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망도 없이 출범한 중수청... 디지털 시대에 '종이서류' 들고 뛴다

국민의힘이 출범 한 달을 맞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두고 "개점휴업" 상태라며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일 논평에서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를 골자로 한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됐다"며 "지난 한 달간 대한민국 형사사법 현장이 보여준 모습은 국가 법 집행 체계가 이토록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밝혔다.

중대범죄수사청 / 뉴스1

박 수석대변인은 "중수청은 전체 정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자리가 비어 있고, 전산망조차 제구실을 못 해 사건 기록이 종이 문서로 오가는 낯부끄러운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며 "피의자 수용 공간조차 없어 경찰서 유치장과 구치소를 전전하는 판국"이라고 했다.

중수청은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과 함께 검찰청이 폐지된 지난달 2일 문을 열었다. 법적 정원 2874명 가운데 1900여명만 채운 상태로 출발했다. 충원율은 66.1%다. 지방청별로 보면 수원중수청은 정원 343명의 약 63%로 출범했다. 부산청의 충원율이 74%로 가장 높았다. 중수청은 변호사와 회계사 등을 경력직으로 특별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사혁신처와 협의가 필요해 최소 12주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산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중수청은 경찰청의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빌려 쓰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사건 이첩과 접수, 배당 같은 필수 기능만 열려 있다. 사건 처리 등 나머지 기능은 다음달에 개통될 예정이다. 중수청 자체 KICS를 구축하는 데는 약 3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사건 기록을 직접 가져오거나 우편으로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압수수색영장과 구속영장도 종이 서류로 법원을 오간다. 고소·고발을 수기로 접수해 배당하는 사례도 있다. 디지털포렌식 시설과 변호인 접견실, 피조사자 대기실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체포·구속한 피의자를 가둘 유치장도 부족하다. 수원중수청의 경우 분당경찰서 유치장을 활용하고 있다.

박 수석대변인은 "기초적인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한 채 밀어붙인 졸속 출범의 결과, 지난 한 달간 전국 중수청이 처리해 공소청으로 송치한 사건은 단 3건, 피의자 구속은 5건이 전부였다"며 "대다수 지방중수청의 수사 실적은 사실상 ‘0건'으로, 수사망이 완전히 멈춰 선 상태"라고 했다.

전국 지방중수청이 공소청에 송치한 사건은 지난달 30일 기준 3건이다. 모두 서울중수청 사건이다. 구속은 5건으로 서울청 4건, 수원청 1건이다. 대전·광주·대구·부산 중수청의 송치와 구속 실적은 모두 0건이다. 서울청이 송치한 사건은 국제우편물로 대마 2.5㎏을 들여오려 한 사건, 대마 1.8㎏을 밀반입한 베트남 국적 남성 사건, 필로폰 수백g 관련 한국인 남성 사건이다. 세 사건 모두 세관 적발 뒤 '통제배달' 방식으로 피의자를 붙잡았다.

경찰에서 넘어오는 사건도 쌓여 있다. 부산중수청은 지난달 29일까지 경찰로부터 631건의 인지 통보를 받았다. 이첩이 끝난 사건은 1건도 없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경찰이 중수청에 통보한 사건은 2002건이다. 이 가운데 중수청이 이첩을 요구한 사건은 1건에 그쳤다. 경찰이 통보한 금융권 해킹 사건에 대해 중수청은 수사를 개시하지 않기로 했다.

중대범죄수사청 / 뉴스1

박 수석대변인은 "게다가 경찰조차 전체 수사관의 9.2%가 수사 경험이 전무한 실정이어서, 사법 현장의 전문성과 역량 마비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청이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낸 자료에 따르면 전국 수사경찰은지난 9월 기준 4만563명이다. 지난해 하반기보다 3740명(10.2%) 늘었다. 이 가운데 수사 경험이 없는 경찰관은 3739명으로 전체의 9.2%다. 수사경찰의 평균 경력은 지난해 하반기 8.5년에서 올해 하반기 7.9년으로 줄었다. 경찰청이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에 낸 자료를 보면 공소청 출범일인 지난달 2일부터 29일까지 경찰이 받은 보완수사 요구는 1만2465건이다. 하루 평균 445건꼴이다.

박 수석대변인은 "수사의 기본적 토대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억지로 문을 연 무모함이 불러온 결과,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억울한 국민들의 눈물로 돌아가고 있다"며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와 공소취소 밀어붙이기에는 온갖 국정 역량을 통째로 쏟아붓더니, 정작 민생과 직결된 치안과 수사 인프라 정비에는 어쩜 이토록 무심하고 무능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은 중수청장의 국무회의 참석 여부를 둘러싸고 수사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을 스스로 자초했다"며 "김지용 중수청장 역시 취임 당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더니 국무회의에 참석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적으며 정치적 하수인 노릇을 자처했다"고 주장했다.

김지용 청장은 중수청 개청 약 2주 만인 지난달 15일 임명됐다. 김지용 청장은 지난달 20일과 27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 잇따라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공개회의에 참석하느냐 안 하느냐가 정치적 중립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지휘받는 기관인데 어떻게 지시를 안 할 수 있겠느냐. 공개회의에서 하는 게 낫지 따로 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요새 새로 개청해서 인력도 없고 시설도 불완전하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안 와도 된다"고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사법 혼란을 수습하고 지휘해야 할 법무부 장관과 경찰청장 등 주요 자리는 공석으로 방치돼 있다"며 "당장의 현장 혼란을 해결할 실효성 있는 수습책은 뒷전인 채, 여당은 '경찰대 로스쿨 신설' 같은 한가한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공소취소'에 들인 공의 반의 반만이라도 민생 사법 현장을 챙기는 데 쏟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참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은 현재 청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민주당 경찰개혁추진단이 최근 회의에서 경찰대에 법학전문대학원을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1일 나왔다. 민주당은 같은 날 "논의·검토된 바 없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강력히 경고한다"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인 개편의 실패를 인정하고, 중수청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시급히 공석인 사법 수뇌부를 임명하고, 멈춰 선 전산망과 수사 인프라를 확충하는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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