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은 손흥민"...모레노의 '정공법', 봉합인가 해법인가 [박순규의 창]


‘은퇴설’ 96라인 모두 재발탁…핵심 유지한 선택, 이제 경기력으로 증명할 때
11월 중동 2연전,...모레노의 마지막 시험대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은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11월 중동 원정에 나서는 2기 멤버를 발표했다. 이번 명단에는 '은퇴 소동'을 빚은 '96라인'이 모두 포함됐고, 손흥민도 계속 주장을 맡게 된다./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명단은 감독이 정한다. 그러나 그 선택의 설득력은 선수들의 이름보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축구에서 나온다. 누가 뽑혔는지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도 결국 어떻게 뛰었는지에 대한 평가로 넘어간다.

29일 공개된 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대표팀 임시 감독의 두 번째 소집 명단은 그 출발점에 서 있다. 은퇴설에 휩싸였던 김민재·황인범·황희찬이 모두 돌아왔고, 손흥민은 주장 자리를 지켰다. 모레노 감독은 주장 교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대표팀 주장은 손흥민이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완장의 주인은 정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완장을 중심으로 26명이 얼마나 단단하게 연결되느냐는 문제다.

◆ 핵심은 유지하고 경쟁은 열었다…선택은 감독의 몫

이번 명단을 두고 ‘변화가 없다’고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지난 소집의 30명은 26명으로 줄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 신민하와 서울의 젊은 미드필더 손정범이 처음 발탁됐고, 엄지성과 김지수도 합류했다. 새 얼굴을 통한 경쟁과 가능성 점검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가장 많은 관심이 쏠렸던 대표팀의 중심축에는 변화가 없었다. 모레노는 손흥민과 이른바 ‘96라인’을 함께 불렀다. 논란 이후 인적 개편으로 방향을 틀기보다 기존 핵심들과 문제를 풀어가는 정공법을 선택한 셈이다.

로베르트 모레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임시 감독이 29일 오후 충남 천안시 코리아풋볼파크에서 11월 A매치 축구국가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천안=뉴시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나 여론만으로 선수를 배제하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한다. 구체적인 갈등 내용과 실제 은퇴 결정 여부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발탁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감독의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 선수들이 가장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 판단을 경기장에서 입증해야 한다. 이름값을 합친다고 조직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 "많이 대화했다"…소통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합의의 내용

모레노 감독은 이날 "최근 몇 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대화였다"고 밝혔다. 선수들과 주장, 협회, 팀 관계자들과 소통했다며 "팀이 그 어떤 선수보다도 우선시된다"고 강조했다.

필요한 말이다. 대표팀의 질서는 특정 세대나 스타 개인의 이해보다 앞서야 한다. 주장도, 수비의 핵심도, 중원의 중심도 같은 원칙 안에 있어야 한다.

문제는 대화를 많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갈등이 해결됐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서로의 입장을 들은 것과 공동의 기준에 동의한 것은 다르다. 당장의 불편함을 덮어둔 것과 다음 충돌을 막을 규칙을 세운 것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모든 대화 내용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 라커룸에는 지켜져야 할 신뢰와 사생활이 있다. 다만 내부에서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는 앞으로의 운영에서 드러나야 한다. 선발과 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 역할이 줄어든 선수를 대하는 방식, 실수가 나왔을 때 동료에게 보이는 반응이 그 기준을 보여줄 것이다.

‘팀이 우선’이라는 선언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될 때 힘을 얻는다.

29일 발표된 모레노호 2기 명단./KFA

◆ 손흥민의 완장은 지켰다…팀의 질서는 감독이 세워야

손흥민을 주장으로 유지한 결정은 지휘 체계의 불확실성을 줄였다. 그러나 완장 문제를 정리했다고 선수단 운영의 숙제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주장이 동료들의 신뢰를 얻고 팀을 이끄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선수단의 모든 관계를 주장 개인이 감당할 수는 없다. 감독이 정해야 할 역할과 원칙까지 손흥민의 리더십에 맡겨서는 곤란하다.

김민재와 황인범, 황희찬 역시 경기력과 경험에 걸맞은 책임을 보여줘야 한다. 대표팀의 허리를 이루는 선수들이 감독과 주장을 존중하면서 후배들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하느냐는 팀의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새로 합류한 선수들에게도 대표팀은 기량을 겨루는 공간이어야 한다. 선배들의 관계부터 살펴야 하는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모레노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선수의 입지만이 아니라, 누구나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 중동 2연전, 점수판과 경기 내용이 함께 답해야 한다

11월 13일 사우디아라비아전과 17일 카타르전은 모레노 감독에게 기존 계약상 마지막 두 경기다. 앞선 네 경기의 성적은 2승 1무 1패. 에콰도르와 우즈베키스탄에는 이겼지만 우루과이에 크게 졌고, 베네수엘라와는 득점 없이 비겼다. 가능성과 한계가 함께 드러났다.

이번에는 그 한계를 얼마나 줄였는지 보여줘야 한다. 상대 압박을 벗겨낸 뒤 공격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공을 잃었을 때 전방과 중원이 함께 반응하는지, 먼저 실점했을 때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한국축구대표팀의 11월 중동 원정 경기 일정./KFA

특히 어려운 순간을 봐야 한다. 앞서갈 때의 환호보다 뒤처졌을 때의 협력이 팀의 실체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실수한 동료를 위해 한 발 더 뛰고, 교체된 선수가 들어가는 선수에게 힘을 보태는 행동이 쌓일 때 ‘원팀’은 구호를 벗어난다. 한두 장면을 확대해 관계를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두 경기 전체에서 반복되는 협력과 조직력은 평가할 수 있다.

2027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정상에 오른다면 1960년 이후 67년 만의 우승이다. 그 오랜 숙원을 향한 중동 리허설을 감독 개인의 계약 연장 시험으로만 소비할 수는 없다. 협회 역시 두 경기의 승패와 함께 전술의 개선, 선수단 운영, 대회 준비의 연속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모레노는 선택했다. 핵심을 유지했고, 손흥민의 완장도 확인했다. 이제 "많이 대화했다"는 설명 다음에 필요한 것은 함께 달라진 모습이다.

그 대화가 잠시 논란을 가라앉힌 봉합이었는지, 팀을 다시 세운 해법이었는지는 중동의 그라운드에서 드러날 것이다. 모레노의 진정한 지도력은 명단 발표가 끝난 지금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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