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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어도 안 죽고 얼려도 안 죽는다. 초장에 소주를 곁들여 먹어도 죽지 않는다. 겨울 식중독의 주범 노로바이러스 얘기다. 감염병 역학조사 현장을 수없이 누빈 예방의학 전문의가 생굴을 끊었다고 털어놨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신은 갑오년부터 생굴을 먹지 않습니다(노로바이러스 대응 방법)'라는 제목의 글을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올렸다. 정 교수는 이 커뮤니티에서 '여왕의심복'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목은 이순신 장군의 장계 문구를 비튼 것이다.
정 교수는 글 첫머리에서 역학조사관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전문의를 따고 처음 간 직장은 군이었다. 3년 동안 정말 많은 역학조사를 했다"며 "메르스나 지카처럼 신종 감염병을 다루는 날도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은 식중독, 결핵, 수두 같은 일상적인 감염병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3년 차쯤 되니 급식 식단과 환자 양상만 보고 원인을 짐작할 정도가 됐다”며 "원인 상당수는 노로바이러스였는데 겨울에 구토로 시작하는 유행은 거의 예외가 없었다"고 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노로바이러스는 종류가 매우 많다. 유전자군이 10개, 유전형은 48개가 넘는다. 한 유전형에 걸려도 다른 유전형에는 면역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평생 반복해서 감염되는 이유다. 잠복기는 12~48시간이다. 갑작스러운 구토와 물설사, 복통이 1~3일 이어진다. 건강한 성인은 수분만 잘 보충하면 낫는다. 그러나 정 교수는 "문제는 어린이와 어르신"이라며 "탈수가 빨리 오고 면역저하자는 수개월에서 수년 가는 만성 감염으로 넘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감염 경로는 대변과 입이다. 감염자의 분변과 구토물이 하수와 정화조로 흘러들고 일부가 바다와 지하수로 새어 나간다. 이 바이러스가 굴과 물을 거쳐 다시 사람 입으로 들어온다. 정 교수는 "하수 처리가 바이러스를 다 걸러내지 못한다"며 "장마철 범람과 정화조 침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양식장 주변 분뇨가 바다를 오염시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굴 생산 해역의 오염 수준은 낮지 않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해양수산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부터 지난달까지 굴 생산 해역 35개 지점에서 이뤄진 검사 1223건 가운데 497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검출률은 40.6%다. 감염에 필요한 바이러스 양은 입자 10~100개에 불과하다.
정 교수는 노로바이러스를 없앨 방법은 열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로바이러스는 굴 표면이 아니라 소화기관 안쪽 조직에 붙어 있다"며 "잘 씻거나 해감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냉동, 식초, 소금, 소주로도 죽지 않는다. 영하 20도에서 살아남고 산성에도 강하다. 알코올 손 소독제도 효과가 떨어져 손은 비누로 씻어야 한다.
가열도 충분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은 중심 온도 85도에서 1분 이상이다. 정 교수는 "방송이나 유튜브를 보면 껍질이 열리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안전 지표는 아니다"라며 "자료를 보면 홍합을 5분 쪄도 중심 온도가 평균 83도에 그쳤고 끓는 물에 3분 담가야 92도에 도달했다"고 했다.
굴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홍합, 바지락 같은 패류와 냉동 베리류, 채소, 김치, 감염된 조리 종사자가 만든 음식에서도 노로바이러스가 나온다. 정 교수는 김치를 우리나라 특유의 경로로 꼽았다. 그는 "상당수의 집단급식 노로바이러스 유행이 오염된 지하수가 김치를 거쳐 퍼진 것으로 분자역학 조사에서 확인됐다"며 "공장 한 곳이 오염되면 제품을 통해 유행이 계속 이어진다"고 했다. 생굴을 만진 손이나 칼, 도마가 다른 음식에 닿는 교차오염도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가장 주의해야 할 식품은 굴이다. 굴은 하루에 수십 리터의 바닷물을 걸러 먹는다. 이 과정에서 바닷물에 조금 있던 바이러스가 굴 소화조직에 농축돼 몇 주씩 남는다. 수온이 낮은 겨울에는 더 오래 남는다. 굴철이 곧 노로바이러스철인 셈이다.
정 교수는 그나마 안전한 굴 요리로 굴국밥과 굴밥을 꼽았다. 끓는 국물이나 밥 안에서 3분 이상 가열되기 때문이다. 굴전은 크기에 따라 중심 온도가 모자랄 수 있어 양면을 충분히 익혀야 한다. 생굴과 굴무침, 어리굴젓, 껍질이 열리자마자 꺼내는 찜과 구이는 위험하다고 했다.
포장지 표시도 살펴야 한다. 정 교수는 '가열조리용'이라고 표시된 굴은 생식용 위생 기준에 못 미치는 해역에서 났거나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된 해역에서 출하 연기 권고를 받고도 출하된 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반대로 생식용 표시도 노로바이러스 음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자신이 생굴을 끊은 이유도 밝혔다. 그는 "이제 굴을 생으로 먹지 않는다. 환자를 너무 많이 봤고 3년 전 굴젓갈을 먹었다가 기절할 만큼 심한 장염을 앓은 적이 있다"고 했다. 다만 "건강한 성인에게 노로바이러스는 사흘 지독하게 아프고 끝나는 병"이라며 "그 사흘을 감수하고 생굴을 드신다면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라고 했다. 이어 "어르신과 아기는 다르다. 탈수로 입원하는 일이 흔하고 가족 안에서 2차 감염이 뒤따른다"며 "이분들은 굴을 비롯한 패류를 생으로 드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댓글로 질문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이 "한 번 걸리면 평생 면역이라던데"라고 묻자 정 교수는 "대표적인 오해"라고 답했다. 그는 "한 유전자형에는 면역이 꽤 오래(2년) 생기지만 유전자형이 여러 가지이고 굴이 한 가지 유전자형 바이러스만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다섯 가지, 여섯 가지씩 들고 있어서 답이 없다"고 했다.
굴국밥을 먹고 두 번이나 크게 탈이 났다는 네티즌에게는 "그러면 이미 그 식당이 교차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생굴을 손질한 손으로 다른 걸 만지고 식기를 만지고 하다가 감염되는 루트"라고 했다. 같이 먹은 사람은 멀쩡했는데 자신만 아팠다며 체질 탓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식중독 자체가 복불복 요소가 매우 강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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