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행복'과 멀어진 한국 축구팬들, 태극마크 책임은 어디에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라커룸 밖으로 나온 논란은 더 이상 내부 문제가 아니다
'침묵' 96라인, '무책임' 축구협회…국민 앞에 사실관계 밝히는게 도리


한국축구대표팀 임시사령탑 로베트르 모레노 감독이 29일 코리아풋볼파크에서 11월 중동원정에 나설 모레노호 2기 명단발표 기자회견을 가고 있다./천안=KFA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한국 축구팬들은 또다시, 아니 여전히 행복과 거리가 멀다.

로베트르 모레노 감독은 축구대표팀의 존재 목적이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표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이후 파울루 벤투 감독과 결별한 뒤부터 지난 4년간 팬들은 마음 놓고 웃어보지 못했다. 무책임한 행보로 일관한 위르겐 클린스만부터 임기 내내 자격 논란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홍명보 감독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참사까지, 국민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공개 선임 절차를 거쳐 지휘봉을 잡은 모레노 임시감독이 전임 사령탑들과 달리 진지한 자세와 적극적인 소통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 대중은 신선한 기대감을 품었다. 그러나 지난 9월과 10월 A매치 기간 중 불거진 대표팀 내 불화설과 일부 주축 선수들의 은퇴설은 팬들의 기대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국민들이 대표팀 선수 간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지 소원한지까지 소상히 알 필요는 없다. 단지 이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 속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지난 9~10월 A매치 기간 동안 한 선수는 경기 도중 교체된 뒤 인상을 쓰며 축구화를 벗어 던졌고, 경기 중에는 감독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까지 중계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됐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는 동료의 플레이를 비판하는 발언이 나왔고, 또 다른 선수는 회장과 감독의 부재로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없다는 취지의 한탄을 쏟아내며 어수선한 내부 상황을 대중 앞에 드러냈다. 뒤이어 이른바 '96라인 3인방'의 국가대표 은퇴설이 불거졌다.

축구국가대표팀 김민재(왼쪽)가 지난 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 상대선수를 저지하면 볼을 따내고 있다./울산=KFA

이 모든 것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드러난 것이 아니라, 대표팀 구성원 스스로 외부에 노출한 모양새가 됐다. 국민들은 원치 않았던 대표팀 내분설을 접해야 했고, 지금까지도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노출의 당사자들도, 대표팀을 관장해야 할 축구협회도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다. 모레노 감독이 강조한 "라커룸 안의 문제는 라커룸 내부에서 해결한다"는 원칙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하지만 96라인 3인의 은퇴설 및 주장 손흥민과의 불화설은 이미 라커룸 내부의 문제를 넘어섰다. 특히 국가대표 은퇴설은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일이 선수 개인의 선택이나 협상의 문제처럼 비치는 순간, 대표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기다렸다. 잘못 전달된 오보일 가능성을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오해를 푸는 방법은 간단했다.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사실관계를 밝히면 될 일이었다. 이에 따라 모레노호 2기 명단 발표를 앞두고 이들 3인이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당사자 3인은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 없이 29일 11월 중동원정에 나설 모레노호 2기 멤버로 다시 승선했다. 이번 소집이 국내가 아닌 카타르 현지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별다른 해명 없이 논란을 지나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29일 발표된 모레노호 2기 명단./KFA

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런 대표팀을 온전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을까. 지난 4년간 대표팀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했던 국민들의 피로감을 또다시 키우는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책임과 무게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레노 감독은 선수단 및 협회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선발에 장애가 될 요소는 없다고 강조했다. 경기력이 좋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 결국은 최상의 경기력으로 국민에게 행복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지금의 상황은 국민들에게 또다시 실망과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 홍명보호 시절 팬들이 대표팀 경기에 아예 등을 돌렸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모레노 체제가 출범했을 때 국민들은 다시 경기장으로 달려가 대표팀에 새로운 기대와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대표팀의 위상과 신뢰를 훼손하는 언행으로 논란을 빚은 당사자들이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아무 일 없다는 듯 경기에 나선다면, 팬들은 한마음으로 응원하기 어렵다.

한국축구대표팀 손흥민(오른쪽에서 다섯번째)이 지날 9월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추석 전날임에도 모처럼 많은 3만여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모레노감독의 데뷔전을 축하하고 응원했다./수원=KFA

축구협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대표팀을 관리하고 내부 갈등을 조정해야 할 조직이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공식적인 설명이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모레노 감독 뒤에 숨어 모든 책임을 현장에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이용수 회장 직무대행은 협회 차원의 책임을 계속 방기할 것인가.

은퇴설 당사자 3인은 대표팀 소집에 앞서 국민 앞에 사실관계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은퇴설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오보였는지, 사실이었다면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지, 혹은 한때의 그릇된 판단이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후자라면 대표팀 유니폼을 다시 입기 전에 진정성 있는 사과가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국민들은 선수들이 라커룸 안에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 일일이 관여하고 싶지 않다. 경기장에서 단합된 모습으로 좋은 경기를 펼쳐준다면 언제든 대표팀을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라커룸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밖으로 끌고 나왔다면 그에 따른 설명과 책임도 져야 한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는 것, 그것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들이 국민에게 보여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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