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국에 가자고 해선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를 조건으로 미국 성인 1인당 5000달러(약 671만원)를 주겠다는 이른바 '트럼프 배당금(Trump Dividend)' 공약을 앞세워 막판 표심 잡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돈을 반드시 미국 안에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쓰면 안 되는 곳의 예로 한국과 중국, 일본을 직접 거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한 유세에서 "우리가 이기면 모두에게 5000달러를 준다"며 "트럼프 배당금의 유일한 단서는 그 돈을 미국 안에서 써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중석의 한 남성을 가리키며 "여기 있는 잘생긴 남성처럼 '여보, 5000달러 쓰게 중국으로 짧게 여행이나 가자'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 가자고 해서도 안 된다. 멋진 나라다. 한국에 가자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을 언급하면서는 "그들이 우리 덕을 못 본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돈은 미국에서 써야 한다"며 "중간선거에서 이기면 5000달러를 받게 된다"고 거듭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 미디어 모니터링 업체 그래비언이 공개한 연설 녹취록에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콕 집어 언급한 배경에는 한미 통상 관계가 깔려 있다. 한국은 지난해 7월 미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산 수입품에 15% 관세를 매기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세부 내용을 확정했다. 투자액 가운데 2000억달러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안에서 현금으로 나눠 투자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 협력에 쓰인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이민 당국의 대규모 단속이 벌어졌다. 이때 체포된 475명 가운데 300명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트럼프 대통령이 배당금 구상을 처음 꺼낸 곳은 지난 9월 9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였다. 그는 "우리의 엄청난 경제적 힘과 성공 덕분에 미국의 모든 성인 시민에게 5000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화당이 이기면 여러분도 함께 이기고 5000달러를 받는다"며 "이것은 트럼프 배당금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도 그는 "우리가 지급하는 배당금은 미국 안에서 써야 한다는 게 유일한 단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캐나다에 가서 돈을 쓰는 걸 원치 않는다. 중국이나 독일에 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때마다 이 공약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 네브래스카주 그랜드아일랜드 유세에서도 "단 하나의 단서는 5000달러를 미국 안에서 써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게 유일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돈이 실제로 미국 안에서 쓰이는지 어떻게 확인할 것이냐는 미국 의회 전문매체 CQ롤콜의 질문에는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지급 대상을 둘러싼 말도 오락가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배당금이 "모든 미국 시민"에게 지급된다고 썼다. 하지만 다음 날엔 "공화당이 하원과 상원에서 승리하면 미국의 모든 성인 시민에게 5000달러를 주겠다"고 대상을 고쳐 적었다.

재원 논란도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배당금은 약 1조달러"라면서도 "최근 15개월 동안 기록적인 21조달러가 미국에 투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JD 밴스 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재원은 관세 수입이며 중산층을 겨냥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계산은 다르다. 에리카 요크 조세재단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성인 약 2억4500만명에게 지급하려면 1조250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연간 관세 수입은 약 1250억달러로 필요한 돈의 10분의 1 수준이다. 요크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재정적자가 현재 약 1조8000억달러에서 3조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봤다. 그는 "금융시장이 이미 미국의 재정적자를 우려하고 있는데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적자를 거의 두 배로 늘리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마야 맥기니스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 회장은 "지금의 재정·경제 상황을 보면서 모두에게 현금을 보내려고 1조2000억달러를 더 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헤더 롱 네이비페더럴크레딧유니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채권시장은 이미 인플레이션과 40조달러에 이르는 미국 국가부채를 걱정하고 있다"며 "이 공약이 현실화하면 차입 비용이 더 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공화당 안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윌리엄 호글랜드 전 공화당 상원 지도부 예산 보좌관은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며 미국 안에서만 쓰게 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래리 커들로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배당금 공약을 두고 "좀 엉터리 같다"고 평가했다. 제이슨 스미스 하원 세입위원장은 공약을 지지하지 않았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NBC 방송에 출연해 "의회가 이 문제를 검토해 합의점을 찾겠다"면서도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권자에게 뇌물을 건네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리처드 닐 하원 세입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 수표' 발언을 "또 다른 눈속임"이라고 깎아내렸다. 닐 간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약속한 1인당 2000달러의 관세 배당금도 지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권자들도 공약 이행을 크게 믿지 않는 분위기다.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가 지난 9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지키면 트럼프 대통령이 배당금을 줄 것이라고 답한 등록 유권자는 21%에 그쳤다.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57%였다. 공약 자체에 대해선 반대 45%, 찬성 43%로 팽팽했다. 지난달 이코노미스트·유고브 조사의 중간선거 정당 지지도에선 민주당이 공화당을 8%포인트 앞섰다.

데이비스 잉글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걸 꾸준히 증명해왔다"며 "미국 국민의 계속된 지지로 실질적인 성과를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간선거 투표는 3일(현지시각)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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