물도록 요구하는 행위를 전형적인 '셀프감금형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보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실제 수사기관은 조사나 구속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이유로 모텔에 들어가 외부와 연락을 끊도록 지시하지 않는다.

경찰청은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전국 숙박업소를 대상으로 예방 홍보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수사기관을 사칭한 상대가 숙박업소로 이동하거나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앱을 설치하고 대출·송금을 진행하라고 요구하면 즉시 통화를 종료하고 112에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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