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대신…” 이언주가 지역구에 내건 섬뜩한 한마디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 '추미애 경기지사의 소방을 빨대 발언에 사과드린다'는 내용으로 내건 펼침막 . / 뉴스1

현역 국회의원이 같은 당 광역단체장을 타격하는 펼침막을 내건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지역구(경기 용인정)에 "경기지사의 추경 삭감 파동과 소방 재정 실언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펼침막을 걸었다. 추미애 경기지사의 언행을 대신 사과하는 형식으로 추 지사를 비판한 것이다.

여권 강성 지지자들에게 이른바 '뉴이재명'의 선봉으로 공격받아 온 이 의원은 지난 20일엔 SNS에 "최근 경기도 추경예산안 삭감으로 많은 분들이 상심하셨는데 우리 당 추미애 지사 실언에 이어 동료 국회의원의 실언까지 이어져 참담하기 그지없다. 도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썼다. 추 지사와 이웃 지역구 부승찬 의원(경기 용인병)을 동시에 겨냥한 글이다.

이튿날 YTN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는 "추 지사가 일방적으로 막무가내로 '나는 그냥 삭감한다'며 약자들 희생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등 민주당 철학하고도 안 맞았다"면서 어린이집 보육예산, 산후조리비 지원예산 삭감 등을 지적했다. 이어 "이에 굉장히 격앙돼 있던 민심이 이런 발언으로 폭발했다"고 직격했다.

논란의 발단은 감액 추경과 '소방 발언'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빈소에 조문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뉴스1

추 지사는 8월 경기도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하고 약 5465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미 정해 둔 올해 예산 일부를 줄이는 '감액 추경'으로, 신규 사업을 위해 예산을 늘리는 통상의 추경과 달리 긴축에 초점을 맞췄다. 추 지사는 전임 집행부 시기에 쌓인 재정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문제는 삭감이 서민·약자 복지 예산에도 미쳤다는 점이다. 산모에게 월 50만원씩 지급되던 산후조리비 지원이 이달부터 중단되는 등 복지성 사업이 줄줄이 축소됐다. "도움이 절실한 계층의 예산부터 도려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경기도청 홈페이지의 도지사 사퇴 청원은 3만명을 넘겼다.

여기에 추 지사가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방 재정을 두고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표현하면서 민심은 더 악화됐다.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의 인건비를 지방정부가 상당 부분 부담하는 구조를 지적하다 나온 말이었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조직을 재정을 갉아먹는 존재에 빗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사과를 요구했다.

16일 경기 부천 공장 화재로 김진석 소방위가 순직하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추 지사는 17일 빈소를 찾아 "소방관 폄훼 의도는 전혀 없다"며 사과했으나,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는 표현이 진정성 논란을 불렀다. 추 지사는 19일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서 "최근 저의 발언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신 소방관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같은 날 부 의원이 "소방 예산 90% 정도를 지자체가 부담하니 재정을 쭉쭉 빨아먹는 것 아니냐"며 추 지사를 두둔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재점화됐다. 민주당은 추 지사와 부 의원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다. 경고는 징계 중 가장 낮은 단계로, 별도의 추가 징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당 안팎에서는 김민석 대표가 '과잉 의전' 논란에 휩싸이면서 중징계를 내리지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 의원 공세의 배경은

이언주 민주당 의원. / 뉴스1

이 의원의 공개 비판 이면에는 민주당 내부의 복잡한 역학이 깔려 있다. 추 지사를 대신해 고개를 숙이는 '대리 사과' 형식의 공세는 단순한 소신 발언을 넘어선 정치적 포석으로 읽힌다.

배경은 크게 두 갈래다. 우선 산후조리비·보육예산 삭감과 이른바 '소방 재정 빨대' 발언이 민심을 자극해 여권에 부담을 안긴 상황이다. 이 의원은 이를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당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논리로 비판했다. 민생과 당의 정체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추 지사를 압박한 셈이다.

당내 권력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의원은 강성 지지층에게 '뉴이재명 선봉'으로 지목돼 공격받아 왔다. 반면 추 지사는 검찰개혁 등 주요 현안을 놓고 이재명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왔다. 이런 구도에서 이 의원의 공세는 이 대통령을 압박해 온 추 지사가 민생 논란으로 수세에 몰린 틈을 타 반격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방어에 치중하던 이 의원이 추 지사의 실책을 계기로 공세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역구 사정도 빼놓을 수 없다. 경기도가 예산을 깎으면 주민들은 도청보다 가까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먼저 불만을 털어놓기 마련이다. 산후조리비나 보육예산 삭감은 용인 주민들의 생활과 직접 맞닿은 문제다. 같은 민주당 소속이라고 침묵하면 주민 불만이 고스란히 지역구 의원에게 돌아올 수 있다. 이 의원으로서는 추 지사와 선을 긋고 주민 편에 서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공세에는 민생 현안을 고리로 추 지사에게 책임을 묻는 동시에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계산이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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