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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송호영 기자] 일제강점기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뗀 한글날이 올해로 제정 100주년을 맞이했다. 한 세기 동안 이름과 날짜는 거듭 바뀌어 왔지만,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고자 했던 이들의 숭고한 노력은 여전히 서울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
1926년 제정 당시의 '가갸날'은 한글을 '가갸거겨…'로 익히던 관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28년 비로소 '한글날'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고,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으로 정통성을 확립한 뒤 광복을 맞이한 1945년부터 지금의 10월 9일에 기념식을 이어오고 있다.
한 세기를 이어온 한글날 100주년의 뜻깊은 해를 맞아, 서울 도심 속에 아로새겨진 우리말과 글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짚어봤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일구이륙 무한이륙'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에서는 최초의 가갸날부터 오늘날 한글날에 이르는 역사와 우리말을 지켜온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전시를 담당하는 윤지현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올해는 한글날 100주년이라 전체적으로 크게 기념하는 분위기"라며 "한글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도 이어져야 하고 또 그러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글 연구의 토대를 닦은 인물 중에는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 선생이 있다. 그는 한국어 문법 연구와 교육에 힘썼으며, 국어사전 '말모이' 편찬에도 참여했다.
오늘날 서울 광화문 인근에는 그의 이름을 딴 '주시경마당'이 조성돼 있다. 시민들이 분주히 오가는 도심 속 기념 공원으로, 주시경 선생이 살던 집터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1926년 11월 4일 첫 '가갸날' 기념식이 열린 요릿집 식도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00년 전 우리말과 글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던 곳은 평범한 도심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글날 제정을 주도했던 조선어연구회의 흔적은 남아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북촌 한옥마을 한쪽에는 조선어연구회의 후신인 조선어학회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1908년 국어연구학회로 출발한 조선어학회는 1921년 조선어연구회, 1931년 조선어학회로 명칭을 바꿔가며 국어 연구와 보급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사전 편찬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1942년,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항일독립운동단체로 판단해 회원과 관련 인사들을 검거하면서 사전 편찬 작업도 중단됐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당시 최현배, 이극로, 이희승, 정인승 등 여러 학자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 이윤재와 한징은 옥중에서 목숨을 잃었다. 광복 후 수감자들이 풀려나면서 조선어학회는 활동을 재개했다. 1949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꿔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광복 이후 한글날을 기념했던 역사적 건물도 남아 있다. 서울 종로구 운현궁 맞은편 천도교중앙대교당이다.
1945년 10월 9일 이곳에선 광복 이후 첫 한글날 기념식이 열렸다. 일제강점기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켜온 이들은 광복 후 다시 한글날을 기념할 수 있게 됐다.


광복 후 첫 한글날 기념식을 한 달여 앞둔 1945년 9월 8일, 일제에 압수됐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경성역 뒤편 조선통운 운송부 창고에서 극적으로 발견됐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1947년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이 세상에 나왔고, 이후 제3권부터는 '큰사전'으로 이름을 바꿔 1957년 제6권까지 완간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사전은 훗날 현대 국어사전 편찬의 든든한 토대가 됐다. 일제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끝내 지켜낸 100년 전의 숭고한 노력과 결실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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