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한 공무원의 죽음 앞에 영주시는 무엇을 했나


2년 만에 상급자 1명만 재판행
직장 내 괴롭힘 재발 방지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해야


지난 2024년 11월 5일 영주시 공무원노동조합이 시청 마당에서 발인 노제를 진행하고 있다. /김성권 기자

[더팩트ㅣ영주=김성권 기자] 한 공무원이 세상을 떠났다. 휴대전화에는 조직에서 겪은 고통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남았다. "직원들의 차가운 눈총과 말, 행동들 비아냥거림 너무 힘들다", "난 조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글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공직사회가 무엇을 놓쳤는지 되묻게 한다.

영주시청 6급 공무원이었던 고(故) 권모 팀장 이야기다. 2024년 11월 2일 영주시 문수면의 한 도로에 세워진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권 팀장. 그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당시 같은 부서의 상급자였던 과장 A씨가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일 영주시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A씨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전달했다. 사건 발생 이후 장기간 이어진 조사와 수사 끝에 나온 결과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긴 질문에 비춰 보면, 이번 기소만으로 사건이 매듭지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북도 특별감사에서는 민원서비스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실제 열리지 않은 회의를 개최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도록 고인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상급자인 A씨에게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다른 간부와 직원에게도 관련 자료 조작에 관여한 책임을 물어 징계할 것을 영주시에 요청했다. 행정안전부는 고인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에 따른 순직으로 인정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개인 간 갈등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조직의 실적을 위해 무리한 지시가 내려지고, 그 과정에서 부당함을 호소한 직원이 고립됐다면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성격이나 업무 능력이 아니라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과 관리·감독체계에 있다.

그런데 형사 절차의 결과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조사된 공무원은 모두 4명이었지만, 수사 과정에서 2명은 제외됐고 1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결국 과장 A씨만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이번 기소에서 직접 적용된 혐의는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이다.

물론 감사 결과와 형사 책임은 구분해야 한다. 감사에서 부당한 행위가 확인됐다고 해서 모든 관련자에게 곧바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혐의와 증거, 법률적 요건에 따라 수사와 기소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기소 대상이 제한됐다는 사실만으로 수사기관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형사재판의 범위가 사건의 모든 책임을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 형사처벌 여부와 별개로 조직 내부에서 누가 부당한 지시를 내렸는지, 문제를 제기한 직원이 왜 보호받지 못했는지, 관리자는 무엇을 알고도 조치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더욱이 고인이 숨진 뒤 유족에 대한 사과를 둘러싸고도 여러 의문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돌았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다만 이러한 전언만으로 간부들이 입을 맞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소문 자체가 아니라, 유족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당시의 의사결정과 사후 대응이 투명하게 설명됐느냐는 점이다.

2024년11월 2일 직장 내 괴롭힘 의혹 등으로 숨진 고 권모 팀장(6급)의 배우자와 친구들이 이듬해인 2025년 1월 한파가 몰아치는 혹한의 날씨속에 상복을 차려입고 고인의 사망 원인을 규명해달라며 시청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김성권 기자

공직사회에서 책임은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되는 순간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위계 구조, 실적과 평가를 앞세우는 관행,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드는 조직문화가 있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 역시 행정의 책임이다.

영주시는 이제 사건의 경과를 설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됐을 때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는지, 신고 이후 인사상 불이익이나 추가적인 압박을 막을 장치가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상급자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 직원이 안전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신고·상담체계도 갖춰야 한다.

특히 인사권과 업무평가권을 가진 상급자가 신고 대상인 경우에는 조사 과정에서 이해충돌을 차단하고, 피해자와 신고자의 신분을 보호하며, 조사 결과와 후속 조치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 서약서에 그치는 대책이 아니라 실제 신고와 조사, 보호, 징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직의 성과를 위해 절차와 원칙을 희생하는 관행부터 끊어내야 한다. 실제로 열리지 않은 회의를 열린 것처럼 꾸미는 일이 가능했다면, 이는 문서 작성자의 잘못만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실적을 요구한 사람과 확인·결재한 사람,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도 조치하지 않은 관리체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유족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가 처벌받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고통을 호소했을 때 조직은 왜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는지, 또 다른 직원이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권모 팀장의 죽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더욱 분명하다. 책임을 법적 판단에만 맡긴 채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죽음이 드러낸 조직의 문제를 하나씩 바로잡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제도,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문화, 피해자를 보호하는 실효성 있는 절차, 책임 있는 간부에 대한 엄정한 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한 공무원의 죽음 앞에서 공직사회가 배워야 할 것은 침묵하는 법이 아니다. 잘못된 지시를 멈추는 법, 고통을 호소하는 동료의 목소리를 듣는 법, 그리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 책임 있게 바로잡는 법이다.

영주시가 답해야 할 질문도 여기에 있다. 권모 팀장의 죽음 이후,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tk@tf.co.kr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