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한.몽 발굴 결실, 몽골 최대 흉노 무덤서 로마계 유리잔·낙랑계 장식 출토…2천 년 전 유라시아 교류 흔적

도르릭 나르스 160호 무덤 출토 수정 감입 은제 장식/사진-국립중앙박물관도르릭 나르스 160호 무덤 출토 수정 감입 은제 장식/사진-국립중앙박물관

[투어코리아=박태성 기자] 약 2천 년 전 몽골 초원에 조성된 최대 규모의 흉노 무덤에서 로마 제국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잔과 평양 낙랑 무덤의 유물과 닮은 은제 장식 등 413건의 유물이 출토됐다. 고대 흉노가 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의 광범위한 문화 교류망과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몽골 국립박물관과 함께 2023년부터 4년에 걸쳐 진행한 몽골 동부 도르릭 나르스 유적 160호 무덤의 발굴조사를 마무리했다고 6일 밝혔다.

도르릭 나르스 160호 무덤 전경/사진-국립중앙박물관도르릭 나르스 160호 무덤 전경/사진-국립중앙박물관

도르릭 나르스 160호 무덤은 현재까지 몽골에서 확인된 최대 규모의 흉노 무덤이다. 남쪽으로 뻗은 무덤길을 포함하면 전체 길이가 약 73m에 이른다.

흉노는 기원 전후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동부에 세력을 형성했던 유목 제국이다. 고조선과 낙랑 등 한반도 고대 사회와도 교류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발굴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물 가운데 하나는 수정이 박힌 표주박 모양의 은제 말 장식이다.

평양 석암리 219호 무덤 출토 마노 감입 은제 장식/사진-국립중앙박물관평양 석암리 219호 무덤 출토 마노 감입 은제 장식/사진-국립중앙박물관

얇은 은판을 두드려 만든 이 장식은 평양 석암리 219호 무덤 등 낙랑 유적에서 출토된 말 장식과 형태가 유사하다. 다만 도르릭 나르스 출토품에는 수정이 박혀 있다는 차이가 있다.

함께 발견된 둥근 금 장식에도 수정이 사용됐다. 수정 아래에 금박과 붉은색·파란색 물질을 배치해 투명한 수정 너머로 빛과 색이 비치도록 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이 같은 장식 기법이 적용된 유물은 흉노 무덤에서 처음 확인됐다.

중국 한나라의 장례문화를 반영한 옥 장식도 발견됐다.

널 바닥 옥벽 출토 모습/사진-국립중앙박물관널 바닥 옥벽 출토 모습/사진-국립중앙박물관

무덤의 널 바닥에서는 옥 15점이 겹쳐진 상태로 출토됐다. 한나라의 장례용 옥인 옥벽(玉璧)을 모티프로 했지만, 전형적인 원판 형태와 달리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표면에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흉노가 한나라의 장례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체적인 방식으로 변형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다.

손잡이가 달린 투명한 유리잔도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 유리잔이 로마 제국의 영역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향후 성분 분석을 통해 제작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다만 로마계 유리잔과 낙랑 유물의 유사성이 곧바로 흉노와 로마, 한반도 사이의 직접 교역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유물의 제작지와 이동 경로, 교류 방식은 추가 연구를 통해 규명해야 한다.

무덤의 구조에서도 기존 흉노 대형 무덤과 다른 특징이 확인됐다.

9차 적석 조사 모습/사진 -국립중앙박물관9차 적석 조사 모습/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단은 땅을 계단식으로 파 내려간 뒤 아홉 차례에 걸쳐 쌓은 돌무더기를 제거하며 무덤의 전체 구조를 조사했다. 중심부 바로 위에서는 옻칠한 마차도 확인됐다.

이처럼 거대한 외형과 달리 무덤 주인이 안치된 중심부는 상대적으로 작고 얕았다.

이중 덧널·널 노출 모습/사진-국립중앙박물관이중 덧널·널 노출 모습/사진-국립중앙박물관

무덤 중심부는 나무로 만든 덧널을 두 겹으로 설치하고 그 안에 관을 둔 구조다. 무덤 바닥까지의 깊이는 약 14.5m로, 비슷한 규모의 몽골 중부 흉노 무덤이 깊이 22m에 이르는 것과 차이를 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구조적 차이가 기원후 1세기 후반부터 2세기까지 흉노 사회가 겪었던 정치·사회적 변화와 관련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2019년 조사한 주변의 배장묘에서도 비슷한 특징이 확인돼 무덤 조성 방식의 변화가 개별 사례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무덤 주인의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단은 관 내부에서 수습한 치아와 머리카락을 대상으로 DNA 분석을 진행해 성별과 나이, 주변 배장묘에 묻힌 인물들과의 관계를 규명할 계획이다.

이번 발굴은 국립중앙박물관이 1997년부터 이어온 한·몽 공동학술조사의 성과이기도 하다.

몽골 대통령의 도르릭 나르스 발굴 현장 방문/사진-국립중앙박물관몽골 대통령의 도르릭 나르스 발굴 현장 방문/사진-국립중앙박물관

지난 8월 21일에는 우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이 발굴 현장을 방문했다. 몽골 대통령이 공동 발굴 현장을 직접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렐수흐 대통령은 한·몽 공동학술조사에 대해 “두 나라와 두 나라 국민 사이의 우의와 협력을 보여주는 뚜렷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2026년 한-몽 공동학술조사단/사진-국립중앙박물관2026년 한-몽 공동학술조사단/사진-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동안의 공동조사 성과가 올해 7월 도르릭 나르스를 비롯한 흉노 무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연구는 출토 유물의 보존처리와 과학적 분석으로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안에 출토 유물을 국내로 들여와 보존처리와 분석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는 몽골 연구원 2명도 보존 연수생으로 참여한다.

발굴 전 과정을 3차원으로 기록한 자료는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해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 성과는 11월 6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제50회 한국고고학회 전국대회에서 처음 공개되며, 이후 종합 연구를 거쳐 발굴조사 보고서로 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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