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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 전북 익산 황등면의 너른 들판 끝자락이 주황빛으로 물든다. 익산시 황등면 율촌길 9에 자리한 아가페정원이다. 입장료 없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정원이지만, 반세기 가까이 바깥에 문을 열지 않았던 곳이어서 지역에서는 오래도록 '비밀의 정원'으로 불렸다.
정원은 1970년 노인복지시설 아가페정양원이 들어서면서 시설 어르신들의 쉼터로 가꾸어지기 시작했다. 관광객을 위해 급하게 꾸민 공간이 아니라 반세기 동안 나무를 한 그루씩 심고 돌보며 천천히 쌓아 올린 숲이다. 이 숲은 2021년 3월 전라북도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되면서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이후 익산시와 익산산림조합, 푸른익산가꾸기운동본부가 민간정원 보완사업을 함께 벌여 영국식 포멀가든을 새로 조성하고 숲속 산책로를 정비했다. 지금은 익산 9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익산 시티투어 코스에도 들어가 있다.
아가페정원 단풍 숲길
아가페정원의 얼굴은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다. 정양원이 처음 문을 열던 무렵 심은 나무들이 반세기를 자라 높이 40m에 이르렀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이 길 양옆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어, 숲길에 들어서면 동화 속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메타세쿼이아를 따라 늘어선 하얀 철제 펜스에도 사연이 담겨 있다. 귀한 수종의 나무가 벌판에 흩어져 있다 보니 애써 키운 나무가 하룻밤 사이 사라지는 일이 잦았고, 정원을 지키기 위해 정양원 둘레에 펜스를 두른 것이 지금의 풍경이 됐다. 오랜 세월 바깥 발길을 막아 온 그 펜스가 이제는 주황빛 숲길과 어우러지는 사진 명소로 꼽힌다.
산책길은 메타세쿼이아 숲길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등재된 수목은 메타세쿼이아와 섬잣나무, 공작단풍 등 17종 1416주에 이른다. 정원 안에는 공작단풍나무길과 향나무 산책길, 밤나무길, 꽝꽝나무 산책길이 이어지고 당단풍나무 쉼터와 대나무숲, 은행나무숲까지 자리하고 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숲이 노랗게, 당단풍나무와 공작단풍이 붉게 물들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색의 숲을 만나게 된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는 영국식 포멀가든이 펼쳐진다.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구조로 반듯하게 다듬은 정원으로, 노란빛의 황금사철나무와 붉은빛의 홍가시나무가 화단의 선을 따라 색을 더한다. 40m가 넘는 거목과 한 뼘 남짓한 화초가 한 공간에 어우러져 유럽의 어느 정원에 온 듯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숲 터널을 걷다가 탁 트인 정원으로 나서는 순간이 아가페정원 산책의 백미로 꼽힌다.
걷다가 잠시 쉬어 가고 싶다면 숲속 한평 도서관에 들러 볼 만하다. 숲 한쪽에 마련된 작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자연석 의자에 앉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아가페정원 단풍 절정 시기
아가페정원의 가을은 한 가지 색으로 끝나지 않는다. 메타세쿼이아 바늘잎이 붉은빛 도는 갈색으로 물들면 숲길 전체가 주황빛 터널로 바뀌고, 그 아래로 잎이 잘게 갈라진 공작단풍이 낮게 붉은빛을 깔아 준다. 사계절 푸른 섬잣나무와 향나무가 사이사이 초록을 더해, 붉은 단풍 일색인 산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단풍 절정은 11월 초중순이 유력하다. 한국관광공사와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지난 8일 공개한 ‘2026 단풍지도'에서 전라권 단풍은 11월 초중순에 절정을 맞을 것으로 예측됐다. 메타세쿼이아는 단풍나무보다 늦게 물드는 편이어서 11월 중순 무렵까지 주황빛 숲길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을 남기려면 오전 시간대가 좋다. 비스듬히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나무줄기 사이로 쏟아지면 숲길의 색이 한층 짙어지고, 길게 늘어선 나무 그림자까지 함께 담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한가운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구도와 하얀 펜스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숲길을 담는 구도가 특히 인기다.
정원을 둘러본 뒤에는 인근 황등석산 채석장 전망대까지 일정을 이어가기 좋다. 정원과 전망대를 잇는 왕복 셔틀버스가 하루 6회 운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운 익산석제품전시홍보관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식사는 황등면의 명물 육회비빔밥이 제격이며, 한우 선지로 끓인 선짓국을 곁들이는 것이 이 지역만의 방식이다.
아가페정원 주말 예약 방법
아가페정원은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다. 평일에는 예약 없이 바로 방문할 수 있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방문 2주 전 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 전화로 예약하면 된다. 입장 회차는 오전 9시와 11시, 오후 1시와 3시 가운데 고를 수 있으며, 회차마다 2시간씩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다.
운영시간은 3월부터 10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11월부터 2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다. 입장은 문 닫기 한 시간 전까지 가능하고, 매주 월요일은 쉰다. 정원 입구에는 대형버스 5대를 포함해 58면 규모의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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