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는데 '25번'이나 거부 당해 겨우 출산한 임산부

경기 안성에 사는 임신 35주차 임산부가 양수가 터진 뒤 무려 25개 병원에서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고 전북 전주까지 헬기로 이송돼 출산했다.

산모와 아기는 무사했지만, 수도권에 거주하는 임산부조차 응급상황에서 가까운 병원을 찾지 못하고 150㎞ 떨어진 지역까지 이동해야 하는 현실이 다시 드러났다.

8일 전주예수병원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2시 7분쯤 안성시에 거주하는 30대 임산부 A씨가 "양수가 흐른다"며 119에 신고했다. 임신 35주차였던 A씨는 출산 예정일을 앞둔 상태였지만 아직 만삭인 37주에는 이르지 않은 시기였다.

구급대원은 A씨에게 조기 양막 파수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 조기 양막 파수는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양막이 터져 양수가 흘러나오는 상태를 말한다. 임신 주수가 이른 경우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양막이 파열된 상태가 지속되면 산모와 태아의 감염 위험도 커질 수 있어 신속한 진료가 필요하다.

응급실을 찾아가도 즉시 진료를 못 받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문제는 A씨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였다.

구급대원은 경기와 서울, 충청권 등을 포함해 병원을 찾았다.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함께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병원을 비롯해 모두 25곳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받아줄 수 있다는 답변을 얻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히 병실이 하나 비어 있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위험 산모가 출산하게 되면 산부인과 의료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생아를 치료할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필요할 경우 응급수술을 담당할 마취통증의학과 의료진과 수술실, 신생아 집중치료 시설까지 동시에 준비돼야 한다.

특히 조산 가능성이 있는 산모는 출산 직후 신생아에게 집중치료가 필요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산모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라고 해서 곧바로 고위험 신생아까지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소방청은 이날 오전 3시 30분께 전주예수병원에 지원을 요청했다. 예수병원이 A씨를 수용하기로 하면서 소방헬기 이송이 결정됐고, A씨는 오전 5시 16분께 약 150㎞를 이동해 전주예수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산모가 도착하기 전 수술실과 신생아 치료 시설을 준비했다. 이후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마취통증의학과가 협진해 분만에 대응했고 A씨는 무사히 출산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회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25개 병원이 모두 고위험 산모를 치료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응급상황에서는 해당 시점에 필요한 의료진과 병상, 수술실, 신생아 치료시설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야 산모를 받을 수 있다.

평소에는 분만을 운영하는 병원이라도 야간이나 휴일에 응급수술을 담당할 의료진이 충분하지 않거나 신생아집중치료실 병상이 부족하면 고위험 산모의 전원을 받을 수 없다. 한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산부인과와 신생아 진료를 24시간 유지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이 함께 필요한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국내 분만 인프라의 변화가 있다.

출생아 수가 감소하면서 분만을 하는 의료기관 자체가 줄었고, 남아 있는 병원에서도 산부인과 전문의와 간호인력 확보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특히 고위험 분만은 일반적인 외래진료보다 응급수술 가능성이 높고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의료진이 필요하다. 여기에 신생아 집중치료까지 가능한 병원은 더욱 제한적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도, 산부인과의 환자 거부는 여전하다. / AI 생성 이미지

보건복지부도 산과와 신생아 진료 인력이 부족하고 지역일수록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현장 점검 자료에 따르면 충북대학교병원 권역 모자의료센터의 경우 산과 전문의가 1명에 불과해 휴일과 야간 응급 대응에 한계가 있는 상황도 확인됐다. 정부는 고위험 분만이 증가하는 반면 산과와 신생아과 인력은 부족해 고위험·응급 분만 산모가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모자의료’라는 말은 산모와 아기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임신부터 분만, 출산 직후 신생아 치료까지 연결해서 관리하는 의료체계를 뜻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 모자의료체계를 중증도에 따라 나누는 방식으로 개편하고 있다. 기존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중심의 체계를 중증·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로 구분해 산모와 신생아의 상태에 맞는 병원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가장 위 단계인 중증 모자의료센터는 복합적인 중증 산모와 태아, 신생아를 치료하는 역할을 맡고 권역 모자의료센터는 권역 내 고위험 분만과 응급상황을 담당한다. 지역 모자의료센터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서 분만과 초기 진료를 담당하고 필요한 경우 상위 기관으로 환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2025년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중앙 중증 모자의료센터로 지정했고, 2026년에는 중증 모자의료센터를 전국 6곳으로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권역별 모자의료 네트워크도 확대하고 산모와 신생아의 응급 전원을 지원하는 체계를 전국으로 넓히기로 했다.

특히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대책 가운데 하나는 ‘어디에 병상이 있는지 더 빨리 찾는 시스템’이다.

현재 응급상황에서 119가 여러 병원에 차례로 전화를 걸어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정부는 산모와 신생아를 전원할 병원의 의료진과 병상 등 자원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적절한 병원을 빠르게 선정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을 운영하기로 했다. 병원이 결정된 이후 실제 이송까지 빨라지도록 119구급대와의 연계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치료하는 병원에 대한 지원 방식도 바뀌고 있다. 정부는 고위험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손실을 보상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10곳을 사후보상 대상기관으로 선정했다. 의료진이 고위험 분만을 맡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부담을 줄여 필수의료 기반을 유지하려는 취지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현실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하지만 병원을 지정하고 이송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는 결국 사람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정부가 발표한 대책과 관련해 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에 실제 진료를 담당할 의사와 간호인력이 부족하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산과 전문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병상 숫자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24시간 응급분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북의 경우 2026년 기준 전주·군산·익산을 제외한 11개 시·군이 분만 취약지로 분류되고, 완주·진안·무주·장수·임실·순창·부안에는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지역에서는 평소에도 출산을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이동거리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안성 임산부 사례는 수도권이라고 해서 고위험 분만 의료체계에서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까운 병원에 분만실이 있다는 것과 응급상황에서 산모와 신생아를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A씨는 다행히 전주예수병원이 수용하면서 무사히 출산했지만, 응급상황에서 25곳에 차례로 연락한 뒤 150㎞ 떨어진 병원까지 헬기로 이동해야 했다는 사실은 현재 고위험 산모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과제를 보여준다.

정부가 추진하는 중증·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 확대와 실시간 병상·의료자원 확인 시스템, 119 연계 강화, 고위험 분만 보상 확대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이를 담당할 산부인과와 신생아 진료 인력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산모가 어느 지역에 살고 있든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치료할 병원을 찾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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