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야구 또 했다간 수명 줄겠네…8점 차도 불안, 믿고 맡길 불펜이 없다? 한국시리즈 내내 '대첩' 예고

박영현(사진=KT)박영현(사진=KT)

[더게이트=수원]

"내 교체 실수 때문에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이긴 감독이 자책했다.

"초반에 내가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쳤던 것 같다." 진 감독도 자책했다.

이긴 감독과 진 감독이 모두 "내 탓이요"로 기자회견을 시작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시리즈 1차전은 극도로 혼란스러운 경기였다. 어떤 면에서는 미친 경기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KT 위즈는 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8대 7로 꺾었다. 6회가 끝났을 때만 해도 점수는 8대 0, KT의 일방적인 리드로 흘러갔다. 이러다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점수 차 기록(13점 차)이 깨지는 것 아닌가 싶은 전개였다.

그런데 경기 후반 깨어난 삼성 타선이 7회 5점, 8회 2점을 뽑아내며 맹추격을 벌였다. 8대 0이었던 경기가 8대 7, 한 점 차로 끝났다.

만약 야구의 신이 존재한다면, 이날은 여러 번 KT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 타자들의 파울 홈런 3개 가운데 하나만 폴대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삼성의 잘 맞은 타구 중 한 두개만 수비수 없는 곳에 떨어졌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오늘 유독 큰 파울 타구가 많이 나왔다. 세 개나 나왔는데, 그중 하나만 담장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후 추가 득점까지 연결해 역전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박진만 감독의 말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이긴 쪽이라고 마냥 웃기는 어려운 경기였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이강철 KT 감독은 겉으로는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아주 약간의 방심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경기였다."

이긴 쪽도 진 쪽도,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경기였다. 이런 경기를 두 번 치렀다가는 수명이 10년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시리즈가 앞으로도 이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두 번, 세 번, 어쩌면 네 다섯번 이런 경기를 봐야 할 수도 있다.

3주 쉰 팀 맞아? 1회부터 폭발한 KT안현민(사진=KT)안현민(사진=KT)

우선 양 팀 방망이가 심상치 않다. 비트배트에 안타 치는 기능이 추가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삼성도 KT도 맹타를 휘둘렀다.

삼성은 말할 것도 없다. KIA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에서 한껏 오른 기세가 한국시리즈에서도 여전하다. 1차전에서는 낯선 KT 선발 데이비스 대니엘에게 6회까지 끌려갔지만 7회 구자욱의 2점 홈런을 시작으로 발동이 걸렸다. 불붙은 KT 타선은 8회 1사 만루에서 마무리 박영현까지 마운드로 불러냈다.

KT 타선이 1차전부터 보여준 타격감도 놀랍다.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KT는 지난달 12일 최종전 이후 3주 동안 공식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보통 1위 팀은 1차전 내내 경기 감각을 찾느라 애를 먹게 마련이다. 1차전 안에 감을 잡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2차전 이후에야 뒤늦게 감을 찾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KT는 1회부터 삼성 선발 최원태를 두들겨 3점을 뽑았다. 3회 안현민의 2점 홈런, 5회 한승택의 솔로 홈런, 6회 김현수의 2점 홈런이 이어졌다.

한승택이 친 홈런이 특히 뜻밖이었다. 2013년 데뷔 이후 포스트시즌 홈런이 하나도 없던 수비형 포수가 비거리 125m짜리 대형 홈런을 날렸다.

1차전이 이 정도라면, 남은 시리즈에서 KT 방망이가 더 뜨거워질 가능성도 크다.

텍사스 카우보이도 사람이다박진만-이강철 감독(사진=KT)박진만-이강철 감독(사진=KT)

양 팀 다 방망이는 잘 돌아가는 반면, 마운드 사정은 좋지 못하다. 특히 플레이오프를 꽉 채워 치르고 올라온 삼성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체력 문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 페덱은 4일 2차전 선발로 나선다. 지난 등판에서 사흘을 쉬고 던졌고, 이번에는 나흘을 쉬고 올라온다. 아무리 슈퍼 에이스에 에너지 넘치는 텍사스 카우보이라도 페덱 역시 사람이다. 열흘 동안 세번째로 등판한 선발이 1차전 불방망이를 휘두른 KT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다.

아리엘 후라도는 6일 대구에서 열리는 3차전 등판이 유력하다. 역시 '백투백 4일턴' 등판이다. 제 아무리 던지면 던질 수록 강해지는 팔을 지닌 이닝이터 워크호스라도 쉽지 않은 일정이다.

국내 선발은 더 불확실하다.

1차전 선발 최원태는 2이닝 5피안타 5실점으로 무너졌다. 박진만 감독은 최원태의 다음 선발 등판에 대해 "논의해봐야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남은 시리즈 이기는 경기에선 최원태의 모습을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안은 1차전에 등판한 우완 양창섭과 신인 장찬희다.

박진만 감독은 "양창섭은 올 시즌 KT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오늘 장찬희의 컨디션도 괜찮았다. 가장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만루 위기에 등판해 김현수를 막아냈다"고 칭찬했다.

이어 장찬희에 관해 "첫 포스트시즌 경기였고,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였다. 그런데도 어린 선수답지 않게 대담했다. 타자를 상대로 공격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좋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후라도가 3차전에 나선다면 국내 선발 순서는 4, 5차전일 가능성이 크다. 1차전에서 불펜 대기했지만 등판하지 않은 원태인이 2차전에서도 나오지 않는다면 4차전이 원태인, 5차전 양창섭 또는 장찬희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5이닝을 확실하게 막아줄 투수가 있을까.

플레이오프 내내 불펜으로 나온 원태인이 다시 선발로 나와서 긴 이닝을 던지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원태인이 선발로 가면 불펜에서 그 역할은 누가 맡을까. 양창섭과 장찬희에게 5이닝을 기대하는 게 현실적일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원태인이 불펜에서 빠지면 좌완 필승조 이승민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딜레마다.

이승민은 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등판했다. 박진만 감독이 시리즈를 마친 뒤 숨은 MVP로 꼽았을 정도다. 삼성의 '애런 애시비'라 부를 만한 활약이었다.

하지만 투구가 누적된 상태로 나오는 한국시리즈에서도 같은 퀄리티의 투구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한국시리즈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삼성 투수들에게는 힘든 시간이 다가온다.

멀티이닝 안 쓰려다 8회 1사만루에 등판한 박영현손동현(사진=KT)손동현(사진=KT)

KT 마운드라고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6회만 지나면 불안하고, 누가 올라와도 믿음이 가지 않고, 박영현이 언제 나오는지 불펜 쪽만 쳐다보게 되는 실정이다.

KT는 고영표, 소형준, 대니엘이 버티는 선발진과 리그 최고 마무리 박영현을 보유한 팀이다. 문제는 중간이다. 선발과 마무리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불펜이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이강철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선발투수 로건 앨런과 오원석을 불펜으로 돌려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7회에 나온 로건도 8회 올라온 오원석도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 위기를 자초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승리조 우완 손동현은 파울 홈런 두 방을 맞고 이재현의 타석 도중 교체됐다. 뒤이어 올라온 사이드암 김정운도 이재현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정규시즌 25홀드 투수 스기모토 고키는 벤치의 신임을 잃어 가을야구 필승조에서 제외됐다. 마무리 박영현을 제외하고는 어느 투수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강철 감독은 가급적 박영현에게 멀티이닝을 맡기지 않으려 했다. 결과는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8대 0리드를 불펜이 지키지 못해 마무리가 8회 1사 만루에 마운드에 올라와야 했다. 멀티이닝을 안 맡기려다 오히려 가장 힘든 상황에 올라와 아웃카운트 5개를 잡는 결과가 됐다.

"박영현의 투구 이닝을 줄여주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박영현이 타고난 운명인 것 같다."

이 감독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겼다. 결국 많이 이기면 되는 것"이라고 하긴 했지만, 삼성의 타구 한 두개만 빈 공간으로 향했다면 이 감독의 기자회견은 '패장 인터뷰'가 됐을 수도 있었다.

박진만 감독은 KT 불펜 공략에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 부분은 확실히 소득이다. KT의 필승조가 나왔는데도 우리 타선이 공략했다. 우리 타자들이 상대 필승조를 상대로도 충분히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박 감독은 "경기는 졌지만 중후반에 언제든 역전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남은 시리즈를 생각하면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패배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았다.

"불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삼성 양창섭(사진=삼성)삼성 양창섭(사진=삼성)

매 경기 선발이 8회까지 던지고 박영현에게 9회를 넘겨줄 수 있다면, 이렇게 가슴 졸일 일도 없을 거다. 하지만 선발이 매 경기 7, 8회까지 던질 수는 없다. 가을야구에서는 5회만 잘 막아줘도 성공이다.

결국 선발과 박영현 사이의 6, 7, 8회를 믿고 맡길 투수가 나와야 한다. 아니면 최적의 투수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이강철 감독은 시리즈 첫 경기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시리즈 첫 경기를 치를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투수 운용이다. 다들 좋은 상태로 준비해 왔기 때문에 누구를 어느 상황에 써야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다. 좋은 투수가 여러 명 있다 보니 상황에 맞춰 활용하려고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올해 시즌 개막전 LG 트윈스 전이 꼭 그랬다. 11대 3으로 크게 앞서가던 KT는 7회와 8회 불펜이 무너지며 11대 7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결국 8회에 마무리 박영현을 기용해 간신히 승리를 지켰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같은 고충을 겪었다는 이 감독이다.

"그래도 오늘은 여러 투수가 실제로 등판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큰 경기에 처음 나오는 투수들도 있었는데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은 "경기에서 졌다면 이런 경험도 의미가 줄어들었겠지만, 일단 이겼기 때문에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투수 코치와 상의해 후회 없이 투수진을 운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감독은 로건을 원래 자리인 선발로 돌리고, 왼손 불펜으로 전용주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리'한 대로 불펜 운영이 잘 이뤄지면, 남은 시리즈는 KT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 수 있다. 하지만 의도대로 통하지 않으면 KT는 또 경기 후반마다 진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1차전 같은 경기를 시리즈 내내 봐야 할 수도 있다. 보는 사람이야 꿀잼이라 나쁠 것 없는데, 하는 사람들의 체중 감소와 수명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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