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선 '악마의 풀'로 불리는 한국 밥도둑... 이 시간 따라서 맛도 달라진다

산에서 갓 꺾은 통통한 고사리를 구경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생고사리 채취는 봄 한철에나 가능한 일이다. 가을과 겨울 식탁에 오르는 고사리는 말린 고사리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건고사리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뻣뻣하다. 건고사리를 보들보들한 나물로 되살리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대충 불려서 삶으면 질겅질겅 씹히는 고무줄이 된다. 오래 삶으면 젓가락으로 집기도 전에 흐물흐물 풀어진다. 퀴퀴한 묵은 냄새가 남는 경우도 흔하다. 말린 고사리 손질의 핵심은 결국 시간이다.

삶은 고사리를 건조하는 모습. / 뉴스1 자료사진

서양선 '악마의 풀', 한국선 밥상 단골

고사리의 학명은 프테리디움 아퀼리눔(Pteridium aquilinum)이다. 전 세계 곳곳에 자라는 흔한 양치식물이다. 그런데 서양에선 이 풀을 먹을거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독초 취급을 한다. 서양 일부에서 '악마의 풀'이라는 험악한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유는 고사리에 든 프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성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1987년 고사리를 인체 발암 가능 물질(2B군)로 분류했다. 사람에게서 발암성을 입증할 근거는 부족하다. 다만 동물실험에서 충분한 근거가 확인됐다는 이유다. 실제로 목초지에서 고사리를 많이 뜯어 먹은 소가 방광 질환을 앓는 사례가 서양에서 오래전부터 보고됐다. 목장 주인들에게 고사리는 반가울 리 없는 잡초다.

한국인에게 고사리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명절 차례상과 제사상엔 고사리나물이 빠지지 않는다. 갈색 고사리와 흰 도라지, 초록 시금치를 나란히 올리는 삼색나물은 한국 상차림의 기본이다. 비빔밥 위에도 고사리가 올라간다. 얼큰한 육개장에 고사리가 빠지면 어딘가 허전하다. 서양인 눈엔 위험한 독풀이 한국인에겐 사계절 밥도둑인 셈이다.

고사리 / 쿠팡

이렇게 수요가 많다 보니 수입산도 적지 않게 들어온다. 중국산 고사리를 국산과 섞어 국산으로 속여 학교급식에 납품한 업체 대표가 2023년 구속되기도 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소개한 구별법에 따르면 국산 건고사리는 줄기 아랫부분 단면이 불규칙하게 잘려 있다. 먹을 때 줄기가 연하다. 중국산은 줄기 아랫부분을 칼로 잘라 단면이 매끈하다. 식감도 질긴 편이다. 장 볼 때 줄기 끝을 한 번쯤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불리고 삶고 또 불리는 '3단 공정'

말린 고사리 손질은 크게 세 단계다. 씻고 불리기, 삶기, 다시 우려내기다. 귀찮아 보여도 이 과정을 건너뛰면 맛도 식감도 안전도 모두 놓친다.

첫 단계는 헹구기다. 말린 고사리는 찬물에 두세 번 헹궈 먼지와 이물질을 털어낸다. 씻지 않고 바로 삶으면 텁텁한 맛과 냄새가 남기 쉽다.

다음은 불리기다. 넉넉한 찬물에 고사리를 푹 잠기게 담가 둔다. 보통 6시간에서 1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바싹 마른 고사리라면 시간을 더 늘린다. 저녁에 담가 두고 다음 날 아침에 삶는 방식이 가장 편하다. 불리는 동안 물을 두세 번 갈아 주면 갈색 물과 특유의 쓴맛이 함께 빠진다.

불린 고사리는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삶는다. 시간은 20분에서 30분 정도가 적당하다. 가는 햇고사리는 20분 안팎, 굵거나 묵은 고사리는 30분 가까이 삶는다. 뚜껑은 열어 두고 중간에 한두 번 뒤적인다. 다 익었는지는 줄기 굵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 확인한다. 부드럽게 뭉개지면 된 것이다. 30분을 훌쩍 넘기면 고사리가 힘없이 풀어지니 주의해야 한다.

삶는 시간에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국제 학술지 '톡식스(Toxics)'에 2023년 실린 연구에 따르면 고사리를 20분 삶자 프타퀼로사이드 농도가 최대 99% 줄었다. 연구진은 섭취 전 최소 20분 이상 삶기를 권고했다. 프타퀼로사이드는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다. 오래 불리고 삶은 물을 버리는 과정이 독성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이유다. 홍콩 식품안전센터도 고사리를 많은 양의 끓는 물에 삶은 뒤 그 물을 버리라고 권고한다.

고사리 / 연합뉴스

마지막은 우려내기다. 삶은 고사리를 건져 찬물에 여러 번 헹군 다음 깨끗한 물에 다시 담가 둔다. 삶은 물에 그대로 둔 채 뚜껑을 덮어 하룻밤 두는 방법도 많이 쓴다. 이렇게 하면 질긴 섬유질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묵은 냄새도 상당 부분 빠진다. 다음 날 물을 갈아 가며 한 번 더 헹구면 손질이 끝난다.

주의할 점도 있다. 덴마크 연구진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선 삶거나 말리는 과정이 프타퀼로사이드를 어느 정도 줄이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제대로 손질한 고사리라도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이 먹는 건 피하는 게 좋다. 홍콩 식품안전센터 역시 고사리 제품을 과도하게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 날것으로 먹는 건 금물이다.

들기름 두르면 끝, 집에서 하는 고사리 요리

손질을 마쳤다면 이제부터는 쉽다. 가장 기본은 고사리나물볶음이다. 불려 삶은 고사리 300g을 먹기 좋은 길이로 자른다. 단단한 줄기 끝은 잘라 낸다. 여기에 국간장 2큰술과 다진 마늘 1큰술, 들기름 2큰술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다. 이 상태로 10분쯤 두면 양념이 줄기 속까지 밴다.

달군 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다진 대파를 볶는다. 파 향이 올라오면 밑간한 고사리를 넣고 중불에서 4~5분 볶는다. 이어 다시마 우린 물이나 멸치육수를 150ml쯤 붓는다. 뚜껑을 덮고 약불에서 7~8분 자작하게 익힌다. 이 과정을 거치면 고사리가 질기지 않고 촉촉해진다. 불을 끈 뒤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려 마무리한다. 간이 모자라면 소금으로 맞춘다.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면 들깨고사리볶음도 좋다. 같은 방식으로 볶다가 육수를 붓고 졸일 때 들깨가루를 넉넉히 넣는다. 들깨가루가 국물을 머금어 걸쭉하게 고사리에 엉긴다. 밥 한 공기가 금세 비워진다.

국물 요리로는 육개장이 대표적이다. 삶은 소고기를 결대로 찢고 손질한 고사리와 숙주, 대파를 듬뿍 넣는다. 고춧가루와 국간장, 다진 마늘로 양념해 푹 끓인다. 고사리는 국물을 빨아들이면서 쫄깃한 식감을 낸다. 제주에선 돼지고기 육수에 고사리를 잘게 풀어 걸쭉하게 끓인 고사리육개장을 즐겨 먹는다.

남은 고사리나물은 비빔밥 재료로 그만이다. 따뜻한 밥 위에 고사리와 다른 나물, 달걀프라이를 올리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비면 한 끼가 해결된다.

말린 고사리를 불리고 삶는 과정은 매번 하기엔 번거롭다. 한 번에 넉넉히 손질해 한 번 먹을 만큼씩 나눠 냉동해 두면 필요할 때 꺼내 바로 볶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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