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퇴진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우크라이나는 새 대통령을 맞이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퇴진을 요구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발하고 러시아는 환영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각) 공화당 지지 유세가 열리는 테네시주로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젤렌스키는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던 때가 여러 번, 정말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러지 않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뭘 제안하는지 아나. 합의를 할 수 있는 새 지도자를 가지라는 것"이라며 "그는 여러 번 합의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한 번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에 원하는 대로 하되 정유소는 공격하지 말라고 했다. 그건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 경유로 우리 농부와 목장주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며 "그런데 그가 뭘 하나. 가서 경유를 때린다. 당장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국토의 30%를 잃었고 양쪽에서 100만명 넘는 사람이, 200만명 넘는 사람이 죽었다"며 "결코 시작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다. 우크라이나는 새 대통령을 맞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쟁이 시작될 이유는 없었다. 무능 때문에 시작됐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수치는 실제와 차이가 있다. 독립적인 추산으로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약 20% 수준이다. 영국 국방 당국은 숨진 러시아 군인을 약 50만명으로 추산했다. 우크라이나 측 사망자에 대한 신뢰할 만한 최근 추산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산 경유 거래를 둘러싼 갈등 끝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 시장에 경유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30만t 이상을 즉시 공급한다. 11월 중 50만t, 이후 곧바로 100만t을 더 내놓는다. 그다음 짧은 기간 안에 300만t을 추가로 공급한다. 모두 합하면 480만t에 이른다.

미국 재무부는 러시아산 경유가 제재에도 세계 시장에 풀릴 수 있도록 임시 허가를 내줬다. 러시아 정부는 10일 경유 수출 금지 조치를 일부 풀었다. 해외 시장에 50만t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석유시설 공격이 이어지자 지난 7월 경유 수출을 금지했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수출을 풀어도 국내 소비자에게는 영향이 없다며 경유 생산량이 국내외 수요를 감당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번 거래는 미국이 수년간 이어온 대러시아 압박 기조를 크게 뒤집는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대러시아 제재법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거래를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솟은 연료 가격을 잡을 방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경유 부족의 주된 원인은 미국의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거래 소식이 알려진 9일 거세게 반발했다. 이때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종전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9일 기자들에게 보낸 음성 메시지에서 "우리 팀은 그저 가림막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분명히 우리를 상대로 한 고통에 쓰일 추가 자금"이라며 "푸틴만 살찌우고 더 오래 싸울 수 있게 해 줄 뿐"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는 키이우가 거래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귀국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오늘 러시아는 경유 수출 제재 해제에 감사를 표했다"고 적었다. 러시아군이 자포리자에 활공폭탄 5발을 떨어뜨린 것을 비꼰 말이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러시아의 선택은 전쟁"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수출로 더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무기와 병력 모집에 쓰일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거래가 공격을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를 준다며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에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묶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방공 문제를 논의했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우크라이나는 F-16 전투기가 샤헤드 드론을 요격하는 데 쓸 탄약을 받을 예정이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10일 엑스에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결정할 권리는 국민에게 있다"고 적었다. 시비하 장관은 "외국에서 나온 성명은 그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이다. 그는 지지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해외투자·경제협력 특사는 젤렌스키 대통령 교체를 거론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상징적이고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에너지 수입이 러시아 전쟁 자금의 핵심이라며 이번 합의에 유감을 표했다. 유럽연합(EU)은 12일 1600건의 제재 대상을 담은 역대 최대 규모의 대러시아 제재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 독일 정부 대변인은 독일이 제재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흔들림이 없다고 밝혔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약속한 물량을 실제로 공급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연료 부족 현상이 보고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 능력의 약 절반을 망가뜨렸다는 보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코르스키 장관은 "그렇다면 수출할 잉여분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되물었다.

러시아의 공습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10일 자포리자에서 러시아군 공격으로 어린이 3명을 포함해 최소 20명이 숨졌다. 최소 18명이 다쳤다. 같은 날 낮 수도 키이우에도 미사일이 떨어졌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최근 나흘 동안 러시아군 폭격으로 숨진 사람은 60명이 넘는다. 우크라이나도 10일 러시아 노보샤흐틴스크 정유소와 연결된 석유 터미널을 드론으로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공격으로 터미널에 큰불이 났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