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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게이트
2026시즌 최종전에서 승리한 롯데 자이언츠(사진=롯데)[더게이트]
"센터라인이 어느 정도 잡혔다는 게 보람이 있다. 어린 투수들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분명히 좋아진 게 보인다."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2026시즌을 돌아보며 남긴 말이다. 김 감독은 정규시즌 최종전이 열린 1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올 시즌의 아쉬움과 수확,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계약기간 3년 동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 한편으로, 젊은 선수들의 뚜렷한 성장세에 만족감을 드러낸 김 감독이다.
김 감독이 말한 '성장'은 이날 경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롯데는 1회초 2사 후 고승민이 안타로 출루하자 4번 타자 한동희가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선제 2점 홈런을 터뜨렸다. 한동희는 이 홈런으로 2026시즌을 109경기 타율 0.306, 25홈런, 81타점, OPS 0.915로 마무리했다. 경남고를 졸업하고 입단한 뒤 줄곧 '이대호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좀처럼 알을 깨지 못했던 한동희는 올해 3할 타율과 25홈런을 동시에 달성하며 롯데의 중심 타자로 자리 잡았다.
2회초에는 또 다른 젊은 주축 손성빈이 해결사로 나섰다. 1회말 수비 실책으로 2대 2 동점을 허용한 롯데는 손성빈의 좌월 솔로포로 다시 리드를 잡았다. 손성빈은 올해 129경기에서 타율 0.267, 8홈런, 40타점, OPS 0.735를 기록하며 공수에서 몰라보게 성장했다. 강민호가 팀을 떠난 뒤 확실한 주전 포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던 롯데는 손성빈의 성장으로 오랜 안방 고민을 상당 부분 덜었다.
분위기를 되찾은 롯데는 1사 후 장두성과 황성빈의 연속 안타에 이어 빅터 레이예스의 중전 적시타로 추가점을 뽑았다. 레이예스는 이날 홈런을 포함해 5타수 4안타를 몰아치며 시즌 안타 수를 211개로 늘렸다. 2024년부터 3년 연속 최다안타왕을 확정한 건 물론, KBO리그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를 두 차례 달성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2024년 자신이 세운 단일 시즌 최다안타 기록(202개)까지 훌쩍 넘어서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선발 5명 규정이닝 달성…구단 역사도 새로 썼다
롯데 김진욱(사진=롯데)마운드에서도 뜻깊은 기록이 나왔다. 이날 선발 등판한 박세웅이 4이닝을 던지면서 롯데 선발투수 5명 전원이 규정이닝을 채운 것. 외국인 투수 엘빈 로드리게스(159.2이닝)와 제레미 비슬리(147이닝)는 물론, 나균안(149.2이닝)·김진욱(144.1이닝)·박세웅(147.1이닝) 등 국내 투수 3명도 모두 144이닝을 넘겼다. 2014년 통합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 이후 12년 만이자 10개 구단 체제에서는 처음 나온 기록이다. 롯데 구단 역사에서도 최초의 기록이다.
물론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아쉬움이란 어떤 개인 기록이나 기대감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법이다. 롯데는 이날 두산을 7대 4로 꺾고 64승 3무 77패, 승률 0.454로 시즌을 마쳤다. 최종 순위 7위로 2018년부터 올해까지 9시즌 연속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두산 시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세 차례 우승을 일군 명장 김태형 감독을 영입했지만, 세 시즌 모두 7위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김 감독도 "아쉽죠. 올해로 3년 됐는데 가을야구를 못 했으니 그 부분이 제일 아쉽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럼에도 롯데의 2026시즌을 실패로만 규정할 순 없다. 순위는 지난 몇 년과 같았지만, 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면면과 전력의 짜임새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불안했던 포수와 유격수 자리에 확실한 주전이 생겼고, 중심 타선에는 믿음직한 4번 타자가 등장했다. 선발진은 5명 전원이 규정이닝을 채울 만큼 안정적으로 돌아갔고, 불펜에도 새 얼굴들이 가세해 힘을 보탰다. 과거 '노 피어' 시절 이후 처음으로, 롯데는 내년 시즌이, 또 그 이후가 기대되는 팀이 됐다.
20대 선수들이 팀의 중심으로…투수 WAR 리그 3위
롯데의 20대 선수 WAR 합계는 KT에 이은 리그 2위였다(표=더게이트)눈여겨볼 대목은 팀의 중심으로 성장한 20대 선수들이다. 4번 타자 한동희와 포수 손성빈 외에도 유격수 전민재의 성장세가 뚜렷했다. 두산에서 트레이드로 롯데에 합류한 전민재는 올해 140경기에서 타율 0.278, 9홈런, 70타점, 13도루, OPS 0.707을 기록했다. 유격수 수비가 부쩍 안정되면서 시즌 내내 주전 자리를 지켰다. 지난겨울 외부 유격수 FA 영입 대신 전민재의 성장에 기대를 걸었던 롯데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젊은 야수들도 1군에서 저마다 영역을 구축했다. 고승민은 112경기에서 타율 0.288, 16홈런, 75타점, OPS 0.814를, 나승엽은 105경기에서 타율 0.287, 8홈런, 60타점, OPS 0.786을 기록했다. 외야에서는 황성빈이 121경기 타율 0.289, 55도루로 도루왕에 올랐고, 장두성도 102경기에서 타율 0.285, 18도루로 한 단계 성장했다. 주전 대부분을 20대가 채우면서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투수 쪽에서는 김진욱의 성장이 반가운 수확이다. 입단 이후 큰 잠재력에 비해 제구 불안과 기복이 아쉬웠던 김진욱은 올해 26경기 7승 9패, 평균자책 4.12를 기록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채웠고,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우완 나균안 역시 26경기에서 6승 11패, 평균자책 4.27을 기록하며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켰다. 외국인 투수 두 명과 국내 선발 세 명으로 5인 로테이션이 시즌 내내 돌아간 팀은 사실상 롯데가 유일했다.
불펜에도 새 얼굴이 등장했다. 대졸 신인 박정민이 데뷔 첫해 63경기에 나서 9승 4패 1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 3.66을 기록했다. 최준용은 61경기에서 5승 3패 15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 3.71로 마무리 투수 역할을 해냈고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도 출전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현도훈은 53경기 4승 3패 5홀드, 평균자책 4.67을 올렸고 이진하는 25경기 2승 무패 1홀드, 평균자책 2.74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젊은 투수들이 1군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투수 운용의 폭이 넓어졌다.
기동력에서도 뚜렷한 발전이 있었다. 롯데는 올해 팀 도루 105개(실패 28차례)를 기록해 지난해 91도루(실패 28차례)보다 많은 도루를 해냈고, 도루 성공률도 76.5%에서 78.9%로 올랐다. 주루로 득점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나타내는 주루 RAA는 5.96으로 두산(6.94)에 이어 리그 2위였다. 키움과 KIA에서 선수들의 주루 능력 향상에 성과를 냈던 조재영 코치가 합류해 선수들과 소통하고 전력분석 파트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면서, 롯데는 '발야구'에서도 한 걸음 나아졌다.
롯데가 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은 젊은 선수들의 높은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다. 통계사이트 스탯티즈 기준 롯데의 20대 선수 투타 합산 WAR는 27.14승으로 정규시즌 우승팀 KT(31.22)에 이은 리그 2위였다. 특히 20대 투수 WAR 합계가 15.45승으로 소형준·박영현이 있는 KT와 곽빈·최민석을 보유한 두산에 이어 3위다. 한창 전성기를 통과하는 젊은 선수들이 리그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 선수들이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롯데는 한 두해 반짝하는 팀이 아니라 오래 지속 가능한 강팀이 될 수 있다.
FA 영입 대신 선수 육성…롯데가 선택한 다른 길
롯데 자이언츠, 지바 롯데와 28일-3월 1일 교류전 개최(사진=롯데)이 같은 성과는 어쩌다 운 좋게 얻어걸린 우연이 아니라, 롯데가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선택한 구단 운영 방향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롯데는 최근 3년간 외부 FA 시장에서 거액을 들여 대형 선수를 데려오는 대신 기존 선수들의 성장과 육성 시스템 강화에 포커스를 맞췄다. FA 영입만 빼고 구단이 전력 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돈으로 선수를 사 오는 게 어쩌면 가장 쉽고 편한 길이지만, 롯데는 그보다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길을 골랐다.
방향 전환의 배경에는 과거의 아픈 경험이 있다. 과거 롯데는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려 외부 FA 영입에 큰돈을 썼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가 많았다.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었고, 포지션이 겹쳐 활용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한창 기회를 얻고 경험을 쌓아야 할 젊은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는 문제도 생겼다. 여기서 교훈을 얻은 롯데는 당장의 성적을 위해 외부 선수 한두 명을 보강하는 대신, 기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고 유망주를 키워 팀의 기초부터 다졌다. 구단 내부에서 꾸준히 좋은 선수를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다.
일본 야구의 경험과 기술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2021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다카쓰 신고 전 감독을 스페셜 어드바이저로 영입했고, 한신 타이거즈에서 젊은 투수 육성과 불펜 강화에 성과를 낸 가네무라 사토루를 투수 총괄 코디네이터로 데려왔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8년 동안 피지컬 코디네이터로 일한 히사무라 히로시도 스트렝스 코치로 합류했다. 외부 전문가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구단 내부에 쌓아 코칭스태프와 육성 시스템의 역량을 높이려는 시도로 이강훈 대표이사와 박준혁 단장이 강조해 온 장기적인 팀 체질 개선 작업의 일환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추진한 해외 아카데미 파견과 교류 프로그램도 올해 선수들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모든 선수를 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시키기보다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외부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프로야구 구단과 전문 훈련시설, 미국의 야구 아카데미까지 선수별 특성에 맞춰 다양한 훈련 기회를 제공했다.
2024년에는 투수 정현수와 이민석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 마무리 캠프에 보냈다. 2025년에는 내야수 한태양과 전민재가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일본에서의 훈련을 바탕으로 수비를 다듬은 전민재는 올해 롯데의 주전 유격수로 풀시즌을 소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에는 나승엽과 고승민이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2주 동안 타격 자세와 스윙 기술을 연마했다.
미국의 전문 훈련시설도 적극 활용했다. 롯데는 2025년 김기준·박준우·조세진·김동현을 미국 드라이브라인에 파견했다. 올해도 김진욱이 일본 넥스트 베이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등 해외 훈련을 통한 기량 향상에 꾸준히 투자했다. 롯데는 10월부터도 추가 훈련이 필요한 선수들을 아카데미에 보낼 계획이다. 시즌이 끝난 뒤에도 선수별 약점을 보완하며 다음 시즌 준비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실전 경험을 늘리기 위한 해외 교류도 확대했다. 올해 김기준을 비롯한 선수 22명이 일본 시코쿠 아일랜드리그에서 경기를 치렀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교류전에 참가했다. 1군에서 출전 기회를 얻기 어려운 유망주들에게 다양한 수준의 상대와 맞붙을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의 일환. 롯데는 이런 프로그램으로 젊은 선수들의 실전 적응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퓨처스 육성팀에 신설한 퍼포먼스센터도 같은 목표 아래 운영된다. 선수들의 신체 조건과 기술적 특성에 맞춰 훈련하고, 부족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보완하도록 돕는 시설이다. 해외 아카데미와 교류전, 퍼포먼스센터를 연계한 육성 프로그램이 조금씩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롯데의 자평이다.
차세대 거포 기대주 김동현과 강속구 투수 김한결 등 젊은 유망주들의 성장도 그 성과로 꼽힌다. 2026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 지명자인 우완 김한결은 193cm의 장신에 최고 149km/h의 속구와 스플리터를 던진다. 지명 이후 퓨처스 퍼포먼스센터에서 훈련하며 제구와 구종 완성도를 높였고, 원래부터 좋았던 구위에 안정된 제구를 더하면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한결은 "지난해 9월부터 퓨처스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그 덕분에 제구가 잡힐 수 있었고, 퓨처스에서 기회도 부여받아서 마운드에서 적응도 할 수 있었다"면서 "전체적인 구종 완성도가 높지 않았는데, 짧았지만 훈련을 퓨처스에서 잘 시켜주신 덕분에 1군 기회도 주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육성 시스템의 지원을 받은 선수의 성장 사례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3군 운영·해외 연수 확대…육성 중심 전략 이어가는 롯데
퓨처스 퍼포먼스 센터 효과를 본 신인 김한결(사진=롯데)롯데는 지난해부터 3군 운영을 본격화하고 육성 선수 영입도 꾸준히 늘리며 선수층을 두껍게 하고 있다. 여기에 해외 아카데미 파견과 일본 구단 교류, 퍼포먼스센터 운영을 더해 선수들에게 더 많은 성장 기회를 제공했다. 올해 나타난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이런 육성 프로그램이 조금씩 효과를 내고 있다는 증거다. 구단이 장기 목표를 갖고 여러 시즌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해 온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이전과 다르다.
물론 선수들의 성장세가 매년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건 아니다. 야구에서 올해의 성적이 내년에도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한동희가 내년에도 3할 타율과 25홈런을 기록할지, 주전 야수와 투수들이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소화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선발투수 5명이 모두 규정이닝을 채운 기록 역시 매년 반복하기 어렵다.
김태형 감독도 "항상 시즌 끝날 때쯤엔 내년에는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했다. 하지만 성장한 선수들이 내년에도 좋은 상태가 이어지면서 쭉 치고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 내년에도 이 선수 중에 초반 슬럼프가 오는 선수가 있을 것이고 부상도 올 거다. 이 선수들이 144경기를 전부 다 잘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의 수확을 다음 시즌 성적으로 연결하려면 주전과 백업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게 과제다. 기존 자원들만으로 풀기 어려운 부분은 적절한 외부 보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롯데가 당장 눈앞만이 아니라 먼 곳을 보고, 뚜렷한 방향성 아래 일관되고 끈기 있게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가을야구는 맛보지 못했지만, 롯데에 이처럼 미래가 기대되는 시즌은 최근 몇 년 가운데 오랜만이다. 롯데 팬들이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내년 봄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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