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의 발언, 혹시 그 정치인 대놓고 노린 것일까... 같은 정당 맞나

이재명 대통령이 화재 진압 도중 쓰러진 소방관들의 쾌유를 빌며 "그분들에게 천금을 준들 아깝겠나"라고 말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국정감사에서 소방을 "재정 빨대"라고 불러 소방공무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107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뉴스1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제주에서 열린 제107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개회식 기념사에서 "본격적인 인사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한 가지 교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군인, 경찰, 소방관, 제복 입은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 덕에 우리는 이 순간에도 행복한 순간들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 화재를 진압하다 심정지 상태로 입원해 있는 소방관이 있다. 다친 소방관 역시 다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가 공동체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그분들에 대한 예우나 보상이 그리 충분하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헌신하는 그분들에게 천금을 준들 아깝겠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박수도 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께서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소방관, 부상당한 소방관들이 조속히 쾌차할 수 있도록, 또 얼마 전 나라를 지키다가 부상당한 우리 장병들에게도 쾌유하라고 같이 격려의 박수를 한번 보내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6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의 한 공장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38분께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한 4층짜리 금속부품 도장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진화에 투입된 소방대원 5명 등 7명이 다쳤다. 이 중 2명은 연기흡입으로 중상을 입어 병상으로 이송됐다. / 뉴스1

이 대통령이 개회식 인사에 앞서 소방관 이야기를 꺼낸 건 경기 부천시에서 큰불이 나 소방관들이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전날 오전 8시38분쯤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4층짜리 금속부품 도장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관 6명과 공장 관계자 2명 등 8명이 다쳤다.

화재 진압에 투입된 40대 소방대원 2명은 한때 건물 안에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이 가운데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대원은 심폐 기능을 되찾은 뒤 고압산소치료를 받기 위해 인하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다른 1명도 의식이 흐린 상태로 이송돼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 치료를 받는 등 두 대원 모두 위중한 상태로 전해졌다. 나머지 소방관 4명도 열탈진과 연기 흡입 등으로 다쳤다.

공장 안에는 제4류 위험물인 제2석유류가 담긴 20ℓ짜리 통 약 100개가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건물에 자동화재탐지설비는 있었지만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소방 당국은 시너와 페인트 등 위험물질이 불길을 키웠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관계 기관은 17일 합동 감식을 벌여 정확한 화재 원인과 위험물 보관·취급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소방관들이 쓰러진 이날은 추 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던 때였다. 추 지사는 지난 13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도 재정 비상 선언에 관해 묻자 소방 예산 부담을 언급했다. 추 지사는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며 "인건비만 하더라도 2027년에 1조1000억원을 잡아먹게 되고 사업비만 5000억원가량, 그러니까 국가직임에도 소방 인건비와 사업비를 합쳐 1조7000억원이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은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인건비와 사업비 상당 부분은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추 지사는 이런 구조를 설명하면서 소방 예산에 대한 국비 지원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권 의원 지적에 공감을 나타냈다.

소방노조는 즉각 들고일어났다. 민주노총 소속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14일 성명에서 "소방공무원은 경기도 재정을 갉아먹는 '빨대'가 아니라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추 지사는 전국 7만 소방공무원에게 즉각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박진규 전공노 경기소방지부장은 "경기도는 전국에서 화재와 출동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그만큼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며 "소방공무원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데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황당하고 서운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소속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도 15일 성명을 냈다. 한국소방노조는 "칠흑 같은 화마 속으로 가장 먼저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목숨 값이 고작 '빨대'냐"고 반발했다. 한국소방노조는 "소방은 누군가의 주머니를 축내는 빨대가 아니라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수호자"라고도 했다. 김길중 한국소방노조 위원장은 "소방 인건비 전액을 국가 재정으로 부담하는 등 기형적인 예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 전국소방안전공무원노동조합 경기본부는 경기도 소방공무원 1만2000여명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 노조는 경기도 2027년도 예산안에 임신 직원 편의용품 지원, 휴양시설 이용 지원 같은 소방공무원 복지사업 예산이 크게 깎인 상황에서 추 지사 발언이 현장 대원들의 상실감을 더 키웠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전날 입장문에서 경기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에 소방차량 보강 예산 26억5000만원 감액과 차량 구매 계획을 103대에서 78대로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도당은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행사 예산 1억원도 전액 감액 대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도당은 다만 부천 화재와 예산 감액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조사로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는 진화에 나섰다. 홍은광 경기도 대변인은 "해당 발언은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관련 재정을 지자체가 대부분 부담하고 오히려 국고 지원 비율이 줄어드는 것을 강조하는 취지"라며 "경기도 소방공무원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소방 재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추 지사가 속한 더불어민주당도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은 전날 이용우 대변인 명의 서면브리핑에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 확보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소방관 출신인 윤성근 전 경기도의원은 같은 날 '대한민국 소방관이 빨대입니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경기도청과 수원소방서 이의119안전센터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추 지사는 당초 전날 제주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간담회와 전국체전 개회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부천 화재 소식에 일정을 취소하고 현장을 찾았다. 추 지사는 "두 분의 소방관께서 크게 다치시고 한 분은 중태에 빠져 있어 매우 큰 충격이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치료와 회복에 더욱 세심하게 신경 쓰고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추 지사는 공장이 위험물질을 다루면서 소방 당국 허가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위험물 취급 업소 사전 단속과 예방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추 지사는 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을 받았다. 한 기자가 "도지사님 재정 빨대 발언 때문에 소방 노조들이 반발하고 있는데"라고 묻자 추 지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추 지사는 "그런 얘기 하지 마라"라며 손사래를 치고 자리를 떠났다.

제주 전국체전 개회식장을 찾은 이 대통령의 입에서 추 지사를 직접 거론한 대목은 없다. 그러나 소방관에게 천금도 아깝지 않다고 한 메시지는 소방을 재정 부담으로 표현했다가 역풍을 맞은 추 지사를 겨냥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말이 정치권에선 나온다.

이 대통령과 추 지사는 최근 정면으로 부딪혀 왔다. 갈등의 중심에는 중대범죄수사청장 인선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7일 김지용 전 검사를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중수청은 검찰청 폐지에 따라 중대범죄 수사를 맡도록 새로 만든 기관이다. 지난 2일 출범했다.

추 지사는 김 후보자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와 검찰개혁에 반대했던 인물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해 왔다. 추 지사는 지난 7일 윤 전 총장 징계 반대 움직임 참여, 검찰개혁 반대 기자회견, 정진웅 검사 기소 승인 의혹 등 세 가지를 부적격 사유로 내놨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X(옛 트위터)에 "순수한 급진성도 문제이겠지만, 능력도 안 되면서 큰 자리 요구하고 인사나 국가 정책까지 자기 뜻대로 하려다가 잘 안 되니 대의명분 삼아 급진 개혁 내세우며 내부 공격하는 것이 더 문제"라는 글을 올렸다. 특정인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추 지사를 비롯한 여권 내 강경파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추 지사에 대한 여권 내부 압박도 거세졌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일 비공개 지도부 회의에서 필요하면 정무적 판단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 지사에 대한 징계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12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우리 여당 의원들이나 또 이런 자치단체장이 대통령을 상대로 이렇게 대거리를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송 의원은 "대통령의 인사 권한, 그것도 수사 기관의 책임자인 가장 중요한 인사 권한을 흔드는 게 어디 있냐. 제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정말 화가 날 것 같다"고 했다. 일부 민주당 당원은 경기도청 앞에서 추 지사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추 지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추 지사는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국감에서 “(김 후보자는) 친윤 검사일 뿐 아니라 공직자로서 그 자리에는 부적합하다”며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침묵하면 역사적 과오가 될 것이다. 저의 책임성에서 양심에 기반해 나라를 위해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추 지사는 김 후보자를 비판했다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의 감찰 지시를 받은 임은정 광주지방중수청장 문제를 묻는 질의에 "장관의 업무에 대해 집단항명에 이름을 올린 것이 바로 정치행위를 한 것"이라며 "정말로 청문회를 제대로 하시려면 저를 증인으로 부르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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