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럽지만 '스모킹건' 없었다…'김건희 로저비비에' 김기현 무죄 배경


배우자 국회 방문·귀국 행사 참석…전달 경로 가능성 제시
'김기현 당대표' 포스트잇도 정황…"공모 입증할 증거 부족"


김건희 여사에게 로저비비에 가방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김 의원의 관여를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 | 정예은 기자] 김건희 여사에게 로저비비에 가방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김 의원의 관여를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했지만 배우자와 공모했다고 단정할 만한 '스모킹 건'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조형우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김 의원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가방을 직접 구매한 배우자 이 모 씨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2023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도움에 대 보답으로 김 여사에게 267만 원 상당의 로저비비에 클러치백을 제공했다고 인정했다. 가방과 함께 보낸 편지에 '맡겨진 날 동안 총선 압승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점도 근거로 들었다.

판결문에는 김 의원의 공모가 의심되는 정황으로 구매 대금 결제 내역과 이 씨의 국회 방문, 김 의원의 대통령 귀국 행사 참석 등이 언급됐다.

◆가족카드 결제·공항 대기…공모 의심 정황 곳곳에

판결문에 따르면 이 씨는 김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지 8일 만인 2023년 3월16일 서울 강남구 한 백화점에서 로저비비에 클러치백을 샀다. 대금 267만 원 중 207만 원은 김 의원의 국회의원 급여 계좌와 연결된 이 씨 명의의 가족카드로 결제됐다. 카드 발급을 위해선 김 의원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결제내역은 매달 24일 김 의원의 이메일로 전송된다.

재판부는 이같은 결제 방식이 김 의원의 관여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라고 봤다. 다만 "급여 계좌는 이 씨가 따로 관리했고, 결제 당시 김 의원이 구매 사실을 알았다고 단정할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가방을 산 다음 날 이 씨의 국회 방문도 의심스러운 정황으로 봤다. 이 씨는 3월17일 오후 1시47분께 의원회관을 방문해 약 1시간 20분간 머물렀다. 당시 김 의원 측 직원들이 의원회관을 출입한 기록도 확인됐다.

방일을 마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023년 3월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귀국해 마중 나온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당시 당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같은 날 김 의원이 성남 서울공항에서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귀국을 기다린 점에도 주목했다.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귀국을 앞두고 이 씨가 국회에서 김 의원의 보좌진 등을 통해 가방과 편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 씨가 국회를 방문했을 때 김 의원의 측근이나 직원에게 가방을 건네고, 이를 전달받은 관계자가 대통령실 혹은 김 의원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은 있다"며 "김 의원이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윤 전 대통령 부부 도착 전까지 약 1시간 동안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함께 대기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의원이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곳에서 김 여사에게 직접 가방을 건넸을 가능성은 낮고, 서울공항에서 김 의원이 쇼핑백 등을 소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수행비서의 진술도 있다"며 "특검이 제출한 증거는 김 의원의 개입 가능성을 추론하게 할 뿐,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다"고 판시했다.

◆'김기현 당대표' 포스트잇…"공모 증거로는 부족"

가방과 함께 발견된 편지봉투에 붙어있던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라고 적힌 포스트잇도 김 의원의 관여를 의심하게 하는 정황이었다.

재판부는 인쇄 방식으로 제작된 포스트잇에 김 의원의 이름이 명시된 만큼 실제 제공자가 김 의원이었을 가능성을 검토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배우자 이 모 씨가 지난해 12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KT 웨스트에 마련된 김건희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재판부는 "포스트잇을 누가 작성하고 부착했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고, 김 여사 측 직원들은 이런 방식으로 라벨링한 적 없다고 진술했다"며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지만, 이 씨가 독자적으로 직원들에게 김 의원의 이름을 기재하도록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평소 의원실 직원들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별도 요청을 했고, 남편의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러면서 "가방 제공 역시 이 씨의 독자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김건희 특검)은 이같은 판단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김한수 특검보는 선고 직후 "당대표 명의로 영부인에게 선물을 보내는데 당대표와 상의 없이 배우자 혼자 보냈다는 판결을 일반 국민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판결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살핀 뒤 항소심에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ye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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