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없다'던 노동부…9개월 쿠팡 감독, 핵심 의혹 '불기소·위반 없음'


장관 호언장담 무색…김범석 지시 확인에도 '시효 만료·불기소'
과태료 19억6000만원…쿠팡 "전직 임원 일방적 주장…유감"


고용노동부가 22일 쿠팡 계열사 기획감독·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고 장덕준 씨 사건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고, 블랙리스트·불법파견 의혹은 '위반 없음'으로 결론 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유연석 기자] 고용노동부가 쿠팡의 조직적 산업재해 은폐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해 9개월여간 진행한 기획감독·수사 결과를 내놨다. 고(故) 장덕준 씨 사건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로 했고, 국회 청문회에서 제기된 핵심 노동 의혹도 '위반 없음'으로 결론 냈다.

연초 주무부처 장관이 무관용 원칙을 공언했던 것과 달리 핵심 의혹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감독 결과는 안전조치 위반 등에 대한 과태료와 사법처리가 중심이 됐다.

◆ 김범석 지시 확인하고도…'산재은폐 요건 미충족·시효 만료' 불기소

노동부는 22일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 대한 기획감독 결과와 장 씨 사건 산재은폐 고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당시 쿠팡 대표이사였던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부적절한 지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의장은 2020년 10월 사내 메신저로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 "그들은 시간제 근로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측 관계자들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고인의 물 마시기, 화장실 가기 등 동선을 분류하고 시간을 정리했다. 근로복지공단 유족급여 조사 과정에선 고인이 나오지 않는 CCTV를 먼저 냈다가 2차 제출 때 고인이 찍힌 영상을 냈다. 관계자가 근무환경을 영상과 다르게 진술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노동부는 공소청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로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은폐죄가 성립하려면 산재 발생 사실 미보고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 행위가 있어야 하지만, 당시 중대재해 발생 보고가 이뤄졌고 승인 과정의 방해 행위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장 씨가 사망한 2020년 10월 기준 공소시효(5년)가 지난해 10월 이미 만료된 점도 불기소 근거로 들었다. 고발장은 시효 만료 이후인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각각 접수됐다.

오영민 노동부 안전보건감독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산재은폐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은폐죄로 의율하기 쉽지 않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가 쿠팡 계열사에 대한 산업안전·근로기준 감독에서 법 위반 206건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61건은 사법처리하고 145건에는 과태료 19억6000여만원을 부과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 블랙리스트·불법파견 '위반 없음'…합의 은폐 의혹은 규명 못 해

청문회에서 불거진 노동 의혹도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으로 지목된 '성과향상프로그램(PIP)'은 실제 해고 사례가 확인되지 않아 취업규칙 미기재에 따른 과태료 70만원 부과에 그쳤다.

퇴사자 명단을 채용에 참고한 '블랙리스트' 의혹은 명단 작성은 인정되나 외부에 공유되지 않아 취업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계열사 간 불법파견 의혹도 인정되지 않았다.

조직적 산재은폐 의혹 역시 규명하지 못했다.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쿠팡 3사에서 숨진 노동자는 23명이었다. 반면 2022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뇌심혈관계 질환 유족급여 신청은 3건에 불과해 합의를 통한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노동부가 합의서 확보를 위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기획감독에서는 산업안전·근로기준 분야를 합쳐 206건의 위반이 적발됐다. 노동부는 이 가운데 61건을 사법처리하고, 145건에는 과태료 총 19억6000여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계열사별로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12억9000여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합의금 지급이나 면담으로 산재요양 신청을 취하시킨 2건은 범죄인지해 별도 수사에 착수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월 5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을 찾아 지난해 12월 열린 국회 쿠팡 청문회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고쳐 쓰기가 가능한 단계인지 의문이 들었다"며 산재은폐 의혹을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고용노동부

◆ "고쳐 쓰겠나" 호언장담 무색…9개월 만에 "부적절했다 정도"

이 같은 처분은 연초 노동부가 내세웠던 강경 기조와 크게 대비된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 1월 "고쳐 쓰기가 가능한 단계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차관을 단장으로 한 TF를 꾸려 위반이 확인되면 "관용 없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9개월간 이어진 대대적 수사 끝의 결론은 달랐다. 오 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산안법상 은폐죄로 보는 부분이 다르다"며 "당시 했던 것들이 부적절했다 정도로 답변드리겠다"고 했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유가족께 다시 한번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개선이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필요한 사안들은 충실히 소명해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김 의장의 지시와 관련해서는 "비위행위로 해고되고 소송에서 패소한 전직 임원의 일방적 주장이며, 관련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부적절한 지시가 사실로 확인된 것처럼 발표된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이어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쿠팡이 언급한 전직 임원은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를 지낸 A씨다. A씨는 쿠팡을 상대로 해고 무효 소송을 냈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는 지난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직후 사내 불법행위 의혹을 언론에 제보했다. 쿠팡은 당시 A씨가 해임에 불만을 품고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A씨가 직원 학대와 신고자 보복 행위로 해임됐고, 이 과정에서 회사에 160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게 쿠팡 측 설명이다.

노동부는 관련 자료를 직접 확보하고 관계자 진술을 거쳐 지시 사실을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ccbb@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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