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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
아르메니아 /사진-픽사베이[투어코리아=김홍덕 기자] 와인의 시작을 찾아 떠나는 코카서스 여행에서 조지아만 보고 돌아서기는 아쉽다. 국경을 맞댄 아르메니아에도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와인의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가 약 8000년의 역사를 앞세워 ‘와인의 요람’을 이야기한다면 아르메니아에는 약 6000년 전 사람들이 와인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대 포도 재배지 및 와인 저장고가 발견된 아레니(Areni) 지역이다. 여기에 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아라랏산과 포도주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화산토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토착 포도, 땅속 항아리 ‘카라스’, 붉은 절벽 아래 와이너리까지.
아르메니아에서는 와인 한 잔이 곧 수천 년의 시간을 따라가는 여행이 된다.
아르메니아 ⓒ김홍덕6000년 전에도 와인을 만들었다…아레니 동굴의 비밀
아르메니아 와인 여행에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곳은 ‘아레니-1(Areni-1)’ 동굴이다.
아르메니아 남부 아레니 지역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약 6100년 전 와인을 만들었던 시설이 발견됐다. 포도 압착시설과 발효·저장 용기, 포도씨와 껍질 등이 확인되면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시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포도를 가공하고 발효·저장했던 시설이 확인되면서 고대 와인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가죽 신발이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르메니아 ⓒ김홍덕수도 예레반 국제공항에서도 아레니의 고대 와인 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아르메니아가 이 역사에 갖는 자부심은 크다. 흥미로운 건 이웃 나라 조지아와 은근한 ‘와인 원조’ 자존심 경쟁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조지아가 8000년 와인 역사를 내세운다면 아르메니아는 6000년 전 와인 생산시설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두 나라 사이에 국경이 놓여 있지만 수천 년 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국가의 경계가 없었다. 오히려 코카서스 일대에서 일찍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빚는 문화가 폭넓게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아의 방주’부터 와인까지…아라랏산에 얽힌 이야기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다 보면 유독 자주 마주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아라랏(Ararat)’이다. 아라랏산은 현재 튀르키예 영토에 있지만 아르메니아의 역사와 문화에서는 각별한 상징성을 갖는다. 날씨가 좋은 날 예레반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아라랏산은 그 자체로 아르메니아 여행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아르메니아의 와인 저장용기인 카라스ⓒ김홍덕성경에서는 대홍수 이후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들’에 머물렀다고 기록한다. 이후 노아가 농사를 시작해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셨다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물론 성경의 이야기를 고고학적 사실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노아의 와인’이라는 이야기는 아르메니아의 오래된 포도 문화와 만나 여행에 흥미로운 서사를 더한다.
아라랏산을 바라보며 현지 와인을 마시는 경험이 특별해지는 이유다.
조지아의 크베브리, 아르메니아의 ‘카라스’
조지아 전통 와인의 상징이 땅속 항아리 ‘크베브리(Qvevri)’라면 아르메니아에는 ‘카라스(Karas)’가 있다. 카라스 역시 흙으로 빚은 전통적인 저장 용기로, 땅에 묻어 포도를 발효하거나 와인을 보관하는 데 사용해왔다. 현대적인 양조 설비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포도와 흙, 시간이 항아리 안에서 만나 와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르메니아의 와인 저장용기인 카라스ⓒ김홍덕‘카라스’라는 이름은 여행 중 식당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지에서 친숙한 식당 브랜드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와인과 함께 아르메니아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세반호의 송어요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코카서스의 대표적인 고산호수를 바라본 뒤 구이나 스테이크처럼 조리한 송어에 현지 와인을 곁들이면 와인 여행에 또 다른 맛이 더해진다.
아르메니아의 와인 저장용기인 카라스ⓒ김홍덕해발 1000m 화산토에서 자란다…토착 품종 ‘아레니’
아르메니아 와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포도 역시 ‘아레니’다. 아레니 지역은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고산지대에 화산성 토양이 펼쳐진다. 높은 고도에서 발생하는 일교차와 독특한 토양은 이 지역 포도에 개성을 더한다. 대표 토착 적포도 품종인 아레니는 산뜻한 산미와 과실향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피노 누아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과실향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보다 아레니 여행의 묘미는 포도가 태어난 장소에서 그 와인을 직접 마시는 데 있다. 고대 와인 동굴을 둘러보고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찾아 같은 지역에서 자란 아레니 와인을 맛본다. 와인 한 병을 구매하는 것과 그 와인이 만들어진 땅을 직접 걷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붉은 절벽 아래서 와인 한잔…예레반에서 떠나는 ‘와인로드’
자유여행으로 아르메니아를 찾는다면 예레반에서 아레니를 연결하는 당일치기 또는 1박2일 코스를 추천할 만하다.
도시를 벗어나 남쪽으로 향하면 풍경부터 달라진다. 산과 계곡, 붉은 바위 절벽 사이로 수도원과 포도밭, 와이너리가 이어진다. 오래된 수도원을 둘러본 뒤 현지 와이너리에서 아레니 와인을 시음하는 식으로 여행 동선을 짤 수 있다.
아라랏산을 조망할 수 있는 지역까지 연결하면 역사와 종교, 자연, 와인이 하나의 테마로 묶인다. 유럽의 반듯하게 정돈된 와이너리 여행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거친 산악 풍경과 고대 유적 사이에서 와인을 마신다는 것이 아르메니아 와인로드의 매력이다.
와인만 유명한 게 아니다…‘아라랏’ 브랜디도 한 잔
아르메니아의 포도 이야기는 와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포도를 증류해 만드는 브랜디 역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다. 그 중심에 아르메니아의 대표적인 브랜디 ‘ARARAT’이 있다.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아르메니아 브랜디에는 윈스턴 처칠이 즐겨 마셨다는 유명한 일화가 따라붙는다. 같은 포도에서 출발하지만 발효를 거쳐 와인이 되고, 다시 증류와 숙성을 거치면 전혀 다른 향과 맛의 브랜디가 탄생한다.
아르메니아의 코냑 ⓒ김홍덕때문에 예레반에서는 와인뿐 아니라 브랜디까지 함께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조지아에서 크베브리 와인을 만났다면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레니 와인과 브랜디를 나란히 맛보며 서로 다른 포도 문화를 경험하는 재미가 있다.
6월엔 예레반, 가을엔 아레니…축제 따라 떠나는 와인여행
와인 애호가라면 아예 축제 일정에 여행 날짜를 맞추는 것도 방법이다. 올해 ‘Yerevan Wine Days’는 6월 5일부터 7일까지 예레반 중심가에서 열렸다. 도심 거리가 거대한 야외 와인 공간으로 변하면서 100여 개 와인 생산업체가 참여했다.
아르메니아 와인 축제 ⓒ김홍덕가을에는 아레니 지역의 와인 축제를 눈여겨볼 만하다. 포도 수확철의 분위기 속에서 현지 와인과 음식은 물론 지역문화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어 와인을 테마로 아르메니아를 여행하기에 제격이다.
코카서스 여행을 조금 더 길게 이어가고 싶다면 국경 너머 조지아까지 동선을 넓혀보자. 가을에는 트빌리시의 대표적인 도시 축제 ‘트빌리소바(Tbilisoba)’도 열리는 만큼 일정을 잘 맞추면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두 나라의 와인과 문화를 한 번의 여행에서 비교해보는 코스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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