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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가까워지면 절임배추 옆에서 수육 냄비가 함께 끓는 집이 늘어난다. 같은 돼지고기라도 어떤 순서로 삶느냐에 따라 집 안에 퍼지는 냄새와 접시에 오르는 식감이 달라진다. 향채를 넣은 육수를 먼저 끓이고, 고기를 넣은 뒤 은근하게 삶고, 불을 끈 다음 육수 안에서 쉬게 하는 순서를 단계별로 정리했다.
수육 레시피의 출발점은 고기가 아니라 물이다. 물이나 간을 한 육수에 향채를 넣고 끓여 충분히 뜨거워진 뒤에 고기를 넣고, 다시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는 것이 기본 순서다. 찬물에 고기와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불을 올리던 습관이 있다면 낯설 수 있지만, 이 순서에서는 고기가 들어가는 순간 냄새를 눌러 줄 재료가 이미 냄비 안에서 우러나고 있다.
냄비는 고기가 육수에 넉넉히 잠기는 크기로 고른다. 앞다리살이나 삼겹살 1~1.5kg 덩어리가 보편적인 기준이라, 좁은 주방에서 작은 냄비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 윗부분이 육수 밖으로 나와 고르게 익지 않는다. 핏물을 빼는 과정은 레시피마다 다르므로 각자 쓰는 방식을 유지하되,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레인지후드를 켜고 주방 창문을 조금 열어 두자. 향채 냄새와 고기 냄새가 아파트 복도나 거실로 퍼지는 속도가 한결 느려진다.

수육 육수에 넣는 향채는 양파, 마늘, 생강, 대파, 통후추, 된장, 커피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무엇을 넣을지는 레시피마다 다르다. 전부 넣어야 잡내가 잡히는 것은 아니니, 집에 있는 재료 한두 가지로 시작해도 된다.
대파 뿌리와 푸른 부분, 양파 껍질 안쪽 겉부분처럼 평소 요리에서 버리기 쉬운 자투리가 이 육수에는 쓸모가 있다. 마늘과 생강은 칼등으로 눌러 향이 잘 빠지게 하고, 통후추는 갈지 않고 그대로 넣는다. 된장은 육수에 풀어 체에 걸러 쓰면 건더기가 고기에 달라붙지 않아 나중에 씻어 내기 편하다. 인스턴트 커피를 넣는 레시피도 있지만 양은 레시피 지시를 따르고, 처음이라면 소량으로 시작해 맛을 보는 것이 안전하다.
향채 육수는 고기를 넣기 전에 한 번 팔팔 끓여 향을 내야 한다. 이때 간은 레시피대로 맞추되, 육수가 지나치게 짜면 고기 속까지 짠맛이 배므로 처음에는 약하게 잡는다.

육수가 뜨거워진 뒤 고기를 넣고 다시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꾸준히 잔잔하게 끓는 상태를 유지한다. 센 불에서 거세게 끓이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작은 기포가 올라오는 정도가 알맞다. 거세게 끓이면 고기가 질겨지고 육수가 탁해지기 쉬우며, 국물이 튀어 좁은 주방 벽과 가스레인지 주변이 금방 지저분해진다.
삶는 시간은 1~1.5kg 앞다리살이나 삼겹살 기준으로 대략 45~70분이다. 다만 시간은 무게보다 두께가 좌우한다. 같은 1kg이라도 길쭉하고 얇은 덩어리와 두툼한 덩어리는 속까지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므로, 정해진 시간이 끝났다고 곧바로 건지지 말고 가장 두꺼운 부분을 확인해야 한다. 속까지 완전히 익고 찔렀을 때 부드럽게 들어가면 다 익은 것이다.
가장 정확한 방법은 깨끗이 닦은 조리용 온도계를 가장 두꺼운 부분 중심에 꽂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육류를 중심온도 75도에서 1분 이상 가열하라고 안내한다. 온도계가 없다면 젓가락이나 꼬치로 두꺼운 부분을 찔러 붉은 핏기가 섞인 육즙이 나오지 않는지 본다. 눈대중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라, 수육을 자주 삶는 집이라면 온도계 하나를 구비해 두는 편이 낫다. 뚜껑을 열어 확인할 때는 올라오는 뜨거운 김에 손과 얼굴을 데지 않도록 뚜껑을 몸 반대쪽으로 열고, 고기를 찌를 때도 집게로 고기를 고정한다.
다 익은 고기를 곧바로 건져 썰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불을 끄고 뜨거운 육수 속에 10~20분 그대로 두면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막 건져 썰면 김과 함께 육즙이 새어 나와 접시에 오르기 전부터 고기가 마르기 쉽다. 이 휴지 시간 동안 고기 속 열이 고르게 퍼지고, 썰었을 때 단면이 덜 부서진다.
휴지가 끝나면 고기를 건져 썬다. 이때 쓰는 칼과 도마는 깨끗한 것이어야 한다. 생고기를 다루던 도구를 그대로 쓰지 말고 씻어서 말린 도구를 쓴다. 썬 수육은 한꺼번에 접시에 담지 말고 먹을 만큼만 내놓는다. 뜨거울 때 먹는 편이 식감이 좋고, 남는 고기는 곧바로 보관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장 날 수육이 늦으면 속 버무리기가 끝난 뒤에도 고기를 기다려야 한다. 고기를 넣고 45~70분을 삶고 불을 끈 뒤 10~20분 쉬게 하므로, 고기를 넣은 시점부터 썰기 직전까지는 최소 55분에서 최대 90분이 걸린다. 이는 앞의 두 수치를 더한 계산값이다. 배추 속을 넣는 작업이 시작될 즈음에 맞춰 고기를 넣으면 대개 양념을 버무리는 시간에 삶기가 끝난다.
문제는 양념 작업에 몰두하다 냄비를 잊는 경우다. 고기를 넣은 시각을 휴대전화 타이머나 주방 타이머에 맞춰 두고, 불은 약하게 유지한다. 육수가 졸아 고기가 드러나면 뜨거운 물을 보충해 잠기게 한다. 가스레인지를 켜 둔 채 장시간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절임배추를 헹구는 작업과 삶는 작업을 가족끼리 나눠 한 사람은 냄비 옆을 지키는 편이 좋다.

김장 당일에는 수육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몇 시간씩 두는 경우가 많다. 식약처 식중독 예방 수칙은 조리한 음식을 2시간 이내에 냉장 보관하고 냉장고를 5도 이하로 유지하라고 안내한다. 이 기준을 지키려면 김장 작업이 길어지더라도 시간을 보고 먹을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서둘러 넣어야 한다.
큰 통에 한꺼번에 담으면 가운데까지 식는 데 오래 걸린다. 넓고 얕은 용기에 나눠 담아야 열이 빨리 빠지고 냉장고에서도 빨리 식는다. 좁은 냉장고라 얕은 용기를 여러 개 넣기 어렵다면 한 번 먹을 분량씩 소분해 납작하게 펴 담는 방법이 낫다. 다시 먹을 때는 속까지 완전히 데워서 먹는다.
정리하면 수육의 순서는 향채 육수, 뜨거운 상태에서 고기 투입, 은근한 불, 육수 속 휴지, 썰기, 남은 고기의 빠른 냉장이다. 이 순서만 지켜도 김장 날 주방의 냄새와 고기의 식감이 한결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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