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형' 감독 선임에 기존 프런트 수뇌부 그대로...한화가 급진개혁 대신 '연속성'을 택한 이유

석장현 단장과 류지현 감독(사진=한화)석장현 단장과 류지현 감독(사진=한화)

[더게이트]

겉으로 보기엔 감독과 단장을 모두 바꿨으니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파격보다는 안정을, 대변혁보다는 연속성을 택한 인사에 가깝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에서 올해 9위로 추락한 한화 이글스 얘기다.

한화는 13일 제15대 사령탑에 류지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고, 신임 단장으로 석장현 전 경영지원실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김경문 감독과 손혁 단장의 계약 종료를 알렸고, 이어 김경문 감독과 함께했던 코칭스태프 다수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감독과 단장, 주요 코칭스태프가 한꺼번에 바뀌는 대규모 인사가 이뤄졌다.

지난 3시즌 동안 외부 FA 영입에만 300억원을 투자한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9위까지 떨어졌으니 누군가는 성적 부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 책임의 크고 작음을 떠나 어느 정도 상징적인 인사 변화는 피하기 어려웠다. 한화는 마침 계약기간이 끝난 감독과 단장에게 재계약을 제안하지 않는 방식으로 책임을 물었다. 사실상 경질이지만 두 사람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갖추는 형식을 택했다.

야구단에서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교체되는 건 상당히 큰 변화다. 4년 연속 최하위라는 프로스포츠에서 있을 수 없는 결과를 내고도 별다른 인적 쇄신 없이 조용한 구단도 있는 리그에서 이 정도면 파격적이고 대대적인 개편이라고 할 만하다. 다만 인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단을 완전히 대개조하고 바닥부터 뜯어내는 식의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 그보단 지난 몇 년간 추진해 온 구단 운영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재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외부 영입 대신 23년 '한화맨'…창단 첫 직원 출신 단장석장현 신임 단장(사진=다큐멘터리 '클럽하우스' 화면)석장현 신임 단장(사진=다큐멘터리 '클럽하우스' 화면)

우선 단장 인사가 그렇다. 한화는 외부에서 새 인물을 영입하는 대신 구단에서 23년간 근무한 석장현 경영지원실장을 단장으로 승진시켰다. 당초 구단 최고위 인사가 선호한 후임 단장은 손차훈 전력강화 코디네이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손 코디네이터가 단장직을 강하게 고사하면서 석 신임 단장에게 기회가 돌아갔다는 게 구단을 잘 아는 이들의 전언이다.

사실 석 단장의 승진은 프로야구단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사 코스 가운데 하나다. 야구단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직원이 여러 부서를 거치며 경험을 쌓고,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 야구 운영 책임자인 단장까지 올라가는 스토리다. 석 단장이 과거 제작에 상당 부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팀장이 이런 케이스다. 과거 SSG 랜더스의 통합 우승을 이끈 류선규 전 단장, 올해 KT 위즈의 정규시즌 우승을 주도한 나도현 단장 같은 실제 성공 사례도 있다. 이런 승진 사례가 늘어나면 야구단 프런트 직원들도 보다 큰 꿈과 희망을 갖고 의욕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다.

한화는 불행하게도 그동안 이런 사례를 만들지 못했다. 창단 이후 2000년대 초까지는 그룹 '본부'에서 사장과 단장을 함께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구단을 운영했다. 야구를 잘 모르는 기업인들이 야구단에 부임해 몇 년 일하다 야구를 알 만하면 다시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떠나는 일이 반복됐다.

이후 2010년대 들어 다른 구단에서 야구인 출신 단장 선임이 늘어나자 한화도 프로 지도자 출신 박종훈 단장을 영입했고, 이후 구단 레전드인 정민철과 손혁 등 야구인 출신 인사에게 단장직을 맡겼다. 구단 내부에 '단장감'으로 통하는 인재가 많지 않다 보니 10년 가까이 야구인 출신 외부인에게 단장직을 ‘위탁’해야 했던 한화에서 신입사원 출신 단장이 처음으로 탄생했으니, 석 단장의 선임은 한화 구단 역사에서 꽤 의미 있는 사건이다.

리빌딩 주도했던 석장현, 다시 구단 운영 중심으로한화 이글스 다큐 '클럽하우스'의 한 장면(사진=왓챠)한화 이글스 다큐 '클럽하우스'의 한 장면(사진=왓챠)

석 단장은 2003년 한화에 입사한 뒤 마케팅과 홍보, 선수단 운영, 전략기획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경험했고 독립리그 스카우트 업무까지 맡아 선수 발굴과 육성 분야에도 발을 담갔다. 박찬혁 대표이사와 정민철 단장 체제에서는 구단 리빌딩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핵심 인사로 통했다.

물론 순탄한 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한화가 추진한 리빌딩이 빠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하위권 성적이 계속되자 비판의 화살이 변화를 주도했던 석 단장에게도 향했다. 이후 구단 운영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나 외곽에 머물렀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박종태 현 대표이사가 부임한 이후 석 단장의 구단 내 발언권이 조금씩 회복됐다는 게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들의 평가다. 한 야구인은 석 단장에 대해 “자기주장을 강하게 앞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며, 야구단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성향도 비교적 합리적인 편”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구단의 여러 부서를 경험했고, 현재 한화가 추진 중인 구단 운영 체계의 초기 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손차훈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도 구단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단장직은 고사했지만 앞으로도 프런트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신임 단장과 대표이사를 보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장이라는 직함만 없을 뿐 선수단 구성과 주요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한 야구인은 현 대표이사와 가장 긴밀하게 소통해 온 인물로 석 단장과 손 코디네이터를 꼽기도 했다.

이런 구도를 고려하면 손혁 전 단장이 물러난 것 외에는 한화 프런트의 기존 운영 방향과 기조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으로 부임 4년째를 맞는 박종태 대표이사의 그립감도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안정형 감독 류지현…구단과 협력하는 리더십류지현 대표팀 감독(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류지현 대표팀 감독(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신임 사령탑 류지현 감독도 강한 개성이나 파격적인 변화를 앞세우는 리더 유형은 아니다. 류 감독은 LG 트윈스 사령탑 시절부터 자신의 야구 철학이나 고집을 강하게 내세우기보다는 구단과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조화롭게 팀을 이끄는 스타일이었다. 프런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데이터를 경기 운영에 활용하는 등 조직 전체의 방향에 맞춰 움직이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과 나고야·아이치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지도력을 입증했지만, 류 감독의 강점은 독불장군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보다는 철저한 준비와 안정적인 운영에 있다. 감독의 개성에 구단 전체를 맞추기보다 기존 구단 시스템과 선수단에 자연스럽게 융화하는 리더십이다. 한화가 류 감독을 선택한 배경도 이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화의 2026시즌 9위 추락은 분명 뼈아픈 결과다. 그러나 당장 내년부터 다시 포스트시즌 진출과 우승을 노려야 하는 팀이기도 하다. 지난해 시즌 막판까지 정규시즌 우승을 다퉜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주요 멤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올 시즌 일시 후퇴했지만 성장 잠재력이 있는 젊은 선수들이 있고, 부상에서 돌아올 선수들도 있다. 류현진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 반드시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올해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 외국인 선수 구성만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설 여지는 충분하다. 한화로서는 지난 몇 년간 공들여 구축한 선수단과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고 완전히 허물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보다는 재도약에 초점을 맞출 이유가 더 크다. 올해의 9위 추락이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실패보다는 일시적인 후퇴라고 판단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화의 감독 단장 동시 교체가 파격이 아닌 ‘안정’과 ‘연속성’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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