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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를 맞아 '절약'이 다시금 화두다.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온다. 하지만 절약을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평생 검소함을 고집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욱 의미있게 와닿는다. 절약 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의 이야기를 알아본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1982년생인 정 회장은 2025년 10월 HD현대 회장으로 승진하며 오너 3세 경영 시대를 공식화했다. 그런 그가 과거 유튜브 채널 '소비더머니'에 출연해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털어놓아 잔잔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채널에서 평소 정주영 회장과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냐는 질문에 대해 정기선 회장은 "아침 식사를 같이하고 나서 현대그룹 사장님들과 함께 걸어서 출근하시는 뒷모습을 보고 커왔다"며 운을 뗐다.
이어 "항상 하셨던 말씀은 '밥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밥 남기면 안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밝혔다.


한국 최고의 재벌 창업주로 꼽히는 그가 손자에게 건넨 말이 거창한 경영 철학이나 인생 훈계가 아닌, 밥 한 그릇을 남기지 말라는 당부였다는 점이 묘한 울림을 준다. 그 말 한마디 안에는 정주영 회장이 평생 살아온 방식, 즉 아무리 작은 것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근검'의 정신이 압축돼 있다.
정주영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도 검소한 삶의 신념을 숨기지 않았다. 1986년 중앙대학교 특강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지금도 내가 담배를 안 피운다. 지금은 돈이 없어 안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돈이 아까워서 담배를 안 피웠다. 배도 안 부르는데 연기 피워서 돈 쓸 필요가 뭐 있냐"고 말했다.
젊은 시절 쌀 배달원으로 일할 때 전차 삯이 아까워 새벽부터 걸어서 출근했다는 일화,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었다는 이야기도 지금까지 회자된다. 가난한 농가에서 자란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서 이어받은 부지런함과 절약 정신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직원들에게 '집을 사기 전에 왜 텔레비전을 사는가. 라디오 하나만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안다. 사실 깊은 이야기는 라디오에 많다'라고 전한 이야기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고지식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말의 본질은 분명하다. 진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냉철하게 구별하라는 것. 이를 통해 우선순위를 파악하라는 삶의 교훈이다.

정주영 회장이 큰 그룹을 이끌면서도 평생 검소함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절약이 단지 '돈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절약은 하나의 태도이자 세계관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절약의 의미는 달라진다. 20~30대의 절약이 미래를 위한 종잣돈 마련이라면, 40~50대 이후의 절약은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방어선에 가깝다. 소득이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오는 시기, 고정 지출은 줄어들지 않고 예상치 못한 의료비나 노후 준비 비용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절약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사람은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지출을 줄이는 법을 알지 못해 재정 위기를 맞기 쉽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소비 습관이 한번 굳어지면 바꾸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항상 벌었으니까'라는 논리로 허용한 소비가 나이 들어서도 관성처럼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절약하는 생활을 오래 유지해 온 사람은 수입이 줄어도 생활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정주영 회장이 재벌 총수가 된 뒤에도 검소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습관이 젊은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결과로 볼 수 있다.
심리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소비는 종종 채우지 못한 감정을 달래는 수단이 된다. 스트레스받을 때 충동구매를 하고, 외로울 때 과식을 하고, 무기력할 때 유흥에 지출하는 패턴은 나이와 소득을 가리지 않는다. 절약은 단순히 돈을 덜 쓰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조율하는 자기 통제의 연습이기도 하다.

절약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습관의 축적에서 시작된다. 정주영 회장이 담배를 끊은 것도, 전차 삯을 아낀 것도, 밥을 남기지 않은 것도 모두 아주 작고 구체적인 행동들이었다.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절약의 방법들도 마찬가지다.
우선 고정 지출 점검부터 시작하자. 절약의 첫걸음은 현재 어디에 돈이 나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매달 자동 결제되는 구독 서비스, 사용하지 않는 멤버십, 습관적으로 연장한 보험이나 통신 요금제를 점검해보자. 쓰지 않는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더 저렴한 요금제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매달 수만 원을 아낄 수 있다.
음식 낭비도 줄여야 한다. 정주영 회장의 '밥 남기지 말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장을 볼 때 필요한 양만 구입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먼저 소비하는 습관을 들이면 식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배달 음식이나 외식 횟수를 일주일에 한 번 줄이는 것만으로도 연간으로 따지면 적지 않은 금액이 절약된다.
충동 구매를 막는 '24시간 규칙'을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무언가를 사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때, 24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구입하는 방식이다. 이 단순한 규칙만으로도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불필요한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저축을 지출보다 먼저 하는 것도 필수다. 수입이 들어오면 먼저 일정 금액을 저축하고 나머지로 생활하는 '선저축 후소비' 원칙은 재테크의 기본이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자동이체를 활용해 월급날 바로 저축 계좌로 이체되도록 설정해두면, 있는 돈 안에서 생활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진짜 필요한 것과 단지 갖고 싶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 이것이 절약의 본질이다. 소비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게 지금 정말 필요한가"를 한 번만 더 물어보는 것. 그 작은 습관이 장기적으로 재정 건강을 지켜준다.
밥 한 그릇을 남기지 말라는 말. 거대 자산가가 손자에게 건넨 이 말이 결국 절약의 본질을 담고 있다. 화려한 투자 기법이나 복잡한 재테크 전략보다 매일의 작은 실천과 낭비하지 않는 태도는 세월이 지나도 유효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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