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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열렸다. 이 감독이 베니스에서 수상한 것은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이다. 한국 영화가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수상한 것 역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2012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노동의 의미가 사라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번 수상을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오랫동안 영화로 붙잡아 온 질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창동의 영화는 인물이 겪는 고통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관객의 연민과 비난, 이해와 판단까지 함께 문제 삼는다. 상처 입은 인물이 마침내 회복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인물이 응당한 벌을 받는 식의 익숙한 결말도 쉽게 내놓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에 관한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이창동 감독전’에서는 ‘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 ‘버닝’(2018) 등 6편이 상영된다. ‘가능한 사랑’ 이전에 발표한 이 감독의 장편영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획전이다.
이번 기획전을 계기로 여섯 편의 영화를 다시 살펴본다. 서로 다른 시대와 인물을 그린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들은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능한 사랑’은 ‘버닝’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이 감독의 신작이다. 전도연, 설경구, 조여정, 조인성이 출연하며 러닝타임은 164분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경제적 배경이 다른 두 부부의 삶과 숨겨진 욕망이 서로 얽히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카메라에 담는가 하는 문제다.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의 재료로 소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의 삶을 누가 어떤 시선으로 재현하며, 그 과정에서 무엇이 드러나고 무엇이 가려지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이야기의 소재뿐 아니라 자신의 형식과도 연결한다.
이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화면에 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 질문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고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 고통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을 영화로 만드는 행위 자체를 되돌아보려는 시도는 이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가능한 사랑’은 국내 극장 개봉을 거쳐 다음달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감독전은 신작에서 제기된 질문이 이전 작품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볼 기회이기도 하다.

‘초록물고기’는 소설가로 활동하던 이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한석규가 주인공 막동을, 심혜진이 미애를, 문성근이 조직폭력배 배태곤을 연기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막동은 자신이 기억하던 풍경이 사라진 현실과 마주한다. 개발로 변해버린 도시에서 그가 꿈꾸는 것은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평범한 생활이다. 그러나 막동은 미애와의 만남을 계기로 배태곤의 조직과 엮이고, 점차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막동의 선택을 개인의 어리석음이나 일탈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뿐 아니라,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조차 현실에서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초록물고기’는 급격한 도시 개발과 사회 변화 속에서 밀려나는 개인을 그린다. 막동의 비극은 한 청년의 잘못된 선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돌아갈 곳을 잃어가는 과정은 사회가 누구에게 자리를 허락하고 누구를 바깥으로 밀어내는지 묻는다. 개인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바라보는 시선은 이후 작품에서도 반복된다.

‘박하사탕’은 설경구가 주연하고 문소리가 영화에 데뷔한 작품이다. 설경구는 주인공 김영호를, 문소리는 영호의 첫사랑 윤순임을 연기했다.
영화는 1999년 봄, 한때 어울렸던 사람들의 야유회에 나타난 영호가 철길 위에서 절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사업에 실패한 중년 남성에서 형사 시절, 군 복무 시절을 거쳐 순수함이 남아 있던 젊은 시절까지, 영화는 일곱 개의 장을 통해 영호의 삶을 역순으로 되짚는다.
관객은 영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기 전에 그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부터 본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의 폭력적인 현재와는 다른 모습이 드러나고, 그가 통과한 시대와 개인의 상처도 조금씩 보인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해가 곧 용서를 뜻하지는 않는다. 시대의 폭력이 한 사람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이 그가 다른 사람에게 가한 폭력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박하사탕’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과 개인이 타인에게 가한 폭력을 동시에 바라본다. 과거를 알게 된 뒤에도 판단은 남는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일과 그 사람의 책임을 면제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는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이 감독에게 감독상(은사자상)을 안긴 작품이다. 주연 문소리도 신인배우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설경구가 연기한 종두는 교통사고로 사람을 숨지게 한 뒤 복역하고 출소한 인물이다. 그는 가족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종두는 사고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갔다가 피해자의 딸 공주를 만난다. 문소리가 연기한 공주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여성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편안한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종두는 공주에게 폭력적으로 접근하고,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싹튼다고 해서 그 시작의 폭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관객이 이 관계를 단순한 순애보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동시에 영화는 공주를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모습에 가두지 않는다. 가족과 이웃은 공주의 장애를 먼저 보고 그녀를 보호하거나 대신 판단하려 하지만, 영화는 공주의 감정과 욕망, 상상력을 직접 보여준다. 공주를 연민으로만 바라보는 것과 내면을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그렇다고 공주를 이해한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대상화해서도 안 된다. ‘오아시스’는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관계의 폭력성을 덮을 수 있는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 사람을 자신의 시선에 맞춰 해석하는 일은 아닌지 묻는다. 관객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판단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도연은 이 영화로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남편을 잃은 뒤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온 신애를 전도연이 연기하고, 신애 곁을 맴도는 카센터 사장 종찬은 송강호가 맡았다.
신애는 아들마저 유괴로 잃은 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속에서 신앙을 통해 위안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고통을 견디기 위해 붙잡은 믿음은 신애에게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신애가 아들을 해친 범인을 찾아가 용서하려는 순간이다. 범인은 신애에게 자신이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한다. 신애가 자신의 방식으로 감당해야 할 고통을 다른 존재가 먼저 정리해 버린 셈이다. 피해자가 용서할 준비가 되었는지와 상관없이 용서가 선언될 때, 그 말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 장면은 선의에서 나온 말조차 피해자의 감정을 대신 규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도연의 연기는 신애를 단순히 신앙에 의지하는 피해자나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로 규정하지 않고, 그의 분노와 모순, 무너짐을 그대로 드러낸다. ‘밀양’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충분한지 묻는다. 때로 필요한 것은 고통을 해결해 주겠다는 말보다, 그 고통을 타인의 방식대로 정리하지 않으려는 태도일 수 있다.

‘시’는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이다. 윤정희가 주인공 미자를 연기했고, 시인 김용택이 시 강좌의 강사로 출연했다.
미자는 손자 종욱과 함께 사는 노년의 여성이다. 문화센터에서 시 강좌를 듣기 시작한 그는 시를 쓰기 위해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은 미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손자가 연루된 성폭력 사건도 놓여 있다.
사건이 드러난 뒤 어른들은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족이 감당해야 할 문제와 합의에 마음을 기울인다. 미자 역시 손자의 잘못과 그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과 현실의 고통을 마주하는 능력은 같은 것일까.
영화는 시를 배우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미자의 일상과 사건을 수습하려는 어른들의 움직임을 나란히 놓는다. 시를 쓰기 위해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한다면,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름다움에 민감하다는 사실만으로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예술이 현실의 고통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변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유아인이 소설가를 꿈꾸는 청년 종수를, 전종서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해미를, 스티븐 연이 해미와 함께 나타난 벤을 연기했다. 영화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았다.
종수는 해미와 재회하고,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를 통해 벤이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세 사람의 관계는 점차 불안과 의심을 키운다. 벤은 종수에게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다고 털어놓고, 얼마 뒤 해미와 연락이 끊긴다. 종수는 벤의 말과 행동에서 단서를 찾기 시작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관객 역시 종수와 함께 의문을 좇는다. 벤의 행동은 수상하게 보이고, 해미의 이야기는 여러 가능성을 남긴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낸 단서가 정말 진실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이미 품고 있던 편견을 뒷받침하는 것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계층의 차이와 종수의 불안은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버닝’은 모든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미스터리가 아니다. 오히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믿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망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닮아 있지만, 때로는 타인을 자신의 판단 안에 가두려는 욕망이기도 하다. 영화는 답을 감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답을 찾으려는 우리 자신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한다.
‘초록물고기’부터 ‘버닝’까지, 여섯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인물과 시대를 그리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연민은 언제 편견이 되고, 이해는 언제 책임을 지우는 변명이 될까.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그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막동의 선택을 개인의 실패로만 설명하기 어렵고, 영호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고 그의 행동을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주를 향한 동정은 그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대상화할 수 있으며, 신애에게 건네는 위로는 그의 고통을 대신 정리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미자가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다른 의미를 얻고, 종수가 쫓는 진실은 관객 자신의 편견과 뒤섞인다.

이창동의 영화는 관객에게 편안한 답을 건네기보다 자신이 내린 판단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놓친 것이 있을 수 있고,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던 순간에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했을 수 있다. 그의 영화가 남기는 불편함은 인물에 관한 판단을 쉽게 끝낼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위로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선뜻 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같은 영화를 다시 볼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이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르게 보일 수 있고, 한때 당연하게 여겼던 판단이 이제는 망설여질 수도 있다.
영화는 그대로인데, 영화를 보는 나는 달라져 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까지 되돌아보게 하는 것. 어쩌면 이창동의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변화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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