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자제 호소한 축구협회, 선수단 갈등 해결은 누가 하나 [박순규의 창]


'96라인 은퇴설' 후 현영민 위원장 면담,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카타르 월드컵부터 반복된 갈등...근본적인 해법 내놔야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 친선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착잡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울산=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오죽 답답했으면 팬들에게 호소문까지 냈을까. 그러나 호소문을 읽고 나니 또 다른 답답함이 밀려온다. 가짜뉴스를 멈춰 달라는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정작 가짜뉴스가 번성하게 된 토양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13일 이례적으로 팬들을 향한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최근 국가대표 선수들을 둘러싸고 확산하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추측성 주장, 인신공격, 딥페이크 영상 등에 우려를 표하면서 자제를 요청했다. 허위·왜곡 정보를 유포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백번 옳은 말이다. 비판과 비방은 다르다. 경기력이 부진하면 비판받을 수 있고, 대표팀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의혹으로 특정 선수를 범인처럼 몰아가고, 짜깁기한 영상에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조회수와 수익을 챙기는 행위는 비판의 자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선수의 개인 소셜미디어는 물론 소속팀 계정까지 찾아가 인신공격을 퍼붓는 행태는 한국 축구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최근 이강인의 소속사가 사실무근인 의혹에 법적 대응을 예고한 것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축구는 왜 이토록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도 쉽게 흔들리는 조직이 되었는가. 건강하고 신뢰받는 조직이라면 근거 없는 억측이 이처럼 빠르게 확산하기 어렵다. 물론 조직이 건강하다고 가짜뉴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부의 불신이 쌓이고 책임 있는 설명이 부족할수록 억측이 파고들 틈은 넓어진다. 소문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잘못과 소문이 자라나는 환경을 방치한 조직의 책임은 별개로 따져야 한다.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이 경기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이번 사태의 출발점에는 이른바 '96라인 은퇴설'이 있다.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전 직후 김민재, 황인범, 황희찬 등 1996년생 핵심 선수들의 대표팀 은퇴설이 제기됐다. 한국이 2-0으로 승리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다. 은퇴설은 당사자와 협회 측의 설명으로 일단 진정됐지만, 선수들이 대표팀 생활에서 상당한 고충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현영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과 선수들의 면담이다. 현 위원장은 경기 직후 세 선수와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후 선수들이 그동안 힘들었던 문제들을 많이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한 차례 대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여기서 협회에 묻고 싶다. 그 면담 이후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 선수들이 털어놓은 고충은 누구에게 보고됐는가. 모레노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문제의 실체를 충분히 공유받았는가. 선수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조정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후속 논의는 진행되고 있는가. 현 위원장의 면담은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일회성 대화였는가, 아니면 조직을 바꾸는 출발점이었는가.

물론 협회 내부에서 어떤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지 외부에서 모두 알 수는 없다. 선수들의 사생활과 팀 내부의 민감한 대화를 낱낱이 공개할 수도 없다. 그러나 면담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하고 재발을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은 필요하지 않은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이후 불거진 이른바 '2701호 논란'을 떠올려 보자. 당시 대표팀 의료 지원 체계를 둘러싼 갈등은 선수와 협회 사이의 신뢰 문제를 드러냈다. 협회는 뒤늦게 의료 운영 체계 개선책을 내놓았다.

13일 팬들을 상대로 발표한 대한축구협회 입장문.

2023년에는 김민재와 손흥민의 소셜미디어를 둘러싼 갈등설이 불거졌고, 2024년 아시안컵에서는 손흥민과 이강인 사이의 충돌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에도 갈등을 둘러싼 과장과 억측이 뒤따랐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언론 인터뷰 문제를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각각의 사건은 발생 배경과 책임 소재가 다르다. 이를 하나의 파벌 문제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반복되는 사건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갈등을 조기에 발견하고 조정하는 조직적 역량에 대한 의문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세대와 경험, 역할이 다른 선수들이 90분 동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는 대표팀이라면 의견 충돌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문제는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다.

중국 고전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자세를 뜻한다. 원팀은 모든 선수가 같은 생각을 하는 조직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선수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신뢰를 쌓아가는 조직이다.

그런데 한국 축구는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진상 파악과 구조적 개선보다 당장의 봉합에 무게를 두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문제가 터지면 면담하고, 논란이 커지면 해명하고, 여론이 악화하면 입장문을 내는 방식으로는 조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 한국 축구는 정상적인 지도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과도기에 있다. 축구협회장은 공석이고, 국가대표팀은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 체제다. 모레노 감독은 6경기 가운데 4경기를 치러 2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남은 11월 A매치 2경기에서 전술적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동시에 흔들리는 선수단의 신뢰까지 회복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단 내부의 갈등을 감독 개인의 지도력에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협회가 먼저 선수단의 고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감독과 선수들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며, 주장단을 포함한 내부 소통 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립적인 전문가가 참여하는 갈등 조정 체계도 마련할 수 있다. 선수들의 의견을 정기적으로 듣고, 불만이 쌓이기 전에 해결하는 상설 소통 창구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면담에서 제기된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당사자들에게 피드백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선수들의 입을 열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을 듣고 조직이 실제로 달라지는 일이다. 협회가 이번 입장문에서 약속한 선수 보호 역시 악성 게시물에 대한 법적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 허위정보에 대한 신속한 사실 확인과 대응,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 지원, 대표팀 내부의 신뢰 회복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팬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태극마크를 단 선수에게 무조건적인 성원을 보낼 의무는 없지만, 사실 확인 없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권리도 없다. 비판은 날카로울수록 좋다. 다만 그 칼끝은 사실을 향해야 한다.

그러나 팬들의 자제를 구하는 것만으로는 위기가 끝나지 않는다. 협회가 스스로 바뀌지 않은 채 여론의 침묵만 기대한다면, 이번 입장문은 갈등 해결이 아닌 또 하나의 임시방편으로 남을 것이다.

병을 고치려면 증상을 억누르는 데 그치지 않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중국 고사성어 '양탕지비(揚湯止沸)'는 끓는 물을 퍼 올려 식히는 임시방편을 뜻한다. 반면 '부저추신(釜底抽薪)'은 솥 아래의 땔나무를 빼내 근본 원인을 제거한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은 '양탕지비'가 아니라 '부저추신'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이후 4년 가까이 반복된 갈등과 논란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어떻게 낙관할 수 있겠는가.

13일 협회의 입장문에는 선수들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이제는 그 약속을 행동으로 증명할 차례다. 무엇보다 현영민 위원장과 '96라인' 선수들의 면담이 또 하나의 봉합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한다.

팬들에게 가짜뉴스를 멈춰 달라고 호소하기 전에 협회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선수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가.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뒤 과연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그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경고문을 발표해도 한국 축구를 둘러싼 불신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가짜뉴스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나 더 시급한 일은 가짜뉴스가 발붙일 틈을 주지 않는 건강한 대표팀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은 팬들의 침묵이 아니라 협회의 책임 있는 행동이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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