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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50여년 전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을 직접 수사하고 재판했던 검사와 판사가 영화에서 제기된 박정희 배후설을 '음모론'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문세광 재판에 관여했던 전직 판사는 5일 채널A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세광은 확신범이었다"며 "재판 과정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법조인은 "재일교포 2세였던 문세광은 한국어를 할 줄 몰랐지만, 법정에서 직접 일본어로 북한의 지령이 있었다는 등 혐의를 모두 털어놨다"고 전했다. 재판에는 통역사가 배치됐고 문세광의 국선 변호인도 일본어에 능숙해, 접견이나 법정 진술 과정에서도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사형이 집행된 뒤 일본 측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사죄하기 위해 사절까지 왔던 걸로 기억한다"고 회상하며 "그만큼 재판 결과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재판 절차가 일반 사건보다 훨씬 엄격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일본인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일본 언론사를 포함한 외신도 매번 방청할 만큼 주목도가 높은 재판이었다"며 "공소장조차 요약하지 않고 전부 읽는 등 철저히 형사소송법 절차를 따랐다"고 말했다.
문세광이 최후 진술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유가족에겐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내 행위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도 전했다.
다만 이 법조인은 "유신 시대인데 대통령 경호가 허술했던 점에서 의문이 남을 수 있다"며, 일반인의 관점에서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다고 평가했다.
문세광을 직접 수사해 사형 선고를 이끌어낸 검사도 영화에서 제기된 배후설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정면 반박했다.

사건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 소속으로 특별수사본부에 참여했던 김영수 변호사는 지난 3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미 현장검증을 통해 사실관계가 모두 밝혀진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육 여사 암살사건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에 대해서는 연신 "딱하다"며 혀를 찼다.
공범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문세광의 단독범행이 확실하다"며 "북한 만경봉호에 탑승해 공작원에게 사상교육과 지령을 받고 의식화돼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 한 사건"이라고 단언했다.
김 변호사는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 여사가 시해당한 당일 수사본부에 파견돼, 범인으로 체포된 문세광을 조사했다. 이후 사형 구형과 집행에 이르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수사본부에 파견된 검사 3명 중 막내였다고 한다.
그는 2005년 사건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된 뒤 음모론이 부상하면서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기소한 내용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며 언급을 삼가왔다. 52년 만에 직접 입을 연 것은 지난달 영화 개봉 이후 음모론이 사실처럼 퍼지는 상황을 더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음모론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런 영화까지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북쪽의 주장을 본뜬 것 같은 잘못된 이야기가 퍼지고 있는 건 대한민국에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영화를 보지 않아 어떻게 사건을 왜곡했는지는 알지 못한다"면서도 "아무리 영화를 흥행시키고 싶었어도 지나치니까 역풍이 불고 많이들 걱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는 육 여사 저격의 배후에 남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공권력이 있었다는 의혹을 소재로 삼으면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 역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와 함께 사건 은폐와 조작에 관여한 것처럼 그려졌다.
김 변호사는 "당시 수사당국이 매일 브리핑했고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떤 신문도 수사에 허점이 있다거나 의심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느닷없이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세광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세뇌되지 않을 이야기에 휘둘릴 만큼 순수했다"며 "확신범이어서 사실을 숨기지 않아 수사도 어렵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문세광은 호송차 창문 너머 인파를 보고 처음에는 "남반부 인민들이 '의거'를 지지하고 있다"며 잔뜩 고무됐다. 그러나 뒤늦게 자신을 향한 분노 여론이 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절망했다.
사형 집행 직전에는 "내가 속았다"며 오열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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