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4.7조원 vs 韓 0원…앤트로픽 IPO서 또 소외된 서학개미


日 증권가는 물량 확보 총력…韓 증권가는 참여부터 손사래
초대형 IPO마다 반복되는 소외…국내 증권사 글로벌 경쟁력 도마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일본은 최대 4조7000억원 규모의 공모주 모집을 추진하는 반면 국내 증권사들은 인수단 참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AP.뉴시스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글로벌 초대형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의 나스닥 상장이 임박한 가운데 일본은 최대 4조7000억원 규모의 공모주 모집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증권사들은 인수단 참여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지난 6월 스페이스X에 이어 앤트로픽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청약 기회가 불투명해지면서 글로벌 IPO 시장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日 4.7조원 공모 추진하는데…韓 대형 증권사 9곳 '불참'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형 증권사 10곳을 대상으로 앤트로픽 IPO 인수단 참여 여부를 확인한 결과 9곳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하나증권, 키움증권, 신한투자증권, 대신증권 등이다. 메리츠증권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앤트로픽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S-1)에 이름을 올린 22개 인수단에도 국내 증권사는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역시 현재까지 앤트로픽 IPO 인수와 관련한 국내 증권사의 신고나 보고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일본은 앤트로픽 IPO를 통해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기업 공모주 모집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일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최대 35억달러(약 4조7000억원) 규모의 공모주를 판매할 계획이다. 일본 내 공모는 미즈호증권이 주관하며 골드만삭스증권과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 라쿠텐증권, SBI증권 등도 청약을 받을 예정이다.

이는 지난 6월 스페이스X가 일본에서 모집한 21억8500만달러(약 2조9000억원)보다 약 60% 많은 규모다. 일본 증권사들이 글로벌 대형 IPO에서 자국 투자자들의 청약 통로를 확보하는 동안 국내 증권사들은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 스페이스X 실패에 AI 고평가 논란까지…몸 사리는 증권가

국내 증권사들의 소극적인 태도에는 스페이스X IPO 당시의 실패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미래에셋증권은 스페이스X 공모주 청약을 추진했지만 최종적으로 물량을 배정받지 못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에도 실제 공모주 확보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해외 초대형 IPO 참여의 한계가 드러났다.

미국 IPO는 현지 대표주관사가 공모 물량 배정을 결정하는 구조다. 국내 증권사가 현지 금융회사와 협력하더라도 실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오랜 거래 관계를 구축한 기관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만큼 국내 증권사들의 협상력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앤트로픽의 기업가치를 둘러싼 고평가 논란도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앤트로픽의 적정 기업가치를 1조5000억~1조6000억달러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앞서 거론됐던 2조달러보다 최대 25% 낮은 수준이다.

최근 글로벌 기술주 급락과 AI 투자 과열 우려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낮아진 영향이다. 앤트로픽이 갱신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컴퓨팅 인프라 구매 약정과 리스 계약에 따른 지출 의무는 총 8954억달러(약 1203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향후 12개월 안에 지급해야 할 금액만 698억달러(약 94조원)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은 앤트로픽의 상장 이후 신용등급이 투자적격등급에 미치지 못하는 'BB'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투자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인프라 투자 부담에 기업가치 하향 조정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증권사들의 위험 부담도 커진 셈이다.

◆ 글로벌 IPO서 밀려나는 서학개미…상장 후 매수만 남나

문제는 국내 증권사들의 참여가 저조할수록 개인투자자들의 공모주 청약 기회도 제한된다는 점이다.

국내 개인투자자가 미국 IPO 공모주에 참여하려면 국내 증권사가 현지 인수단을 통해 물량을 확보한 뒤 이를 배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앤트로픽 공모 물량을 확보했다고 밝힌 국내 증권사는 없다.

결국 국내 투자자들은 앤트로픽 상장 이후 미국 주식시장에서 직접 매수하거나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활용한 간접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상장 이후 매수는 공모가보다 높은 가격에 진입할 위험이 있다. 실제 스페이스X는 지난 6월 상장 첫날 주가가 30% 급등하면서 공모주를 배정받은 투자자와 상장 이후 매수한 투자자 간 수익률 격차가 벌어졌다.

앤트로픽은 이달 안에 'ANT'라는 종목코드로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대 2조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약 1000억달러를 조달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최종 공모가와 매각 주식 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글로벌 초대형 IPO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공모주 시장 진출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 위험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도 필요하지만, 해외 인수단과의 협력 관계를 확대하지 못한다면 국내 투자자들의 청약 기회가 계속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형 IPO는 현지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물량이 배정되기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이 공모주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스페이스X에 이어 앤트로픽까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글로벌 인수단과의 협력을 강화해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IPO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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