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어 일본까지 "전 국민 3일분 비상식량 준비하라" 긴급 공지 술렁

일본 정부가 전 국민에게 식량과 물, 화장실 용품을 최소 3일분, 가능하면 1주일분 비축해 달라는 '긴급 요청'을 내놓기로 했다. 영국 정부가 가정마다 3일치 비상 물품을 갖추라는 캠페인을 시작한 지 며칠 만이다. 두 나라 정부는 당장 닥친 특정 위협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가 '긴급'이라는 말을 쓰자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전 국민에게 식량과 물, 화장실 용품을 최소 3일분, 가능하면 1주일분 비축해 달라는 '긴급 요청'을 내놓기로 해 열도가 술렁이고 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호소노 고시 일본 방재담당상은 후지TV 보도국 유튜브 채널 프로그램 '뉴스 연장전 시작합니다'에 최근 출연해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호소노 담당상은 방재청이 출범하는 다음 달 2일 중앙부처와 도도부현, 국민에게 대비를 서둘러 달라는 긴급 요청을 내겠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요구하는 내용은 구체적이다. 최소 3일분, 가능하면 1주일분의 먹을거리와 물, 화장실 용품을 집에 갖춰 두라는 것이다. 스스로 생활을 꾸려 갈 수 있는 사람이 늘면 지원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공적 지원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호소노 담당상의 설명이다. 그는 국가적 위기급 재해일수록 '자조(自助)'가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재청은 사전 방재부터 복구·부흥까지 재해 대응 전반을 지휘하는 정부 사령탑이다. 호소노 담당상은 "국난급 재해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자 과제"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국난급 재해로 꼽는 것은 난카이 해곡 지진, 수도 직하지진, 일본 해구·지시마 해구 주변의 해구형 지진, 후지산 분화다. 호소노 담당상은 이런 재해의 전체 그림을 보고 대응 체계를 만드는 작업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인정했다. 방재청이 다른 부처에 행사할 수 있는 권고권에 대해서는 '뽑지 않는 보검'으로 남겨 두지 않겠다고 했다.

발표가 알려지자 일본 인터넷에서는 술렁이는 반응이 나왔다. "대규모 지진이나 사이버 공격을 예고하는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긴급 요청'은 너무 과장된 표현 아니냐”, "괜히 위기감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제 와서 이러느냐"는 냉소와 함께 방재청의 일이 결국 자조와 공조(共助)뿐이냐며 공조(公助)의 역할을 묻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가 중대한 정보를 쥐고 있어서 이러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글도 올라왔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호소노 담당상의 발언을 보면 이번 요청은 특정 날짜를 염두에 둔 경보라기보다 방재청 출범에 맞춘 정책 메시지에 가깝다. 그렇다고 불안을 덜어 주는 말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정권 중추에 있었던 경험을 언급하며 "국난은 실제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머지않은 시기에 국가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영국 정부의 메시지도 결이 비슷하다. 영국 정부는 가정마다 사흘간 필수품을 갖추도록 권고하는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시작했다. 영국 ITV에 따르면 정부는 악천후나 사이버 공격 같은 외부 요인으로 필수 서비스가 끊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정부는 가정마다 사흘간 필수품을 갖추도록 권고하는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시작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웨스 스트리팅 영국 국방장관은 국민이 "경계하되 겁먹지는 않기(alert but not alarmed)"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트리팅 장관은 정부가 대비하는 "특정한 사태"는 없다며 이번 권고를 "일상적인 국가 회복력"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네 슈퍼마켓 결제 시스템이 멈추면 어떻게 버티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업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며 이런 일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말했다. 적대 국가나 테러 세력이 필수 공급망을 끊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캠페인은 전 세계 웹사이트 상당수가 쓰는 프로그래밍 언어 PHP에서 치명적 보안 결함이 발견돼 각국이 대응에 나선 가운데 시작됐다.

영국 정부가 내놓은 점검표에는 1인당 하루 3ℓ의 식수와 냉장·조리가 필요 없는 사흘치 식량이 들어 있다. 손 세정제와 물티슈, 여분 건전지를 갖춘 손전등, 담요와 침낭, 건전지식이나 태엽식 라디오, 충전된 보조배터리도 포함됐다. 지폐와 동전 현금, 신분증과 서류 사본, 종이에 적어 둔 연락처, 복용 중인 약 이름과 용량, 구급상자도 챙기라고 했다. 아기가 있는 집은 물을 끓일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바로 먹일 수 있는 액상 분유를, 반려동물이 있는 집은 사료와 생수를 준비하라고 안내했다.

영국에서도 불안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왔다. BBC 원 '퀘스천 타임'에서 한 방청객은 이번 캠페인이 공포를 조장하며 코로나19 때처럼 사재기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리팅 장관은 공포 조장이라는 지적을 부인했다. 그는 유럽 이웃 나라들을 살펴봤다며 그들이 "이 분야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말했다.

야당 반응은 엇갈렸다. 톰 투겐다트 보수당 예비내각 외무장관은 "국민에게 충분히 요청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앨리샤 컨스 보수당 예비내각 국가안보담당 부장관은 정부가 "국민을 가르치려 든다"며 정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해리 피츠 엑서터대 교수는 이런 대비 계획이 총리실에서부터 주도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2024년 이후 프랑스와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폴란드, 에스토니아 등이 잇따라 비슷한 대비 지침을 내놨다. 아일랜드도 지난 8월 '비 이머전시 레디(Be Emergency Ready)' 캠페인을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한꺼번에 사들이지 말고 장을 볼 때마다 물품을 조금씩 더하라고 당부했다. 6개월마다 유통기한을 확인해 비상용품을 교체하고 이웃끼리 연락처를 주고받아 정전 때 도울 일을 미리 의논하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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