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영화 '암살자(들)' 상영 중단된 지역 생겼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시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 중단됐다. 국민의힘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상영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날이었다.

5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암살자(들)' 포스터가 걸려 있다. / 뉴스1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7일자 보도를 종합하면 구미시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이 전날부터 '암살자(들)' 상영을 중단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해당 극장은 예매 홈페이지의 현재상영작 목록에서 이 영화를 뺐다. 구미 지역 다른 극장들은 영화를 정상적으로 상영하고 있다.

해당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전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오늘부터 구미 지점에서 '암살자(들)' 상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구미 지점은 본사 위탁 지점으로, 본사의 브랜드로 영업 활동을 하지만 영화 편성은 위탁주 판단에 따라 운영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 극장이 최근 불거진 역사 왜곡 논란 때문에 작품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일부 보수단체가 전날 이 극장을 비롯한 구미 지역 극장가를 돌며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 등 구미 지역 18개 단체는 지난달 30일 박 전 대통령 생가 앞에서 상영 중지를 요구하는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구미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 4곳 앞에 한 달간 집회 신고를 내고 상영 중단을 요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집회에는 김장호 구미시장도 참석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5일 충북 옥천군 고(故)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찾아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역사 왜곡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육 여사가 피격돼 숨진 사건을 소재로한 영화로, 국민의힘은 이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인의 죽음에 관여한 것처럼 묘사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 뉴스1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다. 구미가 지역구인 구자근·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대구·경북 국회의원 20명은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술적 상상력과 창작의 자유를 빙자해 교활하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정치적·상업적 목적에 따라 왜곡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치적 의도에 따라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의원들은 배급사와 극장이 총탄 흔적을 활용한 이른바 '탄흔 티켓'을 만들어 배포한 문제도 거론했다.

국민의힘은 영화의 해외 상영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제레미 추아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암살자(들)' 개막작 선정 철회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보수성향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영화 '암살자(들)'에 출연한 배우를 비판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뉴스1

정 원내대표는 서한에서 "싱가포르 국제영화제가 영화 <암살자(들)>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그 결정을 재고해 주실 것을 국민의힘 국회의원 109명 전원의 뜻을 모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고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에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결합한다면 창작의 자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서한에 담았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출연한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극영화다. 지난달 23일 개봉했다. 저격범 문세광의 단독 범행이라는 수사 결론 대신 중앙정보부와 박 전 대통령의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비판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허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과 수익 환수까지 거론했다. 출연 배우들을 겨냥한 불매운동 이미지가 온라인에 퍼지기도 했다.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고증 부실을 지적했다.

제작진은 지난달 28일 입장문을 내고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해명했다.

보수성향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영화 '암살자(들)'에 출연한 배우를 비판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뉴스1

허 감독도 지난달 30일 유튜브 채널 '봉지욱의 오프더레코드'에 출연해 "박정희가 육영수를 죽이라고 시켰다는 내용을 가지고 하지 않았는데, 그건 모순되고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배우들, 스태프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폄하될 줄 몰랐고 배우들도 다들 힘들어한다"고 토로했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일정과 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취소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문제 삼은 탄흔 티켓은 메가박스가 개봉 이후 관객에게 증정한 굿즈다. 사건 당시 연단이 그려진 종이 위에 총탄 흔적이 그려진 투명판을 겹치면 탄흔이 드러나는 구조다. 이 티켓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메가박스는 지난 4일 입장문을 내고 "역사적 비극과 참혹한 사건이 지닌 엄중함과 무게를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며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께, 그리고 사건 당시 아픔을 겪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메가박스는 남은 티켓을 전량 폐기하기로 했다.

논란 속에서도 영화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전날까지 246만6976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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